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예술 초기인 1960년대에는 젊고 반항적인 그라피티가 대부분 불법으로 인식돼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래서 아티스트들은 남의 눈길을 피해 야간이나 게릴라적으로 그라피티를 남겨야 했다. 스트리트 아트가 게릴라 아트, 패스트 아트라는 별칭을 얻은 배경이다.
도시에 그라피티가 나타난 지 60여년이 다 된 지금, 거리예술가가 남긴 벽화를 찾아 도시의 골목을 누비는 투어코스에 많은 여행객이 몰릴 만큼 거리예술은 침체하거나 정체된 도시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으며 관광자원으로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글로벌 도시 곳곳에서는 어반아트(Urban Art), 포스트 그라피티(Post Graffiti)라 불리며 글로벌 브랜드나 단체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글로벌 작가들이 한 도시에 모여 미션을 수행하듯 작품을 남기기도 하고, 도시 건축물과 공간을 무대로 다양한 매체로 작품을 남기기도 한다. 때로는 건물과 도시공간의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사람이 매달리거나 건물에 박혀 있는 듯한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시스템을 해킹하고 그라피티 이미지가 건축물에 비춰졌다 사라지게 하기도 하며 빈 공간에 증강현실 이미지로 나타나는 등의 자유롭고 기발한 방식과 모습으로 우리 눈을 사로잡는다.
익숙한 공간과 환경을 환기시키다
또한 철거되기 직전의 집을 과녁으로 만든 이안 스트레인지의 작품을 보고 그라피티와 벽화로만 떠올렸던 거리예술이라고 쉽게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다양한 국적과 지역에 활동하는 스트리트 아티스트들과 대중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다. 축제도 열리고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작업하는 일들도 이제 낯설지 않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용 가능한 미디어가 확장된 일상에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더해져 거리예술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덕분에 대중과의 거리도 좁혀져 바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 보여준다. 해킹이라는 방식으로 거리에 미디어로 낙서를 하는가 하면, 구글지도에서 보이는 디지털 세상 속 위치표기 마커를 아날로그적으로 재현해놓기도 한다. 호주 출신의 한 예술가는 교외에 있는 허물기 직전의 집을 가로로 절단하거나 구멍을 뚫기도 하며 집의 외벽을 벽지로 온통 싸기도 한다. 또 건물 벽에 머리가 박힌 채 서 있는 극사실적인 사람조각으로 행인을 놀라게 하는, 쏠쏠한 보는 재미를 주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환경을 다시 보도록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호주 출신 작가 이안 스트레인지(Ian Strange·그는 ‘키즈줌’이라 불리기도 한다)는 집이라는 공간을 통 크게 자르고 칠하기는 거리예술가다. “스프레이 캔을 든 렘브란트로 불릴 만큼 그의 작품은 테크닉과 철학까지 독보적인 천재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집이 가진 상징성과 은유, 집이라는 곳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에 주목해 집을 칠하고 절단하고 황금색의 벽지로 외부를 싸며 집의 내부와 외부를 반전시킨다. 허물 예정인 집을 칠하고 절단하는 작업의 진행 과정과 결과를 사진과 영화로 남기는 기록과정을 통해 집이 가진 심리 사회적·경제적 의미를 끊임없이 묻는다.
이러한 작업은 퍼스의 교외지역에서 자라며 겪은 집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다. 호주 교외의 폐허가 돼가던 집들을 보며 집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심리적 안정감과 안전한 곳이라는 관념이 훼손되고 피폐해짐을 느낀 작가는 미국에서 지진으로 버려진 집들에서 버려진 퍼스의 집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집을 불편하고 잘려나가거나 불안하게 만듦으로써 집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 도전한다.
마크 젠킨스(Mark Jenkins)는 거리에 테이프 아트(Tape-Art)로 극사실주의적 조각을 만드는 작가다. 그는 여러 나라의 도시를 여행하며 사람들이 예술을 볼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 의외의 장소에 작품을 남긴다. 마크 젠킨스의 작품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선택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장소는 주로 저소득층의 주택단지로 사회적·경제적 어려움으로 예술과 문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자신의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있다. 젠킨스에게 문화적 혜택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과의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이 주변 환경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환기하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충격적이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연출해 익숙하게 느껴졌던 공간을 낯설게 만들어 장소에 대해 새롭게 보고 느낄 수 있게 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를 오가다
독일 출신의 작가인 아람 바톨(Aram Bartholl)은 디지털 미디어로 인해 변화하고 있는 우리 환경을 관찰하고 환기시키는 개념적 작업을 하는 거리미술가다. 2006년작 ‘맵(Map)’은 우리의 현실세계에 구글 맵에서 보여주는 가상적 이미지인 위치 마를 아날로그적으로 해석한 설치작품이다. 낯선 곳을 찾아가기 위해 구글 맵을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매우 친숙한 지표 이미지인 구글 핀(Google pin)은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해진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하나의 전형화된 이미지다. 작가는 현실과 가상세계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디지털 미디어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디지털적 삶을 아날로그 방식의 설치를 통해 역설적이고도 유쾌하게 해석해 놓았다. 실제 거리에서 마치 구글 지도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거리예술가의 작품은 이제 독립적인 시각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아 때로는 미술관에서, 갤러리에서 당당히 전시된다. 심지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미술시장에 이 반항적인 거리예술가의 작품들은 고가에 거래되는 아이러니한 일도 일어난다. 갤러리들은 앞다투어 두각을 보이는 거리예술가를 발탁해 중앙 무대 위에 올린다. 나이키, 코카콜라, 엡솔루트, LG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거리예술가들과의 협업해 마케팅을 벌이고 캠페인에도 열을 올린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자신들이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하고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거대한 도시공간을 갤러리처럼 사용하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많다. 이 현재 진행형 거리예술가들이 어느 길모퉁이에 만들어놓은 작품을 갑자기 맞닥뜨리는 상상만으로 유쾌하게 설렌다.
<허지영 MK 아트디렉터, 장인선 MK 스토리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