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를 비롯 미국 동남부를 강타했다. 1,836명이 목숨을 잃고 85만 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60만 개의 일자리가 타격을 입었고 1,300만 에이커의 산림 역시 훼손되었다. 이처럼 수많은 인명과 재산, 일자리, 환경의 손실이 발생했음에도 2005년 3분기에 미국의 GDP는 3.8% 성장했다. 재건을 위한 지출이 고용을 창출했고 의류, 가구를 비롯한 생활필수품 판매가 늘었기 때문이다. 건설 부문 지출증가, 생산시설 복구 과정이 오히려 GDP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GDP는 틀렸다”
국민 후생의 대표적 측정 도구로 사용된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선 GDP가 시장에서 측정되는 생산 활동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생산 활동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예를 들어 범죄와 관련된 활동은 아동의 건강과 보육을 위한 활동과 구분 없이 GDP에 포함되고 있다. 재화 생산과정에서 오염 물질을 만들어 환경을 파괴하는 활동 역시 똑같이 GDP에 합산된다.
두 번째로 GDP는 청소, 요리, 육아와 같은 가사노동과 자원봉사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포함하는 생산 활동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 GDP는 화폐로 환산 가능한 경제적 가치만을 측정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비임금 노동 등 가시적이지 않은 사회적 산출물을 관심 밖에 둔다는 지적을 받는다.
세 번째로 GDP는 불평등을 인식하지 않는다. 소득이 오르더라도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이 반드시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소득이 소수에게 집중된다면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은 GDP로 측정되지 않을 수 있다. GDP는 가계 간 소득 분포의 변화, 소득분배상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이 외에도 “GDP는 환경과 지속가능성에 관해 고려가 미흡하다”, “행복이나 삶의 만족과 같은 한 사회의 질적 수준을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등의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도 GDP는 여전히 한국과 세계 각국에서 국가 발전의 수준을 판단하는 대표적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GDP 중독의 시대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해묵은 성장 프레임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 올랐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성장이 1호 공약”이라며 “대전환의 위기를 경제 재도약의 기회로 만드는 강력한 경제부흥정책을 즉시 시작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경선후보로 나서 ‘중산층 경제 777 목표’를 제시하며 성장 전략으로 △기술성장 △그린 성장 △사람성장 △포용 성장 △공정 성장을 말했다.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던 유승민 국민의힘 대통령경선 후보는 “코로나 이후 시대적 정신과 가치는 경제다. 그중에서도 경제성장”이라며 “경제를 다시 성장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모든 공약을 거기에 맞추겠다. 결국, 공정 이슈도 경제로 풀겠다”고 말했다. 홍준표 의원 역시 국민의힘 대통령 경선후보로 나서 “복지는 현금 복지보다 일자리 복지로 전환해야 하고, 소득주도성장이 아닌 고용주도성장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생산 증대를 통한 양적 경제성장이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소득이 향상됐다고 해서, 즉 GDP 증가가 국민의 삶의 질과 항상 비례했던 건 아니다. 소득 불균형 심화, 저성장, 고실업, 기후위기, 금융위기, COVID-19와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았다. 따라서 웬만큼 경제성장을 이뤄 절대적 빈곤을 극복한 발전 국가에서는 ‘양적 성장’이 아닌,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질적 성장’으로 비전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IMF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한국 GDP는 1조 8,239억으로 세계 10위이며, 1인당 국내총생산은 약 3만 5200달러로 세계 29위이다. 1인당 소득 3만 달러 시대가 도래했지만 동시에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는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분출하는 사회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국민총행복을 측정하는 국가들
GDP 증가는 단순히 경제활동의 증가를 나타낸 것일 뿐, 지속가능한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만이 아니라 국민이 얼마나 행복한지, 잘 살고 있는지 측정하고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대안적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부탄은 1974년 GDP가 아닌 국민총행복(GNH : Gross National Happiness)이 국가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는 점을 헌법에 명시했다. GNH 개념은 크게 좋은 정부, 지속 가능한 사회 및 경제 개발, 문화 보존, 환경보전이라는 4가지 틀로 구성된다.
