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생애 가장 고된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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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리라.’

높은 담벼락 안을 거닐며 마지막 낙엽을 쓸던 와중에 누군가 자조 섞인 감탄을 내뱉습니다. 바깥세계에서 누렸던 크리스마스의 아늑함을 단 1%도 재현할 길이 없어 애써 의식하지 않고 지나치려 했건만, 눈치 없이 불행을 입 밖으로 꺼내는 죄수들 때문에 초연함을 잃고 말았습니다. 퇴근길 몸수색을 기다리는 복도에서는 교도관의 제지에도 거의 모두가 이성을 잃은 듯 술렁였고, 저 역시 휘청였습니다. ‘박근혜가 사면됐다’는 소식이 일파만파 퍼졌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으려 했지만, 석간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기사마저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고, 3000명이 넘는 대규모 사면·감형·복권 명단에 내 이름은 없는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부터 2021년의 마지막 날까지 악몽을 잇달아 꿨습니다. 희망고문에 시달리던 날들이 저문 후, 새로 붙은 달력을 원망하듯 응시합니다.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지난해 12월 30일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반대 시민발언대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사면 반대 구호가 적힌 피켓과 촛불을 들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지난해 12월 30일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반대 시민발언대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사면 반대 구호가 적힌 피켓과 촛불을 들고 있다. / 권도현 기자

격주로 찾아오는 매서운 한파로 창가에 세워둔 물병이 얼어붙었습니다. 징역살이에 도가 튼 이들 덕에 벌어진 창틈 사이로 신문지를 말아 끼워넣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럼에도 웃풍은 벽에 구멍이 뚫린 듯 술술 들이칩니다. 나이 들어보인다고 늘상 멀리했던 내복을 세 벌이나 장만해 돌려 입습니다. 대략 5년 전 내복도 없이 견딘 끔찍한 겨울의 추위가 떠오릅니다. 광장에 운집한 사람들을 향해 모금을 독려하며 곳곳을 누빈 기억에 모처럼 빠져듭니다. 집회의 꽃인 행진을 시작하면 부리나케 짐을 정리하고, 대열을 뒤따라 달리며 열기로 추위를 덮었지요. 세상을 정말로 뒤집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흥분에 들떠 지내던 많은 토요일이었습니다. 그 기억이 감방 안에 침잠해 있는 나를 억지로 흔들어 깨웁니다.

“그로부터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많이 바뀌었냐.”

누군가 묻는다면 “내가 존재하는 자리를 보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체면을 차려 점잖게 표현하자면, “원하고 기대했던 만큼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야겠죠. 감옥세계에서 질리도록 체득한 태도에서 보면 생애 두 번 보기 어려울 혁명으로 이룩한 변화가 이 정도이니 남은 것은 퇴보뿐이지 않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온 힘을 모아 외친 끝에 입법부와 사법부를 움직여 탄핵한 대통령을 느닷없이 사면한 조치는 거대한 전환을 꿈꾸는 청춘들에게 좌절과 화해하라고 강요하는 듯합니다. 행정부 정점에 있는 권력자가 수천만의 사람이 이룩한 합의를 하루아침에 뒤엎었습니다. 이 권위주의적 위력은 그저 충격스럽기만 합니다. 아직도 진실을 마주하지 못해 다시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 세상의 소음 속에 파묻히고 마는 광경이 철창 안에서도 훤히 보입니다. 촛불을 옹호한다는 세력이 어째서 겨울의 가혹한 고통만을 남기고 희망을 꺾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애석하게도 감옥세계에서는 그 어떤 설명도 요구할 수 없습니다. 형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뇌물수수범은 사면하면서, 왜 그들보다 형량이 짧고 재범의 위험이 낮은 ‘잡범’들에겐 끽소리도 하지 않고 지낼 것을 요구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특권을 갖지 못한 자는 특권을 지닌 자와 동등한 자유를 누릴 자격도 없다’는 명제만큼은 죽도록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신분이었던, 탄핵당한 대통령이 이 세계를 떠나는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감옥에서의 삶만큼은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평등하리라 기대했던 건 허황된 이상이었던 걸까요. 신념이 체념으로 바뀌고, 열정은 어느새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단단하던 내면에 균열이 생깁니다. 생애 가장 고된 겨울을 맞아 가장 약해진 나 자신을 마주합니다. 무력한 이 겨울에서, 감옥에서 벗어날 날만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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