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서울대·부산대·충남대·전남대를 합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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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Il est interdit d‘interdire).”

1968년 5월 다른 세상을 꿈꾸며 거리로 뛰쳐나온 프랑스 젊은이들이 전면에 내세운 유명한 구호다. 68혁명으로 명명된 이 사건은 기성세대와 권위주의에 반기를 들어, 프랑스에서 낡은 사회체제의 골간인 대학을 전면적으로 개혁하여 대통합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 68혁명의 자장(磁場) 안에서 시행된 당시 대대적인 프랑스 대학개혁은 국립대 통합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프랑스는 1968년 대학 평준화를 이룬 이후 쭉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도 원인은 다르지만 대학개혁의 필요성이 긴급하게 대두되고 있다. 68혁명의 대학개혁 실험이 현재 근본적 변화를 앞둔 한국 고등교육의 현장에 어떤 시사를 줄 수 있을까.

12월 12일 종로학원이 주최한 2022정시 합격점수 예측발표 및 특별전략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 이준헌 기자

12월 12일 종로학원이 주최한 2022정시 합격점수 예측발표 및 특별전략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 이준헌 기자

■1968년 격변의 프랑스, 대학 개혁을 이루다.

1968년 프랑스의 ‘5월의 사건들’은 대학에서 시작됐고, 대학생이 주도했다. 1960년대 서구 산업국가에서 한결같이 시행된 고등교육 확대에 힘입어 프랑스의 대학생 수는 1960년 20만 명에서 1968년 58만7000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사회적 신분 상승을 꿈꾸며 대학 문턱을 밟은 중산층 및 소시민 출신 학생이 급증한 탓이었다.

대학 입학생이 한 해 평균 4만 명 이상 증가하는 추세가 지속되면서 프랑스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 증액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해 교육환경이 열악해졌다. 드골 정부는 이에 따라 1964년 선별 입학 시험제를 도입해서 전체 대학생 인원을 제한하려고 했다. 드골 정부의 이러한 고등교육 정책은 반발에 부딪혔고 프랑스 사회에서 대학개혁 방향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결국, 선별 입학제도 시행이 유보되고, 대입 자격 고사에 합격한 모든 학생에게 대학의 문호를 여는 동시에 대학 운영에 민주적 거버넌스를 도입하는 쪽으로 대학이 개혁됐다.

그렇다면 개혁 이후 프랑스 대학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개 포르법(Faure loi)으로 일컬어지는 고등교육 기본법에 따라서 소르본 대학은 1969년 여러 대학으로 분할되기 시작했고, 70년대 초에 현재의 13개 파리 대학이 완성됐다. 이 중 현재 파리8대학의 기원인 뱅센 대학이 1969년 1월에, 현재 파리9대학인 도팽 대학이 71년 1월에 새로 설립됐다. 다른 파리 대학 가운데 1대학부터 7대학은 1968년 이전에 파리 시내에 존재하던 파리 대학의 다양한 단과대들이 종합대학으로 확대된 것이며, 낭테르 대학은 10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종합대학이 됐다. 11대학은 파리 남쪽 교외에 위치하던 대학 건물을 기반으로 1971년 1월에 종합대학이 됐다. 12대학은 69년에 건립된 의대 건물을 기반으로 70년 3월에 종합대학이 됐으며 13대학은 60년대 초 건립된 파리 이과학대 부속 건물을 기반으로 71년 1월에 종합대학이 됐다. 전공학과 중심의 기존 단과대학들은 각자의 학문적 강점을 가진 독립된 종합대학으로 재편되고 뱅센느 대학과 같은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실험대학이 창설됐다.

포르법의 세 가지 원칙(자율, 참여, 다(多)학문성) 가운데 다학문성(pluridisciplinarite)으로 인해 일부 단과대학(faculte)의 명칭이 바뀌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문과대는 ‘문학과 인문과학 대학’(Faculte des Lettres et Sciences Humaines), 법과대는 ‘법학과 경제학 대학’(Faculte de Droit et des la Sciences Economiques) 등으로 바뀌었다.