영국에서는 2010년 11월 캐머런 총리가 GDP는 국가의 성장을 측정하기에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GWB(Genenral Well-Being)라는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행복지수를 통해 영국인의 삶에서 무엇이 우선순위인가를 평가해서 장기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천명했다. 후속조치로 영국 통계청(ONS)은 국가 복지와 관련한 측정방법 개발에 착수해 ‘국가복지측정프로그램(Measuring National Well-Being Development Program)’을 수립했다.
우리나라도 국가의 정책적 관심이 경제성장에서 삶의 질로 옮겨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대안 GDP를 만들어왔다. 주체가 중앙정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로 다양하고 지표 개발 역시 민간 연구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소속 연구소로 다원화하는 양상이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은 2011~2014년 국민 삶의 질 지표를 개발했고 2017년에 첫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민 삶의 질 지표는 삶의 질을 구성하는 세부 생활 영역별 현황을 주요 지표로 측정하고, 이를 통해 국민 삶의 질 수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총 12개의 영역이 있으며, 그 안에서 71개의 지표를 측정한다.
최근에는 국가뿐 아니라 지역 수준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행복과 삶의 질 수준은 동일 국가의 국민이라도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OECD가 2014년 지역 웰빙을 측정하는 지표를 구축해 그 결과를 공표함에 따라 국가 내 지역별 비교는 물론 국제 비교가 가능해졌다. 영국은 2017년 로컬 웰빙 지표를 구축해 지역별 웰빙 수준을 비교하고 있다. 지역의 행복지표는 국가 수준의 행복지표와 유사하나 개인의 일상생활이 이뤄지는 지역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행정자치부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2015년 마을 단위의 자원, 지역공동체 역량, 주민의 삶의 질 현황을 담은 지역공동체 행복지표를 개발했다. 지역공동체 행복지표는 모든 지역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공통지표와 도시, 농촌, 도농복합 등 지역에 적용되는 특성화 지표로 구성된다. 2015년 개발이 완료된 지역공동체 행복지표는 마을 자원, 공동체 역량, 삶의 질이라는 3개 영역, 88개 세부지표로 구성됐다. 서울연구원이 주도해 개발한 서울형 행복지표는 2014년 서울형 행복지수 구축 연구를 시작으로, 8개 영역, 41개 지표를 구축했다. 이외에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대전광역시, 제주도, 인천 부평구, 전북 전주시, 경기 고양시 등 다양한 지역에서 국내 행복지표를 개발했다.
■사회적 가치를 계량화하는 것은 왜 중요할까?
행복지표는 경제적 GDP를 넘어 삶의 질을 측정해 사람을 위한 성장과 발전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행복지표는 화폐로 계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전을 받는다. GDP는 각 지표의 값을 산출해서 어떤 부분이 더 나아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즉 계산이 용이하고 쉽게 화폐가치로 산출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으로 GDP는 지금까지 정책결정 등에 오래도록 활용되고 있다.
행복지표는 화폐가치로 계량하지 않았기 때문에 GDP와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다. 양적 성장과 질적 발전의 격차를 확인하고 표현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행복지표가 국가 차원의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기 어려운 지점이다.
행복지표의 문제의식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만약 화폐화 방식의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를 도입한다면 사회정책의 타당성 및 실제 성과를 평가할 때 비용편익분석이 용이하여 활용도가 매우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량화한 성과값은 각 부처 및 지자체 등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지원정책에 적합하게 조정하여 활용할 수 있다. 통일성 있는 이러한 측정체계의 도입은 측정과 평가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감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더불어 화폐 방식의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를 도입하면 정책성과에 범부처의 통합 측정이 가능해 정부정책 및 사업 수행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공공 부문에서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가치의 이행 결과를 검증하고 투입된 경제적 가치인 세금의 사회적 가치를 계량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세금의 투입과 예산집행과 관련해 타당성을 얻을 수 있다.
