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든 국제사회든 분열과 대립의 시대입니다. 세상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차이는 차별의 원인이 됩니다. 이로 인한 갈등이 표면화되면 우리는 이를 ‘분쟁’이라고 합니다. 유혈사태가 없더라도 일단 ‘분쟁’이 발생하면 반드시 생채기는 남습니다.
한국을 예로 들어보죠.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라는 위협을 머리에 얹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고 계속되는 것도 아닌 정전 상태로 70여년을 보냈습니다.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비정상적 상황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북한 때문에 발생하는 일상의 불편함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딘가에서 계속 생채기가 나더라도 잘 보이지만 않으면 그뿐입니다.
고착화된 ‘비정상의 정상화’ 상태는 큰 충격 없이는 깨어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충격이 또 다른 ‘전쟁’이 아니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게나마 분쟁이 만든 비정상적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분쟁으로 인해 ‘가장 무고한 피해자는 누구일까’를 고민했습니다. 대상을 좁혀가다 보니 딱 하나가 남았습니다. 분쟁의 원인을 제공하지도, 분쟁의 의미조차 알지 못하는 존재. 바로 ‘어린이’였습니다.
마침 아일랜드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가 2021년 세계기아지수를 발표했습니다. 이를 살펴보니, 기아지수가 심각한 나라 대부분이 국내적이든 국제적이든 ‘분쟁’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세계기아지수 21위에는 북한도 있었습니다. 한반도 분쟁으로 인한 불편함은 이 상황을 초래하지도, 찬성하지도 않은 북한 어린이들이 겪어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지적하며 어쩔 수 없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출생은 우연적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맞지 않습니다. 해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안보 개념을 국가, 민족, 종교 단위가 아닌 사람 단위로 변경하면 됩니다. 이른바 ‘인간안보’의 시작입니다. 사람을 지키는 것이 안보라면 우리는 지금 당장 이 모든 분쟁을 멈출 당위성을 갖게 됩니다.
이상적인 말처럼 보이시나요? 하지만 국제사회의 가장 큰 대립이었던 냉전은 각국 지도자의 단순한 ‘인식전환’ 한 번으로 끝이 났습니다. 변화는 거창한 준비가 있어야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안보에 대한 인식전환이야말로 변화의 시작이자 끝일 수 있습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