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탈 저래도 탈… 그럼에도 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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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화해야 하나. 학교 문을 더 열어도 될까. 돈은 더 풀어도 되나.’

코로나19 팬데믹 2년차를 맞이한 2021년은 딜레마와의 싸움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올리면 확진자는 줄일 수 있겠지만 자영업자의 파산이 늘어난다. 학교 문을 열면 학습은 이뤄지지만 학생들의 건강이 위험에 빠진다. 소비지원금을 주고 여행을 장려하면 경제엔 활기가 돌지만 바이러스는 더 확산한다. ‘선택해야 할 길은 두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이란 딜레마의 사전적 뜻에 그 어느 때보다 부합하는 한해였다. 연일 일일 최다 확진자 기록을 깨며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연말, 주간경향이 선택한 2021년의 키워드는 ‘딜레마’다.

서울 동작구 예방접종센터가 설치된 사당종합체육관에서 지난 8월 2일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접종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서울 동작구 예방접종센터가 설치된 사당종합체육관에서 지난 8월 2일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접종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조이느냐, 푸느냐

‘방역이냐, 경기 회복이냐’를 둘러싼 딜레마 해소는 녹록지 않았다. 가장 치열하게 갈렸던 쟁점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으로의 전환이었다. 도입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 9월 말 문재인 대통령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누적되면서 더는 버틸 여력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단계적 일상회복의 시간을 마냥 늦출 수는 없다”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의료계는 우려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환영을 표하는 쪽으로 입장이 나뉘었다. 당시 염호기 의협 코로나19대책 전문위원회 위원장은 “5차 대유행이 오지 않을지 염려하고 있다. 확진자 수가 2만명까지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 대비가 부족하다”고 했다. 반면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적극 환영한다. 손실보상, 피해지원 등의 방식으로 방역에 의한 희생을 더는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연말로 갈수록 확진세가 더 커지면서 이 딜레마는 점점 더 깊어졌다. 11월 30일 일일 신규확진자 수가 5000명대에 접어든 것을 시작으로 2주 만인 12월 14일엔 최고기록인 7828명에 달했다. 위중증 환자수도 동반 상승해 하루평균 약 900명이 나오고 있다. 사망자는 한달 사이 하루평균 35명에서 62명으로 치솟았다. 결국 정부는 사적모임을 4인으로, 영업시간은 오후 9시까지로 제한하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12월 16일 발표했다. 단계적 일상회복을 일단 멈추겠다는 결정이다. ‘특단조치’를 언급한 지 약 일주일 만에 방침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역 조치를 다시 강화하게 돼 국민께 송구하다. 위중증 환자 증가율을 억제하지 못했고, 병상 확보 등의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연말 특수를 날려버린 자영업자들은 12월 22일 총궐기를 예고한 상태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2월 15일 “방역 협조는 이제 끝났다. 준비가 미흡한 정책을 더는 따를 수 없다. 매번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K방역’에 더 이상의 신뢰는 없다”고 밝혔다.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11월 8일 서울 명동 한 상점 유리문에 두 달 전의 폐점 인사가 붙었다(위). / 강윤중 기자, 폐업한 서울 종로구 한 코인노래방에서 지난 4월 22일 철거업체 관계자들이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11월 8일 서울 명동 한 상점 유리문에 두 달 전의 폐점 인사가 붙었다(위). / 강윤중 기자, 폐업한 서울 종로구 한 코인노래방에서 지난 4월 22일 철거업체 관계자들이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교육 분야에서도 학생들의 건강권과 교육권이라는 중요한 가치가 충돌하는 딜레마를 낳았다. 학습결손이 심각하다는 문제를 감안해 단계적 일상회복과 맞물려 등교를 확대했더니 학생 확진자가 하루평균 788.3명(12월 6~12일) 발생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되며 백신 선택권 문제까지 더해졌다. 고2 학생이라고 밝힌 청원자가 올린 ‘청소년 백신패스 반대’ 청와대 국민청원엔 33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청원자는 백신패스를 반대하는 이유를 “인간의 기본권인 인권 침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대해 정은경 질병청장은 “청소년 백신 접종은 확실한 예방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청소년들이 맞고 있는 화이자 백신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청소년 접종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받았다”고 답했다.

초창기 마스크 착용 의무화 정책뿐만 아니라 출입명부 등록, 백신 접종 권유, 백신패스 도입은 개인의 선택권·프라이버시와 방역의 가치가 맞부딪힌 사례다. 인플레이션 압력에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여행지원금을 주면 소비는 진작되나 바이러스는 퍼진다는 점 또한 코로나19가 낳은 경제 분야의 딜레마다.