■프랑스의 대학개혁… 수월한 학문 간의 연계와 높은 대학 접근성

프랑스의 대학 개편의 가장 큰 특징은 단과대에서 종합대 체제로 전환하면서 다양한 학문 사이의 연계가 수월해졌다는 점이다. 다양한 학문 분야를 연결하면서 새로운 통합학문의 등장이 가능해졌다. 이미 20세기 중반부터 언어학과 인류학, 역사학과 심리학, 문학과 정신분석학, 철학과 수학 등이 결합한 상황에 비하면 많이 늦어진 것이긴 했지만 시대 변화에 부응하려는 의지가 담긴 개편이었다는 평이다.

또 다른 특징은 ‘실험대학의 도입’이다. 어려운 형편으로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재교육 기관으로 파리8대학이 설립된 것이다. 대학 캠퍼스가 위치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뱅센느 대학이라고도 하는 파리8대학은 1968년 5월에 터져 나온 사회적 소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성인 재교육 기관을 특수 기관의 형태로 만들지 않고 일반 대학의 형태로 설치했다는 점이다.

파리8대학은 다른 대학과 동일한 체제로 운영되었지만, 대학입학 문호를 일반 직장인에게까지 확대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정 정도의 직장경력을 인정받으면 최종학력이 대학입학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다른 학생들과 동등하게 학위 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예컨대 중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인 공장 노동자라도 정식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지원자의 학력 공백은 직장경력을 심사해 대신 인정해주었다.

현재 프랑스의 대학은 공동입학, 공동학위 수준의 높은 통합도를 구현한 상태다. 법적으로는 바칼로레아 시험에 합격한 학생이라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대학에 입학할 권리를 갖는다. 대학은 특별한 선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학생을 입학시키며, 학생들은 학부 재학 중 필요에 따라 쉽게 대학을 이동할 수 있다. 프랑스에선 국공립대학이 전체 학부생 정원의 97% 이상을 교육하고 있고, 국공립대학이 전국적으로 평준화하였기에 가능하다.

하지만 1968년의 대학개혁을 개혁할 필요성 또한 끊임없이 제기된다. 대학 평준화로 프랑스 일반대에서 선별시험을 폐지한 결과 학부 재학생이 너무 많아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고, 중도탈락 비율이 70%가 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선별시험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국립이 갖는 경직성에서 벗어나서 예산 등 대학운영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2000년대 들어와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인센티브 중심으로 대학 자율 통폐합 도모한 핀란드

핀란드는 정부에 의한 강제적인 대학 통폐합 대신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자율적이면서 과감한 대학 통폐합을 이뤘다. 2000년대 들어 유럽연합(EU)은 2010년까지 유럽 공통의 고등교육 학위체제를 만드는 ‘볼로냐 프로세스(Bologna Process)’를 진행했고, 핀란드 교육문화부는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부응하여 고등교육 재구조화 방향을 설정했다. 2006년 핀란드 교육문화부는 <대학 통폐합과 특성화를 촉진하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고등교육기관 간 학과 중복을 최소화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내세웠다. 또 산학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고등교육 기관 간 역할의 분화를 제안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대학체제가 개편돼 핀란드의 종합대학교 20개 중 12개가 5개로 통폐합하면서 전체 종합대학이 13개로 줄어들었다. 5건의 통폐합 중 4건은 같은 도시에 있는 대학 간의 통폐합이었다. 예외적으로 동핀란드대학(University of Eastern Finland)은 캠퍼스 간 거리가 90km나 되는 대학 사이의 통폐합이었다.

