꿈을 소재로 한 SF ‘드림펑크’
이혜원의 장편 <드림 컬렉터>는 2015년 SF어워드 수상작이다. 심사위원의 한사람이었던 필자 또한 당시 수상을 적극 지지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소설이 사이버펑크와 바이오펑크 그리고 스팀펑크에 이어 소위 ‘드림펑크’라 부를 만한 SF의 새로운 하위형식을 선보인 까닭이다. 어떤 예술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과학소설계 또한 가장 으뜸으로 쳐주는 작품은 내용과 형식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이른바 ‘개념적 돌파(conceptual breakthrough)’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 <드림 컬렉터>는 꿈속 내용을 실재하게 물질화하거나 한사람의 꿈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증폭시켜주는 독특한 자연환경의 외계행성 ‘마야’를 무대로 사람들의 온갖 욕망과 그 심연을 헤집는다는 점에서 곧장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고전 <솔라리스>(1961)를 떠올리게 한다. 외계행성 솔라리스의 걸쭉한 원형질 바다가 인간의 무의식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 그것을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부린다면, 마야에서는 암석층에 매장된 다량의 수수께끼 물질 ‘란츠만’이 비슷한 효과를 낸다.
발상의 출발점은 비슷할지라도 작가 이혜원의 해학적이리만치 실용적인 관점은 렘의 철학적 사색과 완전 딴판이란 점에서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는 <드림 컬렉터>가 SF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의미다. <솔라리스>는 외계의 원형질 바다가 어째서 그리 해괴한 짓을 벌이는지 영문을 몰라 노심초사하는 인간군상을 통해 광대한 우주의 심오함과 인간의 초라한 위상을 비교한다는 점에서 관조적이다 못해 방어적이기까지 하다. 반면 <드림 컬렉터>는 꿈속 온갖 상상이 물질화되는 물리학에 심적으로 압도되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특성을 자원화하고 착취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혈안이 된 산업자본주의의 민낯에 초점을 맞춘다. 렘은 한줌의 지식으로 거들먹거려봤자 우주라는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너 자신을 알라!’고 훈계하고자 솔라리스란 세계를 창안했다. 반면 이혜원은 “그게 얼마나 돈이 돼?”라며 세속철학에 철저히 복무하는 산업자본가들이 리엔지니어링한 마야를 제시하기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2017)의 세계관과 닮았다. 마야에는 남의 꿈을 빌려 위안을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이들의 등을 치며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꿈을 현실화하는 비즈니스가 더욱 강력한 매력을 갖도록 과학기술 투자를 아끼지 않는 대기업과 그들에게 예속된 첨단 연구진이 있다.
<드림 컬렉터>는 사이버펑크에서 가지를 치고 나온 드림펑크다. 사이버펑크는 첨단과학기술을 독과점한 다국적 기업들이 그림자 정부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사회정의가 왜곡되는 근미래를 그린다. <드림 컬렉터>에서는 꿈을 상업화·오락화하는 과학기술을 독점한 대기업이 수익극대화를 위해 현지 정부와 공생관계를 모색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인 꿈을 대중의 소비를 위한 상품으로 개발해 양산하는 첨단산업과 이를 둘러싼 이해집단 간의 알력을 다룬 이야기에 ‘드림펑크’보다 더 그럴듯한 하위 장르의 명칭이 있을까. 권력과 자본의 추한 결탁을 늘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펑크SF처럼 이혜원의 드림펑크 또한 같은 정신적 토양을 공유한다. 인간의 꿈과 무의식에 대한 과학계의 연구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나 <드림 컬렉터>는 그러한 시도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되리란 통찰을 놓치지 않는다.
<고장원 SF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