전날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7000명을 넘어선 지난 12월 8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역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오전 접수 마감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전날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7000명을 넘어선 지난 12월 8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역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오전 접수 마감을 알리는 피켓을 들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딜레마가 낳은 갈등

딜레마는 이해집단의 ‘갈등’으로 표면화되곤 한다. 양쪽을 만족시키기 위해 ‘조였다 풀었다’가 반복되면서 시민들의 불편과 불만도 점점 누적돼왔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질렀다. 한국갤럽의 2021년 12월 2주 갤럽리포트(12월 10일 공개)를 보면, 지난 12월 7~9일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두고 44%가 ‘잘하고 있다’, 47%가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긍정평가는 한달 사이 57%에서 44%로 떨어졌고, 부정평가는 32%에서 47%로 올랐다. 부정이 긍정을 역전한 것은 백신 수급 문제를 빚었던 지난 4월 이후 약 8개월 만이다.

코로나19 초기 한국 정부의 마스크 정책을 비롯해 정책 딜레마 분야를 연구해온 김동환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갈등의 원인으로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가면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의 마음가짐을 버리지 못한 모순”을 짚었다. 단계적 일상회복은 ‘코로나19와 함께 간다’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침임에도 정부가 확진자 숫자를 발표하고 우려하는 것이 이전과 같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김 교수는 “정책 프레임이 ‘코로나19를 안고 살아야 한다’로 바뀌었는데도 기존의 딜레마 상황이 지속되면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강화하느냐 마느냐의 단순한 딜레마가 아니고 ‘단계적 일상회복 정책의 후퇴를 용인할 것인가’로 가버리니 정부가 더 심한 딜레마에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래도 탈 저래도 탈… 그럼에도 택해야 했다

딜레마를 완충하는 것은 결국 정치의 역할이다. 정치의 본뜻이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임을 고려하면 정치와 정치인의 책임을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정치 지도자가 딜레마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기를 기대할까? 학술지 ‘네이처 휴먼 비헤이비어’에 지난 7월 1일 발표된 논문 ‘세계적 보건위기 상황에서 도덕적 딜레마와 리더에 대한 신뢰’에 힌트가 있다. 연구는 위기상황에서 사람들이 지도자의 결정을 따르려면 그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딜레마를 앞두고 어떤 선택을 하는 지도자가 신뢰를 얻는지를 실험했다. 미국 예일대 몰리 크로켓 교수가 이끄는 22개 국가 공동 연구진이 한국 포함 22개국에서 약 2만4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으며, 설선혜 부산대 심리학과 교수와 정동일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가 한국 연구진으로 참여했다. 연구 진행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3차 유행이 한창이었던 지난해 11월 26일~12월 22일이다.

서울 영등포 여의도공원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지난 12월 14일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체 채취를 하는 중간중간에 손난로로 시린 손을 녹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서울 영등포 여의도공원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지난 12월 14일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체 채취를 하는 중간중간에 손난로로 시린 손을 녹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딜레마 해결할 ‘정치’는 무엇

연구 결과를 보면, 지도자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란 공리주의 원칙에 입각한 선택을 할 때 ‘도구적 희생’을 담보로 하는지 아니면 ‘공평한 혜택’을 지향하는지에 따라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달라졌다. 연구 대상자들에게 코로나19 상황에서의 록다운, 확진자 추적, 인공호흡기, 개인보호장비, 의약품에 관한 딜레마를 물었을 때, 지도자가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는 결정을 내린 경우 그에 대한 신뢰가 깎였다. 예를 들어 인공호흡기를 생존 가능성이 높은 젊은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도자는 공리주의 차원에서의 결정을 했을지라도 신뢰를 얻지 못했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세에 일상회복을 멈추고 고강도 거리 두기 방침을 공식화한 12월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곱창집에서 업주 강정애씨(65)가 뉴스를 보며 자리에 앉아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세에 일상회복을 멈추고 고강도 거리 두기 방침을 공식화한 12월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곱창집에서 업주 강정애씨(65)가 뉴스를 보며 자리에 앉아 있다. / 연합뉴스

설선혜 교수는 “도구적인 희생이 있을 때는 공리주의 리더보다 그렇지 않은 리더를 더 선택하고, 공정하게 혜택이 돌아갈 때는 공리주의적인 리더를 선택한다는 뜻”이라며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상황을 그대로 연구 참가자들에게 질문해 확인한 점이 본 연구의 의의”라고 말했다. 이어 설 교수는 “정치 지도자 입장에서는 공리주의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라’는 식이면 사람들이 그 지시를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즉 지도자 입장에서 ‘합리적 결정’을 내렸다 하더라도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고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현실에선 ‘도구적 희생’과 ‘공평한 혜택’이 연구에서처럼 분명하게 구분되진 않는다. 설 교수는 “결국은 메시지 전달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다. ‘당연히 희생해야 한다’가 아니라 ‘넓게 봤을 때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한 결정’이란 식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의 함의”라고 말했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2022년 새해에도 팬데믹 종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사 코로나19가 잦아든다 하더라도 또 다른 딜레마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당장 80여일 앞으로 다가온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도 딜레마에 빠진 유권자들이 많아 보인다. 이쪽을 찍기도, 저쪽을 찍기도 그렇지만, 그렇다고 투표를 안 할 수도 없는 ‘딜레마’다. 2022년 정치는 시대의 딜레마를 과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021년이 2022년에 넘긴 숙제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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