대학 통폐합의 핵심 목표 중 하나인 ‘대학별 특성화’는 핀란드 정부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이나, 정부 인센티브를 활용한 대학의 자율적인 통폐합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대학 간 통폐합을 촉진하기 위해 ‘성과기반 재정지원 시스템’이 도입돼 2007년과 2010년 사이 통폐합에 참여한 대학에 1200만~400만 유로, 협의체를 구성한 대학에는 610만 유로가 지원됐다. 핀란드의 대학교는 모두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받는 공립기관이었지만 대학별로 높은 자율성이 인정됐기에 통폐합의 최종 결정권은 각 대학에 있었다. 정부는 통폐합 대학들에 대한 재정적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통폐합을 촉진하는 역할만 담당했다. 핀란드 정부는 2009년 일반대학법을 개정해 모든 국립대학을 법인화하여 대학 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했고, 성과기반 재정지원 제도를 전면 도입해 대학의 주도하에 자율적인 발전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했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60년대에 학생 수가 급증하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체제를 개편했다. 증가하는 고등교육 수요를 소화하면서 대학교육의 질을 지키기 위한 폭넓은 개혁조치였다. 상위권 학생을 수용하는 연구중심 대학은 선별기준을 높이고, 대신 성적과 무관하게 입학할 수 있는 등록금이 매우 저렴한 커뮤니티칼리지를 활성화했다. 늘어난 고등교육 수요에 대처하는 동시에 상위대학 편입을 대폭 허용함으로써 기회의 폭을 넓히는 방향의 개방성을 지향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체제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시스템은 4년제 연구중심 대학(UC), 4년제 교육중심 대학(CSU), 2년제 커뮤니티칼리지(CCC)로 3분할 체제이다. UC는 10개의 캠퍼스가 있고 교교 졸업생의 상위 8분의 1에 응시 자격을 부여한다. CSU는 지역별 23개 캠퍼스가 있고 응시기준은 졸업생 성적 3분의 1 이내에 들어야 한다. CCC는 진학 혹은 취업을 위한 교육을 담당하는 2년제 대학으로 72개 지역에 113개의 대학이 있고, 고교졸업생이면 누구나 무시험으로 입학할 수 있다. UC는 주의 주요 공공연구 대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 및 기타 전문학위를 수여하며, CSU는 교양 및 과학 교육에 중점을 두고 주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수여한다. CCC는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할 수 있는 하위 학군 교육과 직업 훈련을 시행하고, 준학사 학위 및 수료증을 준다.

등록금은 각 단위의 대학에 차등하여 책정되어 있어 UC가 1만3000달러인 반면 USC는 6000달러로 UC의 반액이다. CCC 등록금은 1000달러 정도이고, 많은 학생이 학비를 면제받는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은 기능에 따라 대학입학의 기준을 확고하게 정해 대학교육의 수준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모든 고교졸업자에게 2년제 커뮤니티칼리지 입학을 개방하고 있다.

동시에 상위 대학 편입을 쉽게 하는 방식으로 두 번째 기회를 주고 있다. 2020년 UCLA편입 비율을 보면 신청자의 85%가 캘리포니아주 커뮤니티칼리지(CCC) 재학생이었으며 그중 27%가 편입에 성공했다. 상위 대학 진입장벽을 대폭 낮추어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2018년 부산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 서성일 기자

2018년 부산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 서성일 기자

■해외 사례 참고하며 한국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대학개혁

앞서 살펴본 여러 나라의 대학개혁은 충분히 참고할만한 사례이지만, 각각의 역사적 배경과 특수성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첫째, 파리대학과 캘리포니아주립대 체제 개편은 둘 다 1960년대 대학이 팽창하던 국면에서 이루어졌다. 고등교육의 대중화 단계를 준비하는 성격을 가졌다. 프랑스는 1960년대 베이비붐 세대의 대학입학 적령기가 도래하면서 고등교육 기관의 절대 부족과 정원 제한으로 교육수요를 감당하는 데 근본적인 어려움에 봉착했다. 기존 파리대학(1215년 설립ㆍ1968년 해체, 소르본대학이라고도 한다)에는 시대에 동떨어진 커리큘럼에다 권위주의 및 위계질서가 강한 대학풍토가 존재하였다. 이러한 ‘구태’에 학생들의 반발이 커지며 근대대학다운 정비가 필요한 상태였고, 고등교육 수요 대응과 고등교육 대중화 시대에 걸맞은 행정개혁이 필수적이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또한 학생 수의 급증에 대비하여 기존 3분할 체제(연구중심 대학, 교육중심 대학, 커뮤니티칼리지)를 더 공고히 하고 커뮤니티칼리지의 확대를 통해서 대중수요에 대응하는 한편 4년제 대학의 입학 자격을 전보다 강화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유지하고, 적절한 예산 배정 등으로 행정 효율 제고를 도모했다.