공공부문뿐 아니라 기업 부문에서도 화폐화 방식의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는 많은 도움을 준다. 만약 사회성과를 시장과 경제활동의 언어인 화폐가치로 측정하게 된다면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에 사회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게 된다. 이때 단위를 통일하기 때문에 다양한 자원 투입과 산출을 비교할 수 있고 측정 방법의 반복 적용이 가능하기에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관리적 차원에서 사회적 가치에 관한 정량적 근거를 만들 수 있고 이러한 성과와 비용을 기반으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게 된다. 비용 대비 효과성이 높은 사회적 가치 창출의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사회적 가치의 계량화는 조직 내부의 관리뿐 아니라 조직 외부로부터 자원을 끌어오는 것 역시 쉽게 만든다. 사회적 가치의 추구가 명목상 경제적 가치의 일부를 훼손하는 상충관계에 있다 할지라도 영업이익과 사회적 성과를 합산하여 총 가치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경제적 가치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때 동기부여가 되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 사회적 가치 활동이 제대로 수치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는 일종의 이타적 선의로 간주됐다. 그러나 만약 사회적 가치를 계량화하게 되면 사회적 투입(input)뿐 아니라 사회적 효과(impact)와 성과(outcome)를 나타낼 수 있게 된다. 조직의 성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 자원 유입(투자)을 끌어내는 정보로 활용된다. 더불어 기업가치 평가에 활용되기에 사회적 제품 시장과 함께 사회적 자본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다.
■기업 경영의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론: SROI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중요해지면서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론이 개발됐다. 그중 사회적 투자수익률(SROI : Social Returen On Investment)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공공기관의 개입이나 프로그램, 정책이나 조직에 의해 창출되는 사회ㆍ경제ㆍ환경적 가치를 이해하고 측정ㆍ보고하는 데 사용되는 방법론이다. SROI를 이용하면 조직의 재정 및 운영비용의 사회적 편익과 사회적 비용을 계산해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수 있다. SROI의 특징은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책정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가치와 더불어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상승시키는 전략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SROI는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방식에 따라 REDF(The Roberts Enterprise Development Fund)방식과 NEF(New Economics Foundation)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REDF 방식은 가치계산을 강조한 방법이고, NEF 방식은 이해관계자의 사전 식별과 민감도 분석을 강조한 방법이지만 두 방식은 실질적으로 동일한 단계를 거친다. 즉 1)범위설정과 이해관계자 확인 2)결과물 맵핑 3)결과물 증명, 가치부여 4)영향력 산정 5)SROI 산출 6)보고 및 활용 내재화의 순서로 진행된다.
SROI는 중요 정보를 채택한 뒤 비용편익 분석의 관점에서 각 결괏값의 총합을 구하는 프로세스로 사회적 성과를 측정한다. 비용편익 분석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들어간 비용과 그 결과로 증가한 사회적 편익을 측정하여 비율로 나타내는 방법이다. 이때 사회적 가치는 사업으로 인해 창출되는 편익을 총 합산한다.
SROI는 평가성 SROI와 예측성 SROI로도 나뉜다. 평가성 SROI는 이미 일어난 실제 결과를 토대로 사후에 수행하는 방법이며, 예측성 SROI는 얼마나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를 사전에 예측하는 방법이다. SROI 값이 과대하게 추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자료의 사용과 추정값의 계산은 가장 보수적인 관점으로 수행하기도 한다.
SROI는 특히 사회적 효과를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데에 매우 유효하다. SROI의 모든 사회적 가치는 화폐가치인 단일 단위로 측정된다. 따라서 환경과 사회 등 서로 다른 측정지표를 비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측정 주체가 달라도 비교할 수 있어 직관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난점은 사회문제 해결 효과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업에 있어 단기 결과물로만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게 되면 그 가치가 과소평가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는 사회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며,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재무적인 관점만으로 성과를 측정할 때 서비스 제공에 따른 편익이 과소 추정될 우려가 있다.
