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혼자였던 시간, 혼자가 아닌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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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외로운 동시에 너무나도 간절히 혼자이고 싶습니다. 한때는 독방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었지만 정치·경제적 거물이거나 사형수가 아닌 한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습니다. 빈틈없는 감시체계가 작동하는 감옥세계는 보통의 죄수들을 단 한순간도 홀로 두지 않습니다. 한두 평이라도 더 넓은 방에서 함께 일하는 죄수 무리와 별 탈 없이 잘 지내기를 바랄 수밖에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혐오와 차별의 시선, 주로 여성과 가난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죄수들의 말이 제 마음에 불길처럼 번지지 않도록 잔뜩 웅크립니다. 다행히 이곳에서 버틴 시간만큼 주어진 권력에 힘입어 다소 유별나게 굴어도 다른 죄수들이 크게 나무라지는 못합니다.

Photo by Tim Hufner on Unsplash

Photo by Tim Hufner on Unsplash

어려서부터 혼자인 시간이 많았습니다. 맞벌이부부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홀로 집 지키는 법을 일찍 터득했습니다. 저학년일 때부터 학교를 마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간섭 없는 자유를 누린 기억만 있습니다. 자유를 만끽했다 여겼던 그 시간이 실은 외로움과 직면하기 싫어 몸부림치던 날들이었음을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재수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 진학 가능성이 낮은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으려 입과 귀를 닫은 채 지내기도 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감방에서의 성찰이 현재와 닮은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냅니다.

목표했던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또래 모두가 각자의 방에 갇혀 정해진 이정표를 따라 착실히 나아가는 걸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밟고 밀어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록 부추기는 경쟁 구조에 진절머리가 났습니다. 공감받지 못할 고뇌에 허우적거리던 겨울, 용산 참사가 터졌습니다.

현실성 없는 장면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끝내 밀려난 사람들을 향한 비난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그리 쉽게 판단하고 말이란 걸 내뱉을 수 있는지…. 당시 속한 비좁은 세계에서 그나마 믿을 만한 이를 붙잡고 토로했습니다. 죽음을 향한 삿대질을 인정할 수 없다고, 종일 마음이 출렁거린다고. 무정하게 돌아온 답은 지금까지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게임의 규칙에 승복하지 않은 사람이 잘못했다”는 그 말, 아직도 섬뜩합니다. 너무나 평범해 차마 괴물이라 부를 수도 없던 이들 틈에서 혼자이고 싶지 않아 먼 곳으로 도망쳤습니다. 20대의 대부분을 허비했지만, 사회에서 밀려나는 존재들을 옹호하는 활동가들로부터 ‘동료’라 불리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방황이 끝났습니다.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후 이어진 모든 과정, 심지어 감옥에 갇힌 지금까지도 마음을 내준 동료들로 인해 더 이상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혼자일 수 없는 감방에서 혼자가 되어, 혼자가 아니란 사실에 안도하며, 곧 동료들 곁으로 돌아가리란 희망으로 또 하루를 버팁니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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