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원찰의 겨울
서울 은평구 진관사](https://img.khan.co.kr/newsmaker/1465/1465_64.jpg)
눈 내린 뒤 햇볕 따사로운 날, 북한산의 명찰 진관사로 향했다. 고려 현종 원년(1010)에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한 절이다. 서울 인근에 4대 명찰로 손꼽힌다. 조선시대에는 조종선령(祖宗仙靈)과 순국충열(殉國忠烈)을 위한 수륙대재를 지내던 왕실 원찰로 기능했다.
수륙재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위로하고 부처의 세계인 도솔천에 들도록 기원하는, 불교의 가장 복잡하고 규모가 큰 의식이다. 25개의 불단을 쌓고 공양물을 풍성하게 차려 25가지 의식을 치러내는 종합예술에 가깝다. 큰 행사를 주도하던 절이기에 음식에 일가견이 있다. 특히 두부를 만들어 진상하는 조포소(造泡所)로 이름이 높았다. 지금도 진관사의 장맛은 일품이다.
진관사는 고찰이지만 시간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전쟁 당시 한차례 잿더미가 된 탓이다. 재건 과정에서 쏟아부은 정성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옛 왕실 원찰의 위상은 사라졌지만, 눈 덮인 산세가 전각의 선과 선으로 이어진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한 폭의 커다란 그림이 그곳에 있었다.
<글·사진 정태겸 글쓰고 사진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