아직 사회적 가치로 환산하는 데 사용할 만한 신뢰성 있는 데이터 지표가 구축되지 못했다는 게 SROI 도입의 어려움으로 지적된다. 객관성 논란 때문에 신뢰도 문제가 지속해서 거론된다. 따라서 영역별로 신뢰성 있는 대표 지표의 객관화를 이뤄야 한다.
■국제사회에서의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론: GPI
GDP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사회 역시 GDP의 여러 대안 지표를 개발해왔다. 그 중 참진보지수(GPI, Genuine Progress Indicator)는 GDP로 측정되지 않는 환경적, 사회적 요소를 통합하여 국가의 경제 규모와 관련된 후생을 고려하는 지표다. GPI는 경제 후생의 더 정확한 측정치를 제공하기 위해 자연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감소시키는 경제활동과 증가시키는 경제활동을 구분하여 파악한다. 지속 가능한 경제 후생 측정의 시도이다.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GPI가 현재의 경제 후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미래 세대 후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GPI는 SROI의 측정방식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 전환 방식’을 활용해 측정한다. 단일지수 및 영역별 대시보드 형식으로 제공되는 GPI 산출 방식은 SROI와 달리‘개인의 소비’를 바탕으로 계산된다. 경제, 환경, 사회 부문의 세부지표들을 ‘화폐단위’로 환산하여 더하거나 빼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때 더하는 값은 ‘가치’이고, 차감하는 값은 ‘비용’을 의미한다. 연구자 및 연구기관에 따라 세부지표가 달라지지만, 주로 ‘개인소비’에서 환경오염과 범죄, 소득 불평등, 여가 감소 등의 비용을 빼고 가사노동이나 봉사활동 등의 가치를 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GPI는 비(非)시장 이익을 고려하는데, 여가와 육아와 같은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시간과 관련한다. 소득 불평등, 가계 자본과 공공서비스 역시 지표에 반영한다. 그런 다음, 공해 관련 비용과 같이 경제발전의 부작용을 포함하는 비용이나 교통사고 비용과 같은 순수하게 방어적인 지출을 경감한다. 이 단계에서 기존 및 미래 세대에 의해 발생한 자연 자본의 감소 및 고갈과 관련된 비용의 공제가 이루어진다. 소득 불평등 및 범죄 비용, 환경 악화 및 여가 손실, 자원봉사와 가사노동과 관련한 추가비용 역시 적용된다. 특히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를 고려하고, 지속가능한 소비와 지속가능하지 않은 형태의 소비를 구분함으로써 GDP 결함의 시정을 시도한다.
17개 국가의 1인당 GDP와 1인당 GPI를 비교한 결과 1950년대 이후 전 세계 1인당 GDP와 1인당 GPI는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으나, 1970년대 이후로 1인당 GPI는 제자리 걸음을 하다가 이후에 감소한다. 1인당 GDP가 1970년 2,032,086원에서 2017년 33,232,357원으로 나타나 연평균 6.13% 증가했다. 반면 1인당 GPI는 2,595,645원에서 16,939,547원으로 계산돼 연평균 4.07% 증가하는 데 머물렀다. 양적 경제성장이 사회 전체의 후생을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1970년대 이후 양적으로 경제는 성장했지만, 사회문제 및 환경문제는 고려하지 않아 GDP와 GPI의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에서도 1인당 GDP와 1인당 GPI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GPI와 GDP의 변화 추이를 파악했을 때 2006년 이후 GDP는 지속해서 증가했지만, GPI는 정체돼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2008년에 GPI 값은 감소했는데, 이러한 후생 감소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GPI는 나라별 자료의 수집이 상이하거나 연구자들이 특정 가치에 초점을 맞추어 지표를 구성하기 때문에 지표의 목록에서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참발전지수(GPI)의 개발 및 적용에 관한 연구’ 논문을 작성한 김경아 씨는 “탄소 배출의 사회적 비용을 포함시킬지, 일부 고등 교육의 파급 효과에 가치를 부여할지와 같이 중요한 세부 사항에서 광범위한 차이가 목격된다”고 말했다. 또한 “화폐가치 전환이 가능한 영역이 있고,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제약이 많은 영역이 있다 보니 GPI 지수에 포함될 수 있는 영역에 제약이 있지만, 최종결과가 화폐가치로 제시되기 때문에 GDP와 같이 직관적이고 그 영향이 보다 광범위하게 미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GPI는 GDP와 직접 비교가 가능하고 정규화나 표준화 방식을 따르는 다른 지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단하기 때문에 국가 정책에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GPI와 같은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론을 통해 경제적 활동의 편익보다 사회적 비용이 더 비싸다는 것을 계산할 수 있다면 해당 경제 활동을 멈추거나 개선하는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
■민간과 공공영역을 아우르는 사회적 가치 측정은 왜 필요할까?