두 나라의 대학 체제 개편의 시대적 배경은, 인구감소로 급격한 규모 축소를 대비해야 하는 현재 한국 대학의 상황과는 상반된다. 교육부는 학생 수 감소로 3년 내 국내 대학 38개교가 폐교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학령인구(6~21세)는 2020년 789만 명에서 향후 10년 195만 명이 줄어들고, 2070년엔 328만 명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프랑스나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달리 인구감소를 염두에 두며 대학체제 개편에 접근해야 한다.

둘째, 전술한 대학통합 사례는 국가나 지방정부가 주도한 것이어서 사립대학이 많은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다. 프랑스의 고등교육기관은 일부 사립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국립이며, 그랑제콜을 제외한 일반 종합대학은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국가 예산으로 운영된다. 또한, 대학개혁 당시 핀란드 고등교육기관은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갖고 있었지만 모두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받는 공립기관이었다.

반면 한국의 대학은 사립이 압도적이다. 대학 재학생의 80%가량이 사립대학에 재학중이다. 즉 우리나라는 사립대라는 변수를 가졌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20년 설립별 학교 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대학 429개 중에서 사립대는 371개로 비중이 86.5%이다. 사립대가 많다고 알려진 미국 사립대 비율(66.3%)보다 20%포인트 높다. 우리나라의 사립대 비중이 월등하게 높다 보니 당장 실현가능한 대학개혁 방안의 하나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국공립대 통합’은, 자칫 통합된 국공립대를 서울의 유수 사립대보다 아래의 대학교로 전락게 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국립대 통합’ 방안은 사립대를 어떻게 유인하여 전체 대학개혁에 편입시킬지에 관한 고민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껏 논의에 그친 국공립 통폐합 방안

지난 20년간 국공립대 통합 아이디어는 꾸준히 제시됐다. 2000년 김대중 정부하의 국립대 발전 계획안은 국립대의 특성별 연합 체제 구축을 제안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동일권역 내 대학 간 비슷한 학과나 중복학과를 통폐합하고, 대학끼리 단과대나 학과를 교환하고 통폐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자 했다. 장기적으로는 인사, 시설, 재정을 통합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교육 및 행정 효율을 제고하는 ‘연합대학’ 체제를 구성하고자 했다.

2004년에 민주노동당은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의 정책 입안을 중심으로 국공립대 공동학위제를 주요 정당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후 국공립대 통합은 총선과 대선에서 주요 공약으로 등장하게 된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개방 입학제를 도입해 대학 평준화를 이루자는 공약을 제시했다. 2012년과 2017년에는 ‘국공립대 연합 체제 구축 방안’이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2017년 문재인 후보 대선 공약집에 따르면 중장기적 국공립대 연합체제 구축을 위해 국공립대를 연구 교육 직업 등 기능별, 중점 분야별 특화를 추진하고자 했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제안1(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는 총 3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에서는 거점 국립대학교 10개(서울대, 강원대,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 충남대, 충북대, 경상대, 제주대)를 ‘국립한국대학’이란 이름 아래 네트워크로 묶는 방안이다. 2020년 기준 4년제 대학의 입학 정원은 약 31만 명이고, 10개 거점 국립대 입학 정원은 서울대 3330명을 포함하여 총 3만 1453명으로 전체 입학 정원의 10%이다. 국립대를 통합한 다음 2단계로는, 12개 지역 중심 국립대학(강릉원주대, 경남과기대, 공주대, 군산대, 금오공대, 목포대, 부경대, 서울과기대, 순천대, 안동대, 한경대, 한밭대)을 통합한다. 12개 대학의 입학정원은 1만 8950명이며 전체 입학정원의 6.1%이다. 3단계에서는 독립형 사립대를 포함해 네트워크를 확장한다.

