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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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못할 것을 찾아나서는 용기와 기쁨

영화는 시종일관 극단적 클로즈업으로 촬영한 화면을 이어간다. 피사체의 특정 부분만을 명확히 포착하고 이외의 배경이나 인물들은 희미하게 보여준다. 시각장애인의 시점을 최대한 모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제목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The Blind Man Who Did Not Want to See Titanic)

제작연도 2021

제작국 핀란드

상영시간 82분

장르 드라마

감독 테무 니키

출연 페트리 포이콜라이넨, 마르야나 마이야라, 마티 오니스마

개봉 2022년 3월 10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슈아픽처스

㈜슈아픽처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이하 <그 남자는…>). 일단 제목만큼은 호기심을 유발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협소한 정보로 몽환적 이미지의 포스터만 접한다면 혹시 그 유명한 20세기 초 최악의 해양참사를 소재로 한 새로운 작품인가 의심해볼 만도 하지만 시대적 배경은 현대이고 무대도 영국이나 미국이 아닌 핀란드다. 야코(페트리 포이콜라이넨 분)는 난치병인 악성 다발 경화증을 앓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세가 심해져 이제는 앞을 볼 수 없고,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에게 유일한 낙은 의료 목적 하에 합법적으로 피울 수 있는 대마초와 하루에 몇 번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여인 시르파(마르야나 마이야라 분)와 주고받는 전화통화가 전부다. 시르파 역시 혈액염을 앓고 있는 터라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어느 날, 기대하던 치료가 실패했다는 시르파의 낙담한 목소리를 전해 들은 야코는 그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택시 두 번, 기차 한 번으로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야코에게는 목숨을 건 모험이다.

‘장애인’이 아닌 ‘사람’에 대한 영화

짐짓 심각하고 우울해질 수 있는 소재에도 절망과 유머, 사색과 재미의 적절한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인터뷰를 통해 감독은 “장애인에 대한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 공교롭게도 장애인이 된 사람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회고한다. ‘장애’보다는 ‘사람’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강조한다. 작품이 지향하는 최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재확인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제작 뒷이야기도 영화만큼이나 흥미롭다. 어느 날 테무 니키 감독은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지난 20여년 동안 감독의 경력을 지켜봐 왔다는 그는 한동안 전문 배우로 활동하다가 악성 다발 경화증 진단을 받아 지금은 실명하고 하지마비로 휠체어에 의존해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를 통해 젊은 날 함께했던 행복한 추억을 되살린 감독은 친구에게 아직도 연기를 하고 싶은지 물었고, 이는 <그 남자는…>의 시작이 됐다. 연락을 취해온 그 친구는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을 연기한 실제 장애인 배우 페트리 포이콜라이넨이다.

처음에는 페트리가 잠시 등장하는 단편을 구상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야기를 확장했고 페트리의 비중 역시 커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단순히 장애인의 현실을 기록하는 정도가 아니라 뚜렷한 상업영화의 장점을 취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를 내내 중요하게 유지했다.

시각장애인의 시점을 고려한 촬영

영화는 시종일관 극단적 클로즈업으로 촬영한 화면을 이어간다. 피사체의 특정 부분만을 명확히 포착하고 이외의 배경이나 인물들은 희미하게 보여준다. 시각장애인의 시점을 최대한 모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불편함이란 넓은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는 답답함에 비할 바가 아니리라.

이는 장애를 지닌 배우 페트리 포이콜라이넨을 배려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보편적인 화면구도를 염두에 두고 폭넓은 연기를 펼치는 건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밖에도 그가 편안하게 영화에 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배려했다. 실제 페트리의 집에서 촬영했고, 다른 배역들 역시 그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학우와 동료들로 섭외했다고 한다.

지난해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신설한 관객상인 오리종티 엑스트라 부문에서 최초 수상작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호평을 얻었다. 이전까지 비교적 무난한 작품들을 선보여온 감독의 작품 연보에서도 확실한 도약으로 기억할 만한 작품이다.

그런데 제목은 대체 무슨 뜻일까? 나름 재미도 있고 중요한 부분이라 답은 유보하기로 한다. 조금 힌트를 드리자면 주인공 야코를 한때 대단한 영화광이었던 인물로 설정하고 있다. 상당 부분 테무 니키 감독 스스로를 반영한 인물이기도 하다.

핀란드를 대표하는 젊은 감독 테무 니키

각본가 겸 공동제작자 야니 푀쇠(왼쪽)와 감독 테무 니키 / cineuropa.org

각본가 겸 공동제작자 야니 푀쇠(왼쪽)와 감독 테무 니키 / cineuropa.org


세계 영화시장의 영향력에서 핀란드는, 몇몇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가 그렇듯 불모지나 다름없다. 그곳 출신의 감독 중 국내 관객들이 잘 아는 인물이라면 <나는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했다>(1990),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1993) 등을 연출한 아키 카우리스마키 정도가 유일하겠지만 이미 과거의 이름이 됐다. 무리하게 끼워넣자면 핀란드 태생의 미국인 레니 할린(<다이 하드 2>, <클리프행어>)도 있겠지만 역시나….

1975년생인 테무 니키는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했고, 2013년에 제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야니 푀쇠와 함께 제작사 ‘이츠 얼라이브 필름’을 설립해 운영하며 대부분의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그들은 단편영화부터 뮤직비디오, TV시리즈, 장편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왕성한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기본적으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오락영화의 미덕을 중요시하면서도 진중한 사회문제를 소재로 다룬다.

세 번째 장편영화 <동물 안락사>(2017)는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핀란드 대표로 출품한 작품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국내에 처음 소개한 그의 작품이기도 하다. 반려동물 학대와 외로운 현대인의 소외를 절묘하게 병렬한 기괴한 복수극으로 “고통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주인공의 한마디가 작품의 주제와 분위기를 단적으로 응축한다.

다음 장편인 <님비: 우리 집에 오지 마>(2020) 역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소개하며 관객상을 수상했다. 도시에 사는 메르비가 동성애인 카타와 함께 커밍아웃을 위해 충동적으로 시골 고향마을을 방문한다. 뒤쫓아온 무슬림 정치인인 카타의 어머니와 동네의 네오나치 집단이 마주치게 되면서 이들은 심란한 소동에 휘말린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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