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가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부터 3월 3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동안 온전히 열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 행사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가 공습한 2020년 행사는 35년 역사상 처음으로 아예 열리지 못했다. 지난해는 6월로 미뤄 반쪽짜리 비대면 행사로 열었다. 그런 만큼 올해는 더 성대하고 화려한 잔치로 관람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인류의 발목이 꽁꽁 묶이자 휴먼 네트워크의 연결성이 비대면 상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비대면 디지털 기술이 어느 때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올해 MWC의 주제인 ‘연결성의 촉발(Connectivity unleashed)’은 디지털 기술의 이런 가능성을 강조한 말이다.
사실 최근 세계 각 도시의 명망 있는 전자쇼는 차별화가 사라졌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 불참한 ‘메타(구 페이스북)’의 참여가 눈에 띌 뿐, MWC 전시의 주류도 AI, 로봇, 메타버스와 사물인터넷 관련 기술 등으로 다른 전자쇼와 대동소이했다. 본래 이동통신 기술 행사라는 점에서 5G 통신망 활용을 극대화한 기술을 선보인 게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었다.
이번 MWC의 차별점은 오히려 행사 외부의 각축전에서 두드러졌다. MWC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가 주관하는 행사다. 이들은 구글,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공급자(CP)’ 측에 5G 통신망 비용을 더 부담하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 세계 5G 통신망 사용량의 30~50%를 CP들이 차지하고 있어서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OTT 서비스를 통해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소비했나를 생각해보면 그럴 법도 하다.
이는 해묵은 논쟁이기도 하다. 21세기 초 각 나라가 인터넷의 등장과 활용에 대비해 광대역 통신망을 구축하던 시절,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앨 고어 부통령은 ‘초고속 정보고속도로’를 주창했다. ‘가상공간의 고속도로’ 개념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테네시주 상원의원으로 1950년대 고속도로 건설지원법을 주창한 데서 진화한 정치적 포석이기도 했다. 필자는 그때 CP 지원 강화를 주장했다. 고속도로를 넓게 뚫었는데 정작 자동차가 지나다니지 않으면 낭비가 아니겠는가 하는 관점이었다.
IT 영역에서 망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산업은 상호 균형을 이루며 발전해야 한다. 정작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콘텐츠의 다양성과 정보의 질이다. 그간 IT산업은 정량화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정보의 양을 강조했다. 과금도 정액제와 종량제 등 사용시간과 사용량으로만 한다. 이제는 정보의 질에 집중해야 한다.
이탈리아 석학 움베르토 에코는 2007년에 낸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는 책에서 “인터넷의 무정부 상태는 어떤 주소(사이트)가 흥미롭고 어떤 주소가 어리석은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양질의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가상공간의 생활화가 이뤄진 지난 20년 동안 유익한 정보들이 많아졌다. 여전히 정보의 질은 더 끌어올려야 한다. 콘텐츠 공급자의 부담을 키우면, 콘텐츠의 질이 높아지기 어렵다. ‘통신망 운영 비용의 합리적 분담’과 ‘양질의 콘텐츠 확보’라는 두가지 과제를 함께 해결할 묘수를 고민할 때다.
<최영일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