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슉 슈슉 돌하르방’ 원작자는 어떻게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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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저작권 관련 지식이 없어서 그런데….” 12월 19일 한 트위터 사용자가 올린 질문이다. “원작자 동의 없이 마케팅·컬래버 등 상업적 용도로 해당 작품을 쓰는 건 문제 되지 않나요?”

이 사용자가 올려놓은 이미지는 지난해 인터넷 밈(meme)으로 꽤 흥했던 작품이다. 칼을 들고 역동적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돌하르방 사진이다. ‘밈’은 2018년께부터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던 ‘슈슉 슈숙. 슉. 시.…’ 메시지창 사진과 결합해 완성됐다. 메시지창 내용은 중고거래하던 사용자가 자동완성 기능 오류 때문에 원치 않은 욕설이 섞인 기괴한 메시지를 전송하고 당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밈은 꽤 흥했다.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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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트위터 사용자는 “해당 돌하르방은 지인의 작품인데 소송할 생각은 없고 기업의 상업적 이용은 막았으면 한다”라며 “(상업적) 마케팅·협업 진행 사실은 해당 돌하르방 작가님께서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일단 확인이 필요하다. 칼부림하는 듯한 저 돌하르방은 실제로 있는 걸까. 있다. 제주 난타호텔 정문 왼쪽에 있는 조각상이다. 누리꾼이 올려놓은 인증사진을 보면 원래는 앞에 도마도 형상화돼 있다. 결국 조각상의 정체는 ‘난타하는 돌하르방’이다. 앞서 트위터 글에 따르면 원작자는 제주 북촌 돌하르방 미술관 김남흥 관장(56)이다.

물어물어 김 관장과 연락이 닿았다. “…난타호텔이라고 있습니다. 거기 대표님이 자기가 ‘호텔에 선물을 해주고 싶다’며 제작을 의뢰했어요. 난타하는 돌하르방을 스케치해 제시하니 좋다고 해서 제작·설치해준 작업입니다. 그게 한 5~6년 전쯤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들놈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짤’이 돈다고 휴대폰으로 보여주더라고요.”

트위터를 통해 ‘상업적 용도의 마케팅·협업에 대한 제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대표적으로 삼다수가 지난 8월 말 SNS에 올린 ‘슈. 슈슉, 슈슉, ㅅ수질검사. 1위 슈슈슉. ㅅ슈수슈슉. 삼다수 좋아요’ 마케팅 이미지는 명백히 원본 인터넷 밈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여러가지 있겠죠. 큰놈이 보여준 ‘짤’ 이외엔 본 적 없습니다. 제 작업이 바빠 알아서들 적당히 해주면 좋겠어요. 제가 야박한 놈이면 쫓아가서 캡처해 문제 삼겠지만….”

원래 서양화가 출신인 김 대표가 돌하르방 작품을 만들어온 건 햇수로 22년째다. 난타 돌하르방이 뜨기 전까지 가장 알려졌던 작품은 카카오 제주사옥 앞에 놓인 ‘컴퓨터하는 돌하르방’이었다.

여러 저작권 분쟁 사례를 다룬 책 <전문영 변호사의 저작권 노트>를 낸 전문영 변호사에게 물었다. “일단 확인해봐야 하는 것은 조각품으로 입체적 형상의 특징은 일러스트가 그대로 썼냐는 것입니다. 만약 일러스트가 조각품의 예술적 특징을 모방하지 않고 겉의 형상만 그려놨다면 조각작품의 창작적 표현을 표절했다고 보지 못합니다. 우리 관련 법이 조각품이라고 무조건 다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 창작적 표현만 보호되는 거거든요.” 밈으로 유행한 것도 엄밀히 따지면 사적 복제에 해당하고 저작권 침해가 법률적으로는 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조각가가 문제 삼지 않았더라도 저작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고 놔두고 있을 뿐이거든요. 업체들이 영리·홍보 목적으로 일러스트를 만들어 쓰는 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창작적 표현을 가져다 썼다면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있습니다.” 애초 트위터 사용자가 궁금해하던 답이 나왔다. 인터넷 밈이라고 함부로 마케팅·협업 등에 사용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업 SNS 담당자들의 경각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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