공공부문은 영리 기업, 사회적 기업과는 조직의 존재 이유, 비전, 목표, 핵심 가치, 일하는 방식, 성과가 다르다. 사회적 가치의 방향성과 영역도 마찬가지로 다르다. 영리 기업은 이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이해관계자 특별히 고객, 주주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따라서 공공기관이 영리 기업의 사회적 가치 측정 경험을 모두 수용하는 가치 측정 방법을 도입하는 게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두 부문을 아우르는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내지 못한다면 편익과 비용을 시장과 공공의 영역에 공통으로 유연하게 반영하기 어렵다. 조직의 외부 환경과 각 행위자가 가지는 공통점을 중심으로 민간과 공공 부문을 포괄하는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론을 개발하려는 건설적 논의가 필요하다. 그 자체가 사회적 가치 창출에 도움이 된다.
■국가적 지표 도입의 선행 과제
화폐단위로 사회적 가치를 계산하는 방법론은 마련돼 있지만, GDP만큼 널리 활용되지는 않는다. 지표 측정은 모든 사람이 같은 값을 측정할 수 있을 때 하나의 지표로서 의미가 있다. GDP는 모든 국가가 다 같은 방식으로 측정하고 있으므로, GDP가 반영하는 부가가치가 정당한가 하는 논쟁에도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제도적으로 단일한 체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상명대학교 경영학과 조일형 교수는 “사회적 가치를 화폐 액으로 변환할 때 사람마다 추정치가 달라서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며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모여서 합리적인 사회적 가치 측정 체계를 의논하고, 그것을 제도화하고 문화 관습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치용 ESG연구소장은 “사회적 가치의 측정 방법론을 개발하는 것은 경제학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학의 문제”라며 “어떤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보고, 그것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부여할지는 결국 공동체가 합의할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폐수 1L의 사회적 가치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폐수로 인한 사회적 손실액을 구한다면 손실액을 측정하는 주체별로 가치 환산액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폐수 1L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 대용치(代用値)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행위 주체별로 주관적인 관점이 많이 들어있기에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모여 사회적 가치측정에 합의하고, 기초 통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해법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 가치의 명확한 개념을 먼저 합의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가치는 일개 정책적 의제로서 소모적인 홍보 대상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뿐이다.
국내에서 사회적 가치에 관한 입법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나 발의안에서 사회적 가치 측정방식과 지표의 가이드라인까지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2014년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포함한 의원 60명이 제19대 국회에서 최초로 ‘공공기관의 사회적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을 발의한 이후 제20대 국회에서 2016년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듬해 같은 당 박광온 의원이 연이어 해당 법안을 내놓았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20년 제21대 국회가 시작된 후 첫 번째 법안으로 그해 6월 박광온 의원이‘사회적가치 기본법’을 다시 발의했고, 9월 같은 당 홍익표 의원도 같은 이름의 법안을 제안했다. 이 법은 사회적 가치를 “사회ㆍ경제ㆍ환경ㆍ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로 정의했고, 세부적으로 13개로 구분했다. 발의안을 보면 사회적 가치 실현 성과는 매년 평가해야 하지만 방식에 관해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만 명시했다. 어떤 지표를 이용해 평가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은 공공부문이며 민간영역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공공부문에서 먼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 후 민간부문으로 확산시키자는 게 이 법 제정의 목적이다.