이러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기본 뼈대는 2003년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이 제시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안이다.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이 제시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먼저 서울대를 포함한 기존 국립대학들을 하나의 통합네트워크로 구성하고, 일정한 수준이 되는 사립대학교도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편입시킨다. 네트워크 안에서 학부 과정을 이수한 모든 학생은 공통으로 국립대 학사 학위를 받게 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입시제도의 개혁, 대학개혁, 제도개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절대 평가형 내신과 입학자격 시험에 의한 선발을 시행하고, 대학은 수용 능력을 고려해 대학입학 자격 수준을 제시한다. 자격이 충족된 학생은 지원순위와 추첨을 통해 대학을 배정한다. 서울대는 학부 학생을 두지 않고 대학원화하고, 지역 국립대는 현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통합해 몇 개의 캠퍼스로 조직화한다. 대학원은 일반대학원과 전문대학원으로 나눠, 현재 전문직을 위한 학부 과정은 전문대학원으로 옮긴다. 마지막으로 통합네트워크로 가는 과정에서 등록금 인하, 지역인재 고용할당, 재원 마련을 위한 조세제도 개혁 등의 제도를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이 제시한 대학통합네트워크가 실제로 입시경쟁을 완화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대입의 인기 학과였던 전문직 양성 학과가 대학원으로 바뀐다면 대학입학 경쟁이 대학원 입학 경쟁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우려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제안2(서울특별시 교육청)

대학통합네트워크 정책은 국립대와 사립대를 한꺼번에 편입해 바로 출범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판단하에 네트워크 과정이 세분돼 제시된다. 세분된 대학통합네트워크는 먼저 국공립대를 통합하고 동시에 사립대학교 및 사립전문대학을 공영형으로 전환하며, 공영형 사립대학교가 안정되면 국공립대통합테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학 간 통합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서울특별시교육청도 2017년에 대학통합네트워크의 단계적 실현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지역 거점 국립대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한 후 국립대와 공영형 사립대학교의 연합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연합 네트워크는 통합네트워크 이전 단계로, 대학들이 일종의 플랫폼을 공유한다. 이때 국립대는 기초학문을 지원받고, 사립대는 실용학문을 지원받는다. 마지막 단계로, 연합에서 더 나아가 독립형 사립대를 포함해 전체 공통교양과정을 운영하고, 교육 및 학교 운영에 있어서 상호적, 통합적 교류 체제를 구축하는 통합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미 지방 거점 국립대와 비교해 수도권 주요 사립대를 더 선호하는 상황 속에서 기초학문을 국립대로, 취업에 유리한 실용학문을 사립대로 집중해 지원한다면 현실적으로 국립대의 선호가 더욱 떨어질 것이라는 반론이 있다. 또한 어떤 대학이 공영형 사립대학교가 될지 제대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립 명문대학교가 과연 공영형 사립대학교 편입에 참여할지 미지수이며, 만약 참여하지 않는다면 사립 명문대학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학벌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로 대학 경쟁력 강화

2012년 민주통합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당의 대선공약으로 넣겠다고 밝히자 ‘서울대 폐지론’이라며 반발이 일었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가 국제적 입지가 있는 서울대학교를 소멸시키고 전체 국립대학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해 결국 대학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우수 인재를 양성할 기회를 잃는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가 설득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의 피라미드식 대학 구조가 교육의 본질을 왜곡하고 학문 연구를 어렵게 하며 대학 경쟁력을 낮추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IMD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은 2010년 이후 20위권이었지만, 대학교육 경쟁력 순위는 대체로 40~50위권을 나타냈다. 2019년에는 55위까지 내려갔다.

