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는 힘입니다. ‘특별한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법률상의 힘’을 말합니다. 권리에는 기본권, 소유권, 전세권, 청구권, 형성권, 항변권 등이 있습니다. 노동과 관련한 권리는 기본적으로 헌법 제32조 제1항 제1문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입니다. 구체적으로 임금도 청구하고, 근로시간, 작업환경, 재해보상에 대한 근로조건에 관해 다양한 권리를 가집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기대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기대권(期待權)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현재는 없지만, 장차 다른 법적 요건이 갖춰지면 특정한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그렇지만 일방의 권리에는 상대방의 의무가 따르므로 쉽게 인정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 ‘갱신기대권’은 유례없이 ‘성공한 기대권’인 것 같습니다.
1980년대, 계약 기간을 정해 임용된 대학교원의 재임용계약 사안에서 “교원은 재임용 ‘기대권’을 가진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근로자의 근로계약 기간 갱신에 대한 기대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들어 대법원은 “기간을 정해 채용된 근로자라고 할지라도 장기간에 걸쳐서 그 기간의 ‘갱신이 반복’돼 그 정한 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에는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의 경우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그 경우에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갱신 계약의 체결을 거절하는 것은 해고와 마찬가지로 무효”라고 선고했습니다. 갱신기대권을 정면으로 인정한 것이었고, 갱신기대권을 부정하는 회사에 대해 부당해고 판결을 했습니다(대법원 93다17843). 이 판결 이후 주로 갱신의 관례가 없고 1회에 불과한 사안은 기간제 계약으로 보고, ‘장기간에 걸쳐 수차례 계약을 갱신한 사실’ 여부를 중요기준으로 삼아 판단했습니다.
정규직 ‘전환’ 기대권
2007부터 시행된 기간제법 제4조는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2년을 초과해 근로한 경우 원칙적으로 무기 근로계약으로 전환된 것으로 간주”하도록 규정했습니다. 근로계약 기간 2년을 경과한 경우, 갱신기대권 법리 적용에 앞서 기간제법 제4조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근로계약이 반복갱신되는 경우에도 해당 근로계약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 기간제 근로자와 정확히 2년만(또는 2년 이하로) 계약한 경우, 근로계약을 끝낼 수 있을까요?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라는 것도 인정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2016년 “기간제 근로자는 근로기간이 만료됨으로 근로관계는 종료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일정한 경우에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고, 사용자가 이를 위반해 합리적 이유 없이 정규직 전환을 거절하면 이는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습니다(대법원 2014두45765).
이 사건에서 법원은 ①A와 같은 일반직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정규직 채용 전 검증 기간이 필요하다는 인사위원회 요청에 따라 마련된 고용형태인 점 ②A는 정규직 근로자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고 ③B재단법인도 일반직 기간제 근로자들에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규직으로 채용될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말해온 점 ④실제로 A 이전 정규직 전환을 원했던 일반직 기간제 근로자 3명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된 점 ⑤ B재단법인은 A에게도 정규직 승격 기회를 부여하려 계약만료일 1개월 전에 인사평가를 했던 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전환기대권을 인정했습니다.
최근에는 정년퇴직 이후에 ‘촉탁직’으로 근무하는 ‘재채용 기대권’도 인정된 사례가 있습니다. 법원은 어느 사건에서 “원고의 정년퇴직일 무렵 원고에게는 재채용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했습니다.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 기간제 근로자에게도 인정된 사례도 발견되고, 근로자 5인 미만인 회사에서도 인정되고 있습니다.
권리로 인정된 기대감
우리 사회에는 기간제 근로자를 이중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있습니다. 2년 이상의 기간을 사용한 경우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합니다. 2년 미만의 기간을 사용한 경우라도 ‘갱신기대권의 판례 법리’를 통해 보호합니다. 소송을 한다면, 2단계 구조를 가집니다. ①근로자에게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지 ②사용자에게 갱신 거절을 할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입니다.
K는 기간제 연구원으로 취업했습니다. 회사 규정에는 인사평가에서 60점 이상이면 정규직 채용을 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K가 재직한 전후로 5년간 정규직으로 전환된 동료들은 37명이었고, 그중 18명은 근속기간 1년 이내, 나머지는 2년 이내에 정규직으로 전환됐습니다. K도 언젠가 정규직이 될 거라고 굳게 믿고 기대하며 열심히 근무했습니다.
회사는 K에 대해서도 인사평가를 했습니다. 결과를 보니, 2015년 심의에서 61.29점, 2016년 심의에서 63.85점이었고, 정규직으로 재계약할 수 있는 평가점수에 해당했습니다. 반면 2017년 1차 심의에서는 45점, 2차 심의에서는 49.1점으로 2015, 2016년과 비교해 크게 하락했습니다. K는 계약만료로 퇴사 처리됐습니다. K는 실망했지만, 곧 법원에 해고 무효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K의 업무수행 능력과 성과가 2017년 들어 현저하게 저하됐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고, 위와 같은 평가점수의 차이를 정당화할 다른 사정도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K에 대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의 평가에서 일관되게 낮은 점수를 부여한 F가 다른 위원의 평가와 인사위원회 심의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합리적인 의심을 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심사 과정을 거쳤다”며 부당해고라고 판단했습니다.
갱신기대권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지가 문제 된 경우로는 ▲업무평가 결과에 따라 계약갱신을 거절하는 경우 ▲계약갱신 거절의 사유가 사업의 축소·폐지인 경우 ▲공개채용 방식을 취하는 경우 ▲정년이 도래하거나 경과한 경우라고 합니다(대법원 노동법실무연구회). 그런데 위와 같이 전제가 틀렸다면, 업무평가에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됐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결국 K의 기대감은 권리로 인정됐습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