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과 알바, 뭘 골라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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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짙게 드리운 딜레마

‘먹고살려면’ 공연을 무대에 올려야 한다. 하지만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 이후 나타난 코로나19 재확산세 때문에 방역에 대한 부담감은 더 커졌다. 게다가 막상 공연을 개막해도 적자를 감수해야 할 정도로 관객의 반응 역시 기대 이하다.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지 않는 것은 물론 공연장에 온 열성적인 팬들마저 환호를 보내지 못하고 성원을 침묵 속에 삼켜야 하는 고민도 있다. 배우나 연주자처럼 무대 위에 서는 이들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스태프 역시 이 일을 계속하며 살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는 딜레마는 2021년에도 이어졌다. 무대 밖 삶의 현장에서도 딜레마는 존재했다.

경기도 수원시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관계자들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객석 소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기도 수원시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관계자들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객석 소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원금 받으려면 알바 포기해야”

연극배우 정모씨(34)는 예상치 못한 의외의 지점에서 딜레마를 발견했다. 소형 극단에 소속된 터라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생계를 위해 ‘알바’를 뛰던 음식점에서 종종 그를 알아차린 손님을 만난 적은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알바를 그만둘까 고민하진 않았다. 정작 꽤 많은 시간 그가 고민한 문제는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 하던 음식점 알바를 그만둬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였다. 정씨는 “일하던 음식점이 프랜차이즈 본사 직영점이라 고용보험에 자동으로 가입되는 곳인데, 지난 3월 나온 특수고용 지원금은 고용보험 가입자에겐 지급이 안 되는 돈이라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였다”고 말했다.

당장 식당에서라도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잇기 어려운 터라 정씨는 공연 연습과 알바를 병행하며 코로나19 시대를 버텨오고 있다. “알고 보니 공연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더라”는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다니던 알바 업장까지 망하는 바람에 어느 한쪽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딜레마 없이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었던 ‘웃픈’ 사례도 주변에서 봤다”고 말했다. 정씨는 정부가 지원대책을 마련한 취지는 이해되지만 한박자 느리거나 현장과는 아귀가 맞지 않는 점이 적지 않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공연계에 몸담은 개인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딜레마를 발견했다면 공연 기획사나 문화예술단체에선 공연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일 자체가 딜레마인 한해를 보냈다. 비록 지난해보다는 공연계를 둘러싼 상황이 다소 나아졌고, 시행착오 끝에 방역지침과 현장의 요구가 상충하지 않는 지점도 일부 찾을 수 있었으나 여전히 균형을 찾지 못한 곳도 많았다.

이런 불균형은 공연 규모로만 봤을 때 1회당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대중음악계 예술인들의 공연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대구에 이어 12월 부산에서 진행한 나훈아 콘서트는 1회당 관객 4000~5000명이 동시 입장하는 대규모 공연이었다. 대구 공연 당시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에 따랐고, 한차례 연기된 부산 공연은 ‘단계적 일상회복’ 정책 이후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두 번의 공연 모두 방역수칙을 위반하며 열린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훈아 대구 공연과 비슷한 시기 대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시민행복콘서트’나 ‘수성못 프린지 페스티벌’ 등은 논의 끝에 취소됐기 때문에 대형 콘서트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은 여전하다.

공연계 내부에서도 인기가수의 대규모 콘서트 개최가 적절한지를 두고선 엇갈리는 시선을 보냈다. 대중음악 콘서트는 클래식이나 오페라, 연극 등 다른 분야의 공연과 공통점과 차이점이 섞여 있어 의견은 더욱 분분하다. 한 연극 극단 대표는 “그런 대형 공연은 스타의 이름값 하나만으로 객석 매진이 보장된 행사니까 개최 강행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중소규모 무대 실연예술 공연은 애초에 기획 자체가 불투명할 정도로 위축돼 있다”고 말했다. 반면 클래식 공연계의 한 관계자는 “어쨌든 나훈아 콘서트가 코로나19 상황에선 이례적인 대규모로 진행되면서도 연쇄 감염 같은 우려가 현실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어쨌든 관객들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공연장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공연계의 급선무”라는 것이다.

경호·인쇄물·음향업계까지 피해

대중음악 공연은 대형 공연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좀더 전향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중음악 공연이 거의 전면적으로 봉쇄되면서 관련 산업은 물론이고 관객과의 소통으로 예술적 감수성을 예리하게 유지해야 할 예술인들까지 역량이 감퇴하는 피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고기호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부회장은 “아티스트들은 행사를 통한 매출로 재투자를 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창작 기회가 감소했고, 전문인력 유출이 심각해 공연을 진행할 고급인력도 없어졌다”며 “매출의 90%가 감소해 많은 회사가 폐업과 휴업을 하게 됐고, 또 유관 산업인 경호, 인쇄물, 음향업계 등에도 피해가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위기든 가장 약한 고리에 부담이 집중되는 것처럼 공연계 안에서도 공연 횟수나 규모 면에서 가장 절박한 위기를 맞고 있는 분야가 받는 충격이 더 크게 보인다. 오페라나 국악 등 코로나19 이전에도 관객을 만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분야는 자금력이 부족해 비대면·스트리밍 공연도 엄두를 내기 힘들다. 국악계의 스트리밍 공연 추세에 대해 허윤정 서울대 국악과 교수는 “자연에 가까운 전통악기의 소리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기술력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업체가 경쟁에서 밀려 승자독식 구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오페라 장르 가운데서도 소극장 오페라 분야는 어려움이 더 크다. 지난 4월 19회째인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를 열긴 했으나 이 행사를 전후해서도 장담하기 힘든 미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제기됐다. 코로나19 시대가 장기화하면서 국내 공연산업계의 생태계도 변화를 맞고 있는데 시장 규모가 작은 장르일수록 변화에 앞장서야 하는 압력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권용만 예술인연대 대표는 “젠틀몬스터 같은 업체의 영업방식을 보면 대면 공간에 사람을 모으면서도 수익은 비대면으로 창출하는 원리로 운영된다”며 “오페라도 비대면 공연만으로 절대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고 대면 공간에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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