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폴-지구로 추락하는 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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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사고 장면부터 미심쩍은 의문을 던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좀처럼 납득하기 힘든 가설을 떡하니 던져놓는다. ‘차마 그건 아니겠지’란 생각에서 ‘하기야 그거 말곤 없겠군’이라고 스스로 타협해야만 하는 순간을 관객들은 강요받게 될 것이다.

제목 문폴(Moonfall)

제작연도 2022

제작국 미국, 영국, 중국

상영시간 130분

장르 SF, 모험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

출연 할리 베리, 패트릭 윌슨, 존 브래들리, 마이클 페나, 도널드 서덜랜드

개봉 2022년 3월 16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누리픽쳐스

㈜누리픽쳐스

“맙소사!” 영화의 설정을 듣고 부지불식간 튀어나온 말이다. 이제껏 별의별 재난영화를 봐왔지만 이젠 달이 지구로 내리꽂혀 충돌한단다. 감독의 이름을 듣고 나니 고개가 끄떡여진다. 롤랜드 에머리히. 그라면 충분히 가능한 영화다.

어느 날 달의 궤도가 틀어져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끔찍한 결과가 보고된다. 앞으로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30일. 중력이 무너지고 자기장이 뒤틀리는 바람에 끔찍한 재난이 속출하고 자포자기한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달을 올려다볼 뿐이다. NASA 연구원 조 파울로(할리 베리 분)는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고 전면에 나서 안간힘을 쓴다. 10년 전 우주비행을 함께했지만 불명예 퇴역한 후 비루한 생활을 하는 동료 브라이언(패트릭 윌슨 분), 우주 덕후 K.C.(존 브래들리 분)와 의기투합한 조는 박물관이 전시 중이던 우주왕복선을 수선해 달을 향해 날아오른다.

1955년 독일에서 태어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재난영화의 왕’으로 통한다. 상업적 감각과 재능이 남달랐던 그는 일찌감치 할리우드에 연착륙했다. <유니버설 솔져>(1992), <스타게이트>(1994) 등 국내에도 친숙한 초기 흥행작이 있지만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은 역시 <인디펜던스 데이>(1996)다. 도시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외계 우주선과 풍비박산 나는 백악관 장면을 담은 예고편만으로도 관객들은 열광했고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티켓값을 모아줬다.

방황 끝에 돌아온 ‘재난영화의 왕’

이후 <고질라>(1998), <투모로우>(2004), <2012>(2013) 등 역시 초자연적 재난 상황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니 그를 재난영화의 왕으로 인정할 만하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범상한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어쩌면 낙인처럼 각인된 재난영화 감독이란 수식을 지워내려는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2012> 발표 직후엔 더 이상 재난영화는 찍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했으니 말이다.

미국의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한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2000),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정체와 진실을 가정하는 <위대한 비밀>(2011) 같은 역사극도 연출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전환점이 된 스톤월 항쟁을 극화한 <스톤월>(2015), 미드웨이 해전을 다룬 <미드웨이>(2019)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스크린 위에 재현하기도 했다. 결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자신의 가장 큰 성공작인 <인디펜던스 데이>(2016) 속편에 이어 드디어 지구와 달이 정면충돌하는 영화까지 선보이게 됐다.

<문폴>은 그동안 에머리히 감독의 재난영화를 호의적으로 즐긴 관객들에게도 그리 좋은 평가를 받긴 힘들 것 같다. 일단 소위 자연재해를 빌미로 구현하던 대규모 군중 신을 상당히 축소했다. 그나마 체면상 제공하는 홍수와 해일 신 등도 인공미가 가득한 CG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과거 아날로그 재난영화에서 느낄 수 있던 놀라움은 증발하고 말았다. 제작비 절약과 더불어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기술력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관객에게 익숙하고 감독에겐 친숙한

가장 큰 문제는 달이 지구로 추락하는 ‘이유’와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작품을 즐기는 데 중요한 요소이므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겠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사고 장면부터 미심쩍은 의문을 던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좀처럼 납득하기 힘든 가설을 떡하니 던져놓는다. 허구의 상상력에 한계가 있겠느냐마는 이게 어느 정도 그럴듯해야 할 것 아닌가. ‘차마 그건 아니겠지’란 생각에서 ‘하기야 그거 말곤 없겠군’이라고 스스로 타협해야만 하는 순간을 관객들은 강요받게 될 것이다. 이런 난장 사이에서 출중한 배우들의 존재감이나 연기 평가는 끼어들 틈조차 없다.

에머리히 감독은 크리스토퍼 나이트가 발간한 책 <누가 달을 만들었는가>(2005)에서 대담하다 못해 극악무도한 아이디어를 시작했다는데 각본의 완성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책에서 주장하는 강력한 추론은 가뿐히 무시한 채 관객들에게는 익숙하고 자신에게 친숙한 소재 쪽으로 방향을 튼다. 애초 나이트의 과학적인(?) 주장 자체가 평범한 사람들을 설득하기에 한계가 있지만, 그렇다고 넘쳐나는 달 착륙 관련 음모이론에 풍덩 뛰어든 각본도 명석한 선택으로 보이진 않는다.

<문폴> 전에 <문 크래쉬>가 있었다

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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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뒤에는 아류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영화계도 당연히 오래전부터 이런 경향을 보였다. 흔히 언급하는 패러디, 오마주, 레퍼런스 등의 단어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유사한 장르의 작품을 양산하는 점잖은 경우도 있지만 때론 원작과 아류를 혼동할 정도로 대놓고 뻔뻔한 사례들도 적지 않다. 대놓고 만드는 아류작품들을 지칭하는 ‘목버스터’란 단어가 있을 정도다. ‘가짜, 속이다’라는 뜻의 목(mock)과 흥행대작을 뜻하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의 합성어다.

현대적 목버스터의 본격적 등장 현상은 미국영화사 어사일럼(The Asylum)의 역사라 단정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원래는 배급사업으로 출발한 어사일럼은 2000년대 들어서며 본격적인 아류영화 제작사로 거듭난다. <탑 거너>, <트랜스모퍼>, <애틀랜틱 림>, <시니스터 스쿼드> 등 제목만 들어도 원래 어떤 영화를 염두에 뒀는지 금세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한 작품들은 <메가 샤크> 시리즈나 6편이나 속편을 만든 <샤크네이도> 같은, 주로 상어가 등장하는 ‘코믹 공포물’이다.

최근엔 어사일럼의 성공에 고무된 후발 영화사 뉴 호라이즌 픽쳐스나 시네텔 필름이 목버스터계의 패권을 넘보고 있기도 하다. 목버스터의 가장 큰 특징은 오리지널보다 먼저 관객들을 찾아간다는 점이다. 당연히 에머리히 감독의 <문폴> 개봉에 사흘 앞서 어사일럼이 <문 크래쉬>를 내놓았다. 달에 문제가 발생해 지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는 설정이야 당연하지만, 공교롭게도 전자기 펄스(electromagnetic pulse, EMP)를 언급하는, 문제의 결정적 해법까지 유사하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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