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란 자연계의 다양한 현상을 탐구해 체계화된 지식을 집대성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추억은 자연현상인가. 영어로는 추억이나 기억이나 ‘메모리’로 같다. 심지어 기술적으로 메모리는 ‘저장장치’를 의미하지 않는가. 추억이라는 표현이 비과학적으로 느껴지는 건 자신에게 더 인상적인 어떤 사건이나 경험에 대한 기억이어서다. 과학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주관성을 크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과학을 고전적인 영역에 가둬두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고정관념이다. 현대의 과학은 이미 뇌과학, 감성공학 등으로 대변되듯 이성이 아닌 감성, 객관성만이 아닌 주관성의 영역까지 탐색을 시작한 지 꽤 됐다.
누군가에게 인상적인 기억인 추억을 마케팅의 표적으로 삼아 기술적으로 공략하는 방법은 지금과 같은 정보기술시대에 기본 중의 기본이다. 연령, 계층, 지역, 성별 등에 따라 차별화하는 맞춤형 서비스는 이미 상당부분 개인화된 서비스가 됐다. 한 예로 지난달 생일을 보낸 필자는 이제는 가족과 친구보다 거래은행, 회원가입 사이트로부터 더 많은 축하문자를 받는다고 느낀다. 아직 그 이면의 본질을 신뢰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내가 들어간 앱에서, 내가 카드를 꽂아넣은 현금인출기가 날 알아보고, ‘어, 오랜만이야? 반가워!’ 인식하고 건네는 축하라는 걸 알기에 별 감흥이 없다.
사람들이 참여한 커뮤니티 성향의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는 내 생일을 지인에게 공개해버림으로써 옆구리 찔러 인사를 받는 일이 벌어진다. 심지어 틀린 생일 등 잘못된 정보로 인해 벌어지는 해프닝도 많다. “응, 실제 생일은 아닌데 일단 고마워.”
이제는 주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국외 브랜드의 소셜미디어로 추억의 공유가 이뤄진다. 약 15년 전만 해도 이 분야에선 한국이 제국이었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아이러브스쿨 등을 통해 한국적 특성인 동창찾기와 같은 학연 문화가 온라인 공간을 달구더니 곧이어 말 그대로 ‘사이버 월드’, 가상세계를 표방한 사회관계망서비스인 싸이월드가 폭발했다. 이 공간에 방 한칸 없는 사람이 없었고, 거기엔 아바타인 미니미가 있었다. 음악이 흐르고, 앨범엔 사진들이 쌓여갔다. 끄적인 일기글에, 혈연보다 애틋했던 가상의 일촌들, 주기적인 방문 이벤트와 파도타기는 실제와 가상을 강력하게 융합시켰다. 가상화폐인 도토리가 실물가치까지 지니던 시절이었다.
거의 전 국민이 참여했던 그 제국이 멸종한 공룡처럼 한 방에 몰락한 과정과 이유는 참 간단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PC 기반에서 모바일 디바이스 기반으로 신속히 바뀌는 트렌드에 올라타지 못했다. 모든 노트북과 데스크톱에 깔려 수시로 뜨던 네이트온도 사라지면서 카카오톡의 시대가 열렸다. 격변의 시기였다. 싸이월드의 연이은 패착은 자신들의 서버에 잠긴 전 국민적 추억의 가치를 지키고 재구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달라 애원하는, 흑역사를 지우겠다 벼르는 ‘사심’ 속에는 레트로가 된 그 시절의 향수가 있다. 기술이 아니라 스토리와 소통만으로도 부활이 가능한데 제대로 리부팅을 못 하고 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