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안 나는 ‘탈석탄’ 뒤 동상이몽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고효율 대체에너지 개발 아직… 인도네시아·호주 등 석탄 수익 ‘꽉’

2018년 11월 28일(현지시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인 폴란드 베우하투프 발전소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베우하투프|AP연합뉴스

2018년 11월 28일(현지시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인 폴란드 베우하투프 발전소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베우하투프|AP연합뉴스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합시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당시 기후변화협약은 비교적 수월하게 맺어졌다. 195개에 달하는 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지구 온도 상승폭을 제한하자는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채택했다. 온실가스를 대거 배출하는 중국과 인도, 미국 등도 함께했다.

5년 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삼림벌채 중단, 탄소제로 차량 개발 등 이전보다 구체적인 기후위기 대응 방안이 제안된 가운데 수많은 참가국이 멈칫한 제안이 있었다.

“석탄 화력발전을 없앱시다.”

탈석탄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한 핵심 과제다. 국제연구단체 글로벌탄소프로젝트(GCP)에 따르면 지난해 화석연료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 348억1000t 중 석탄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는 139억8000t으로 가장 많았다. 석탄은 화석연료 중 같은 부피에 탄소 성분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탄소배출원이도 하다. 석탄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갈탄과 무연탄 속 탄소 함량은 각각 60% 이상, 90% 이상이다.

COP26에서 일부 국가들은 이러한 석탄 사용을 멈추자고 약속했다. 11월 4일 발표된 석탄 화력발전 중단 합의에는 2030년대까지 주요 선진국들이 석탄 화력발전을 중단하고, 2040년대까지 나머지 국가들이 여기에 동참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선언에 동참한 정부, 기관, 단체 약 190곳은 국내외의 새로운 석탄 화력발전소 투자를 중단하고 대체에너지를 신속히 도입하고, 노동자들과 지역사회에 이익이 되는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기로 약속했다. COP26 의장국인 영국을 포함해 캐나다, 폴란드, 베트남, 칠레 등 국가와 영국 은행 HSBC, 캐나다 수출개발공사 등 단체가 COP26 탈석탄 선언에 참여했다.

탈석탄 발목 잡은 에너지난

문제는 석탄 화력발전 중단 합의에 참여한 나라는 COP26 참여국 197개 중 46개국뿐이었다는 점이다. 중국, 인도 등 석탄을 대량생산하고 대량소비하는 나라들은 동의국 명단에서 빠졌다. 기후변화 대응을 주요 국정 과제로 제시한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미국마저 동참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일부 국가들은 “일부 조항에만 찬성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한국 산업부도 “탈석탄의 구체적 시점에는 동의하지 않았으며 원론적 차원의 지지”라는 입장을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발생한 천연자원 수급 불균형으로 일어난 에너지난은 감소 추세였던 석탄 수요와 생산을 반등시켰다.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은 중국의 올해 석탄 생산량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의 올해 석탄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4% 증가한 39억9700만t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실제로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10월 하루 1160만t이었던 석탄 생산을 1200만t까지 늘렸다. 대규모 탄광이 있는 네이멍구자치구와 산시성에는 연간 석탄 생산량을 1억6000만t 이상으로 늘리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 11월 1일(현지시간) COP26 의장국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글래스고 회담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 글래스고|AP연합뉴스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 11월 1일(현지시간) COP26 의장국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글래스고 회담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 글래스고|AP연합뉴스

텍사스주, 캘리포니아주, 워싱턴주 등 곳곳에서 정전이 일어난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미국 내 석탄 사용량이 5억3700만t으로 전년 대비 23%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석탄 생산량도 증가할 전망이다. EIA는 올해 미국 석탄 생산량을 지난해보다 14.5% 높은 6억1730만t으로 추산했다. 시장분석업체 IHS의 제임스 스티븐슨 연구원은 미국의 석탄 생산량 증가 이유는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석탄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석탄가격이 가파르게 오르자 10월 초 인도의 화력발전소 135곳 중 절반 이상이 3일도 버티지 못해 연료가 바닥날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인도는 전력 생산 약 70%를 석탄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결국 인도 정부는 국내 석탄 생산을 늘려 ‘자급자족’ 방식을 택했다.

에너지난 속에서 석탄 사용이 늘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대체에너지 기술 부족에 있다. 지난 수십년간 각국은 풍력, 태양광, 조력 등 친환경 대체에너지 기술을 개발해왔지만, 석탄 등 화석연료나 원자력을 능가할 만큼의 효율적인 에너지원을 찾지 못했다. 대체에너지 효율이 대부분 날씨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는 한계점도 있다.

석탄 수익 포기 못 하는 나라들

아직 고효율 대체에너지가 개발되지 않은 탓에 원자력발전 의존도를 줄이려는 나라들은 석탄화력발전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전기 생산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2010년 22%에서 9년 후 30%대로 늘었다. 올해까지 원자력발전소를 전면 폐지한다는 독일도 탄광 개발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독일은 현재 전력 약 28% 화력발전을 통해 생산하고 있다. 전력 생산 원료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도 전력 생산 약 40%를 석탄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석탄 수요가 늘어나면서 석탄을 대량생산하는 나라들은 석탄을 통한 경제적 이권을 챙기려 하고 있다. 석탄 최대 수출국 인도네시아는 2021년 1월부터 7월까지 석탄을 수출해 380억달러(약 44조원) 수입을 남겼다. 인도네시아는 석탄 생산 중단 및 수출 제한을 위한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기한도 다른 나라보다 늦은 2056년으로 설정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석탄을 많이 수출하는 호주도 석탄 생산과 사용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호주 정부는 10월 3개의 새로운 탄광 프로젝트 사업을 승인했다. 탈탄소 흐름으로 금융권이 석탄 채굴 회사에 대출을 해주려 하지 않자 의회에 석탄 채굴 회사를 위한 2500억호주달러(220조원) 규모의 대출 지원 계획을 제안했다. 호주 산업·과학·에너지·자원부는 지난달 공개한 보고서에서 석탄 수출량이 지난해 4억t에서 올해 4억3900만t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화력발전소나 탄광을 폐지할 때 들어가는 비용도 이들 국가의 문젯거리로 남아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0년 호주 탄광산업 총수입은 약 732억8000만호주달러(약 65조원)이며 관련 산업 종사자는 약 3만9000명이다.

전력생산 90%를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남아공 정부는 최근 유럽연합(EU), 미국 등으로부터 85억달러(약 10조원) 규모의 지원을 받고 탈석탄 정책을 가속화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남아공 전국금속노조는 광산 산업 종사자 10만명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진다며 정부 결정에 반대하고 있다.

<윤기은 국제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