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백신을 활용한 성공적인 방역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해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는 2022년 이후 순조로운 경제 회복을 기대하며 통화정책의 완화적 기조를 인플레이션이 2%를 어느 정도 이탈해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하는 징후를 보여주면서 세계는 지금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물가상승 요인의 하나로 지목되는 원자재 가격의 인상은 그다지 문제가 아니다. 원자재 가수요로 가격상승이 생겨도 이는 경기회복에 부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에너지 가격이다. 유럽에서 북해에 부는 바람이 예년에 비해 부족했던 점, 중국 산시성의 폭우 등 지역적이고 지엽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사안들이 다른 요인과 겹치면서 전력생산을 부족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공급체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들의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탄소배출로 야기되는 완만한 수준의 지구 온도의 상승이 예상치 못한 기상이변을 만든다. 중요한 시사점은 지역의 작은 기상변화가 에너지 조달에 차질을 만들고 가격 인상을 통해 인플레이션도 지속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의 간헐성을 보완해주려면 결국 풍부한 용량으로 커버해야 하고 에너지 저축의 기술도 더 발전돼야 한다. 재생에너지 발전에 더 큰 투자비용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투자 필요한 에너지 전환
정부는 탄소중립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로 줄이기로 했다. 또 2030년까지는 2018년 총배출량 대비 40%를 줄인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 목표를 이루려면 우리는 그때까지 매년 평균 4.17%의 감축률을 유지해가야 한다. 속도가 더 가팔라졌다.
탄소배출량 감축과 이를 위한 에너지 전환은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다. 철강, 석유화학, 전자 등 전력 다소비 업종에서 기업은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해 기존 설비를 대체하는 대규모의 투자를 이행해야 한다. 병행해 재생에너지 분야에 공공의 기반투자가 필요하다. 대규모의 재정이 여러 해에 걸쳐 동원돼야 하며 코로나19 이후의 시기에 재정정책의 커다란 과제가 될 것이다. 한 세대가 부담을 책임질 일이 아니며 그 혜택도 누대에 미치는 것이다.
재정준칙 관련 입법안은 2020년 말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법안이 통과되는 경우 원칙적으로 국가부채는 GDP 60% 이내로 제한되고 통합재정수지는 GDP 3% 이내로 묶인다. 발효되는 경우 2025년 이후에는 재정지출에 커다란 제약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기재부의 중기재정계획에 따르면 2025년의 국가부채는 58.8%로 60%에 거의 다다른다.
계산해보면 2025년에 60%를 넘지 않으려면 2023년부터, 아니 2022년부터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3%를 넘지 않아야 한다. 즉 법안의 내용에서 재정준칙이 2025년부터 발효된다고 하지만 통합재정수지를 3% 이하로 묶는 규정은 새로운 정부가 시작하는 2022년부터 실제적으로 이미 작동되도록, 그렇게 돼야 2025년에 국가부채 60%의 규정이 지켜질 수 있도록, 기재부의 재정준칙 법안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정부, 적극성·유연성이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과 같은 거대한 국가적 프로젝트를 앞두고 재정준칙이 과연 우리에게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제도인지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기재부의 입장은 중규모 이상의 증세는 정치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우니 재정준칙의 법제화로 재정지출의 확대에 확실하게 제동을 걸자는 뜻으로 읽힌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대선주자들은 우리 미래에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해주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줄 방안에 대해, 보완돼야 할 복지제도들의 내용에 대해, 그리고 에너지 전환의 구체적인 향방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치적 의사결정이 선행돼야 하는 사안에 대해 실무부서인 기재부가 미리 선을 그어두는 것은 적절치 않다. 재정준칙은 미래의 정부 정책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현저하게 제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정부 역할의 적극성과 유연성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가부채 수준의 제한은 정부투자를 통한 국가경제의 성장 가능성을 막아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재정운용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며, 국회에서 정파 간 정쟁의 불씨만 제공하게 될 것이다.
부족한 복지제도의 보완과 신성장동력을 위한 정부투자를 위해 코로나19 경제위기 이후에도 정부의 재정지출은 확장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정부투자는 에너지 전환, 디지털 전환, 인적자원 개발을 위한 투자를 위해 필요하다. 정부지출의 확대는 증세나 국가부채의 확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에 이를 재정정책의 트릴레마라고 부른다. 복지제도의 보완을 위한 재원은 증세로, 신성장동력을 위한 정부투자는 국가부채로 방향을 정하고 재정정책의 트릴레마를 극복해가야 한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