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없이 외로운 동시에 너무나도 간절히 혼자이고 싶습니다. 한때는 독방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었지만 정치·경제적 거물이거나 사형수가 아닌 한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습니다. 빈틈없는 감시체계가 작동하는 감옥세계는 보통의 죄수들을 단 한순간도 홀로 두지 않습니다. 한두 평이라도 더 넓은 방에서 함께 일하는 죄수 무리와 별 탈 없이 잘 지내기를 바랄 수밖에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혐오와 차별의 시선, 주로 여성과 가난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죄수들의 말이 제 마음에 불길처럼 번지지 않도록 잔뜩 웅크립니다. 다행히 이곳에서 버틴 시간만큼 주어진 권력에 힘입어 다소 유별나게 굴어도 다른 죄수들이 크게 나무라지는 못합니다.
어려서부터 혼자인 시간이 많았습니다. 맞벌이부부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홀로 집 지키는 법을 일찍 터득했습니다. 저학년일 때부터 학교를 마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간섭 없는 자유를 누린 기억만 있습니다. 자유를 만끽했다 여겼던 그 시간이 실은 외로움과 직면하기 싫어 몸부림치던 날들이었음을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재수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 진학 가능성이 낮은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으려 입과 귀를 닫은 채 지내기도 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감방에서의 성찰이 현재와 닮은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냅니다.
목표했던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또래 모두가 각자의 방에 갇혀 정해진 이정표를 따라 착실히 나아가는 걸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밟고 밀어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록 부추기는 경쟁 구조에 진절머리가 났습니다. 공감받지 못할 고뇌에 허우적거리던 겨울, 용산 참사가 터졌습니다.
현실성 없는 장면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끝내 밀려난 사람들을 향한 비난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그리 쉽게 판단하고 말이란 걸 내뱉을 수 있는지…. 당시 속한 비좁은 세계에서 그나마 믿을 만한 이를 붙잡고 토로했습니다. 죽음을 향한 삿대질을 인정할 수 없다고, 종일 마음이 출렁거린다고. 무정하게 돌아온 답은 지금까지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게임의 규칙에 승복하지 않은 사람이 잘못했다”는 그 말, 아직도 섬뜩합니다. 너무나 평범해 차마 괴물이라 부를 수도 없던 이들 틈에서 혼자이고 싶지 않아 먼 곳으로 도망쳤습니다. 20대의 대부분을 허비했지만, 사회에서 밀려나는 존재들을 옹호하는 활동가들로부터 ‘동료’라 불리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방황이 끝났습니다.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후 이어진 모든 과정, 심지어 감옥에 갇힌 지금까지도 마음을 내준 동료들로 인해 더 이상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혼자일 수 없는 감방에서 혼자가 되어, 혼자가 아니란 사실에 안도하며, 곧 동료들 곁으로 돌아가리란 희망으로 또 하루를 버팁니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