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은 지난 2월 10일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 노동자였던 고 김용균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한국서부발전과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및 임직원 등에 대한 1심 판결을 선고했다.
한국서부발전은 한국발전기술에 태안발전본부에서 석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 등 연료환경설비 운전·점검, 낙탄 처리 및 사업수행 장소의 청소 등 설비 운전 관련 업무를 위탁했고, 한국발전기술 소속이었던 피해자는 2018년 12월 10일 컨베이어벨트 및 아이들러(롤러) 점검, 탄 처리작업 등을 하는 과정에서 컨베이어벨트와 아이들러 사이의 물림점에 끼어 사망했다.
원청 한국서부발전에 무죄 선고 서산지원은 피해자를 비롯한 한국발전기술 소속 노동자들이 한국서부발전과의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선고했다.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따른다(형법 제1조 제1항). 2018년 12월 10일 당시 구 산안법은 도급인으로 하여금 관계수급인과 함께 관계수급인 노동자의 안전·보건조치를 하도록 공동책임을 부과하고 있었으나, 도급인 사업장 내 작업장소가 추락, 토사 붕괴 등 22개의 위험장소가 아니라면 수급인 노동자의 산업재해에 도급인의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김용균씨가 수행했던 작업은 위 22개의 위험장소에 해당하지 않았다.
한편 구 산안법(제66조의2)은 이 법 제23조 제1항을 위반해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제23조 제1항은 “사업주는 사업을 할 때 기계·기구, 그 밖의 설비에 의한 위험 등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돼 있다. 구 산안법 제66조의2, 제23조 제1항 위반죄는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있어야 성립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검찰은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김용균씨 사이에 ‘실질적 고용관계’가 있다고 보고, 한국서부발전에 구 산안법 제66조의2, 제23조 제1항 위반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1심 법원은 ①한국발전기술이 작지 않은 규모의 사업체로서 독자적인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점, ②한국서부발전이 한국발전기술에 위탁한 석탄취급설비 운전업무는 기기와 설비에 대한 지식과 일정 수준 이상의 현장경험이 필요한 업무로서, 한국발전기술이 작업지침서를 직접 작성하고 설비의 시운전 당시부터 투입돼 업무를 수행하는 등 나름의 독자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던 점, ③한국서부발전 노동자들의 한국발전기술 노동자들에 대한 업무지시와 요청이 일상적이고 구속력 있는 지시라고 보기는 어려운 점, ④한국발전기술이 그 소속 노동자들에 대한 인사권·징계권을 행사하고, 노동자들에게 업무를 배정하며 근태를 관리한 점, ⑤한국발전기술의 노동자들이 한국서부발전 직원들의 업무를 대체하지는 않은 점 등에 비춰 피해자를 비롯한 한국발전기술 소속 노동자들과 한국서부발전 간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의 불비로 처벌 피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한국서부발전에 산안법 위반 책임을 물으려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 1심 법원도 기존 판례에 따라 판단했다. 그래도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에 무죄를 선고한 걸 마음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한국서부발전의 사업장에서 하청노동자 산재 사망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법의 불비로 인해 한국서부발전이 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김용균법’이라고도 부르는, 2019년 전면 개정한 산안법은 이러한 불합리함을 개선하기 위함이었다. 2016년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이후 하청노동자의 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산안법 개정안들이 발의됐으나, 기업들의 반발로 개정을 이루지 못했다. 김용균씨 사건의 발생으로 법 개정 여론이 다시 높아졌고 유해·위험 작업의 도급 제한, 원청의 책임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산안법 개정안이 2018년 12월 27일 국회를 통과했다.
산재 사망자들에 빚진 법들 이후 산안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하자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법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주장이다. 김용균씨가 한 발전소 운전·점검 업무는 도급금지 대상도, 승인 대상도 아니었다. 건설현장이나 조선소 등 중대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업장에서 수행하는 업무 중 상당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에 대한 실망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으로 이어졌다. 다만 발전소 운전·점검 업무가 도급금지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개정 산안법은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노동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자신의 노동자와 관계수급인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안전·보건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개정법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개정법 시행 이후에 김용균씨 사건이 발생했다면 도급인인 한국서부발전은 산안법 위반죄로 충분히 의율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최근 시행에 들어간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도급인인 한국서부발전의 대표이사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도 있었다.
사람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필자 또한 잊고 있었다. 정혜진 변호사가 쓴 <이름이 법이 될 때>라는 책 제목이 상징하듯, 2019년에 전면 개정한 산안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고 김용균씨를 포함한 많은 피해자의 안타까운 사망에 빚지고 있음을.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