모든 경제주체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기 위한 지표는 기업, 국민, 정부, 학계 등 모든 당사자가 참여해서 사회적 가치의 정의와 측정 방법을 지속해서 논의해야 한다. 모든 당사자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여 숙의의 긴 논의를 거친 다음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제도화 단위의 기구를 만들어 지표와 방법론을 확정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개별 지역과 국가의 특성에 맞는 데이터 구축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측정할 수 있게 되면 모든 경제주체가 경제적 가치와 더불어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증대시키는 전략을 모색할 수 있다. 모든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인 단일 단위로 측정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측정지표들을 비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측정 주체가 상이하더라도, 비교가 가능하여 실질적인 의사결정에 도움이 된다.
SK에서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같이 보여주는 DBL(Double Bottom Line)을 도입하여 결괏값을 발표한 적이 있다. 제품ㆍ서비스의 사회성과 측정을 시도한 이 방법론은 민간기업과 공기업에 확산하고 있다. LH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다수의 시장형 공기업이 2019년 공공기관경영평가에서‘주요 사업’의 사회적 가치를 제품ㆍ서비스의 사회성과 화폐가치 환산치로 활용한 바 있다. 사회적 경제에서는 SK의 사회성과인센티브(Social Progress Credit, SPC) 사업에서 2015년부터 200여 개 사회적 기업의 사회성과를 화폐가치로 측정하여 보상하고 있다. SPC 역시 제품ㆍ서비스 사회성과를 측정한다.
반면 국제기구 및 정부는 다른 측정 주체보다 정량적 또는 화폐적 측정 방법이 적다. 또한 기업, 공공부문, 국민의 행위를 아울러 사회적 가치를 화폐 액으로 환산하는 한국형 사회적 가치 국정지표는 아직 없다.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측정하는 현실적인 방법은 준거 가격을 국제기준 또는 공신력 있는 기관의 수치를 사용하는 것이다. 만일 한국형 사회적 가치 측정 지표를 개발한다면 한국의 환경, 경제, 사회문화적 상황을 반영한 사회적 가치 데이터가 필요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각하게 드러나는 사회 문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대기업-중소기업 생산성 격차와 제조업-서비스업 격차를 보인다. 탈세계화 흐름도 수출국인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내부의 디지털화는 빠르게 진전되고 있지만, 새로 진입한 혁신기업들이 국제적 기업으로 크는 속도는 더디다. 또한 2020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0.84명으로 인구절벽 위기에 놓여있다.
한국 실정에 맞는 사회적 가치를 개발해야 비로소 한국의 사회문제를 진단하고, 사회적 가치를 증진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할 수 있다. 합의를 통해 한국 실정에 맞는 사회적 가치를 표준화하는 등 합리적인 측정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더 나아가 한국형 사회적 가치 측정지표를 개발한다면 앞으로 사회적 가치 측정의 국제적 표준을 만들 때 하나의 준거틀이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현재 절대적인 글로벌 측정기준은 없는 상황이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국제사회에서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에 관한 글로벌 표준화 논의가 꾸준히 있었다. 하지만 특정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을 표준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글로벌 합의를 통해 표준화한 기준을 제정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조일형 교수는 “국내에서 체계화한 측정방식을 만들었을 때 그 방식이 합리적이라면 향후 국제적으로 이런 흐름이 왔을 때 선도국가로서 국제표준을 제시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청년ESG프로젝트팀 노희원(연세대 신학과 3년)ㆍ현경주(경희대 언론정보학과 3년)ㆍ현예린(연세대 지속개발협력학과 4년) ESG연구소 안치용 소장ㆍ이윤진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