현재 한국 대학에서는 대학 졸업보다 입학에 열을 기울인다. 치열한 입학 경쟁을 뚫고 명문대에 입학하면 학벌 권력이 보장되기 때문에 학과 공부를 열심히 유인이 적다. 전공이나 직무가 아닌 대학 서열을 보고 학교에 간 학생들은 더욱 학과 공부를 할 의욕을 잃는다. 반면 낮은 순위의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대학 공부를 열심히 해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에 전공 학과 공부의 필요성이 낮아진다.

이렇게 대학 서열을 우선으로 고려하는 진학은 졸업 이후 노동 시장에서 전공과 상이한 분야로 취업할 가능성을 높인다. 대학 전공와 취업 후 직무 간의 불일치 문제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비용을 유발한다.

연구중심 대학을 축으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개편하면 대학 경쟁력이 향상된다는 의견이 있다. 대학 체제 개편은 평준화와 함께 특성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중심 대학이 세계 지식 생산을 선도하고 글로벌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규모 연구와 실험을 수행하는 추세에 맞춰 한국도 연구중심 대학으로 거듭나게 하는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를 추진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다른 나라 대학체제에서도 대학이 기능별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프랑스는 대학을 평준화하였지만 일반대학과 구별되는 ‘대학 위의 대학’ 그랑제콜은 혹독한 경쟁선발방식을 유지한다. 대학과 별개로 연구기능의 많은 부분은 국립연구소가 맡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체제도 연구중심, 교육중심, 커뮤니티칼리지 등 각각의 역할이 분명하다. 연구중심 대학인 미국 미시간 대학이 심리학과에만 100여 명의 교수를 보유한 사례는 특성화의 방향을 보여준다.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로 서울 지상주의 완화

한국의 엘리트 대학은 수도권에 집중돼있다. 2017년 중앙일보 평가에 따르면 상위 대학 15위는 모두 수도권에 분포했다. 2021년 세계대학학술순위(ARWU)에 따르면 세계대학 랭킹 500위 안에 든 한국 대학은 총 11개이다. 그중 서울대가 101~150위 안에 들었으며, 한양대, 카이스트 등 5개 대학이 201~300위 안, 경북대, 경희대 등 5개 대학이 301~400위 안에 들었다. 세계 랭킹 상위권에 든 우리나라 대학 11개 중 6개가 서울에 위치한다. 이러한 현상은 안 그래도 심한 서울 지상주의를 더 심화한다. 서울은 극소수를 위한 공간이며, 나머지 절대다수에게는 폐쇄와 배제의 공간이 된다.

서울의 주요 대학이 상위권을 형성한 서열 체계는 하위권에 속하는 지방대학의 위기를 초래하고, 지방 거주 학생이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르게 만든다. 동시에 지역경제와 지역주민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방 거주자가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했을 때 유학에 따른 주거 및 생활비 등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부가 유출되고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지역주민의 삶의 질과 만족도가 떨어지게 된다. 대학 서열화로 인한 수도권 중심의 인프라 형성과 인재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또다시 지역 간 불균등한 발전으로 이어지면서 악순환을 초래한다.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와 달리 고등교육 기관이 지역적으로 골고루 분포한다. 프랑스는 대학을 평준화한 만큼 대학 서열화에 따른 지역 차이가 미미하다. 엘리트 양성 기관인 그랑제콜은 200개가 넘으며 프랑스 전국에 퍼져 있다. 그랑제콜 연합회에 따르면 그랑제콜은 파리 68개, 프랑스 북부 24개, 프랑스 중서부 30개, 프랑스 중동부 50개, 프랑스 남서부 25개, 프랑스 남부 10개 등 고루 포진한다.

