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징 상호운용성, 카톡이 개방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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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장법(DMA·Digital Markets Act)이 유럽에서 합의되면서 상당히 시끄럽다. 빅테크에게 다양한 규율을 과하기로 한 것인데, 그중에서도 메신저 간에 상호운용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에 이목이 쏠렸다. 우리 환경에 빗대어 말하자면 카카오톡으로 보낸 메시지를 네이버 라인에서도 받을 수 있도록 목표를 잡고 규제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인기 메시징 서비스가 개방되면 다른 소규모 메시징 플랫폼과도 상호 연동이 가능하므로 카톡을 지우고 마음에 맞는 메신저를 골라 쓸 수도 있게 된다.

Photo by William Hook on Unsplash

Photo by William Hook on Unsplash

한국의 인간관계에서 카톡을 쓰지 않기란 어지간한 용기가 있지 않고선 힘든 일이다. 직장 상사가 만든 팀 단톡방, 학부모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을 옆에 두고 “저는 카톡 안 쓰는데요”라고 말하기는 어지간해서는 곤란하다.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 않은 심리를 이용한 압박이 바로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공 비결이다. 공동체 내 점유율이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 플랫폼이 싫더라도 어쩔 수 없이 써야 한다. 배달앱을 거부할 수 없는 자영업자의 기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카톡을 쓰지 않더라도 카톡을 쓰는 이들로부터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면,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더 가볍고 편한 대안을 스타트업들이 제안할 수 있다. 카톡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맞춰 들러붙고 있는 이런저런 서비스에 신경을 뺏길 필요도 없다. 전 국민이 으레 카톡을 쓰겠거니 하면서 민간은 물론 심지어 공공에서도 중요한 절차적 정보를 문자가 아닌 카톡으로 보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상호운용성을 규제로 보장하면 모두 해결될 일이다.

유럽은 왜 이런 규제를 감행하려 하는가. 플랫폼에게는 ‘생태계’라는 말로 아무리 꾸며도 떨쳐내기 힘든 폐쇄적이면서도 이기주의적인 본능이 있어서다. 자신이 만든 서비스를 더 선호하고 자신의 다른 서비스에 묶어 팔려는 ‘자기 선호(Self Preference)’의 관행은 결국 드러나고 만다. 그리고 이는 반공정거래적 습성이다.

물론 규제가 만능일 리 없다. 그 특유의 폐쇄적 메시징 제품으로 이번 결정에서 주된 공적이 된 애플은 이러한 규제가 프라이버시 침해 및 보안 취약성 문제를 불필요하게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동을 위해 제3자에게 개방하는 구간이 약한 고리가 돼버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합리적인 의견이다. 메시지를 보내는 전 과정이 암호화되는 ‘종단 간 암호화’ 기능을 갖고 있는데다 서버에 접속기록을 남기지 않는 애플의 아이메시지 서비스만이 낼 수 있는 반대의견이다. 종단 간 암호화는 한국에서도 카톡이 비밀대화, 라인이 레터실링이라는 이름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별도로 적용해야 하는 기능이어서 의무사항은 아니다. 따라서 ‘상호운용성 보장’은 한국에선 오히려 별 부담 없이, 소비자 후생의 큰 저하 없이도 시도해볼 만한 규제다.

코로나19 방역 덕에 네이버앱과 카톡은 더 깊숙이 국민의 품으로 들어와 버렸다. 어찌 보면 정부에 의해 성장한 셈이다. 이제는 시민에게 개방할 때가 됐다. 세상에는 민간의 자율 규제로 가능한 일이 있고 불가능한 일이 있다. ‘메시징 상호운용성’은 어련히 스스로 알아서 잘할 리 없는 일에 속한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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