미국 엘리트 대학도 전국에 퍼져 있다. 상하이 세계대학 순위 상위 100위 안에 든 미국 대학 50개는 동부 17개, 중부 12개, 서부 12개, 남부 9개 등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입시체제를 가지고 있는 일본도 한국과 비교했을 때 공간적 병목현상이 심각하지 않다. 상하이 세계대학 순위 상위 100위 안에 드는 대학은 도쿄 대학, 교토 대학, 나고야 대학, 오사카 대학이며, 상위 200위권 대학은 도호쿠 대학, 홋카이도 대학, 규슈 대학으로, 이 대학교들은 일본열도를 따라 고르게 위치한다. 일본 유수 대학의 전국적인 고른 분포는 지역 균형 발전뿐 아니라 학문적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에 기여한다.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대학의 참여가 절실하지만 서울대와 다른 국공립대 사이의 격차가 커 서울대를 끌어들일 유인이 매우 부족하다. 서울대를 포함한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가 성사되더라도 이후 주요 사립대에 선호가 몰리지 않게 하려면, 통합네트워크에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네트워크 참여대학과 비(非)참여대학 간 차별화가 분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경희대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는 “통합네트워크 시행 시 참여하는 모든 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며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사립대가 우세할지도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대학 병목현상이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합네트워크 참여대학에 대해 교육 및 연구, 시설 여건 등의 확고한 재정지원이 바탕이 돼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고등교육 예산은 초중등교육 예산과 비교해 안정성이 현저히 낮다. 2015~2020년 교육예산 구조와 추이에 따르면 교육 분야 예산은 연평균 7.3% 증가했다. 교육 분야 예산에 배정된 유아·초중등교육 예산과 고등교육 예산을 비교해보면, 유아·초중등교육은 2015년에서 2020년 사이 예산이 연평균 8.8%나 증가했으나, 고등교육 예산은 동일한 기간에 연평균 증가율이 0.6%에 그쳤다. 심지어 고등교육 예산은 2015년에 10조 5280억이었으나 2016년과 2018년 사이에는 10조보다 적었고, 2019년에도 2015년 예산액보다 적었다. 고등교육예산은 교육예산의 구조적 성격으로 인해 경직적이다. 따라서 고등교육 재정 확보를 위한 제도 신설과 법 제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교육부의 2013~2017년 BK21플러스 사업 지원 현황에 따르면 서울 주요 사립대는 지방 국립대보다 해마다 1670억 원가량 지원금을 더 받았다. BK21플러스 사업 외에 대학혁신지원, 링크플러스 사업 등 정부의 2019년 대학 재정지원에서도 서울 소재 상위 10개 사립대가 1941억900만 원을 받은 반면 상위 10개 국립대는 1695억5000만 원을 받았다.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를 시행하게 되면 사립대가 더 많은 지원을 받는 현재의 구조를 전환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정부가 지원을 더 늘리게 된다.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는 서울 위주 독점을 해체해 교육의 사회적 병목현상을 줄이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인구절벽과 4차 산업혁명, 위기에 놓인 교육… 국공립대 통폐합부터

이미 현실로 성큼 다가온 인구절벽 문제에 대응하려면 사립대 비율을 줄이고 국공립대 네트워크를 형성해 연대와 협력이 가능한 고등교육 패러다임을 만드는 변혁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김종영 교수는 “인구절벽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는 곳은 지방 사립대와 거점 국립대이다. 부산대학교도 미달 사태가 있지 않았나. 국공립대 통폐합은 타격이 가는 거점 국립대에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어서 인구절벽에 대응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김 교수는 “결국 돈을 어떻게 쓰느냐, 우선순위를 어디에다 둘 것이냐의 문제”라며 “미래 세대에 투자하는 것이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가장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는 경로는 이미 마련됐다. 비대면 교육의 장기화로 대학과 고등교육의 진정한 의미에 관한 사회적 고찰이 이루어지고 있고, 기기를 통한 비대면 만남이 자연스러워지며 초연결사회로 대변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는 소수 엘리트만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수직적 서열화의 시스템이 통하지 않는다. 단독의 개인, 기관의 역량을 통한 경쟁력보다 연대와 협력을 통한 다원화와 다양화의 경쟁력이 살아남는 시대이므로 고등교육의 패러다임 역시 이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 국공립대 통폐합이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청년ESG프로젝트팀 현경주(경희대 언론정보학과 3년)·김나현(서울여대 저널리즘학과 3년)ESG메타연구소 안치용 소장·이윤진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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