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바이러스, 베트남을 멈춰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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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일, 인구 1000만의 베트남 최대 경제도시 호찌민은 3개월여의 도시봉쇄를 풀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식당들은 손님을 정원의 50%만 받는 조건으로 영업을 재개했고, 쇼핑몰과 백화점들은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증명하는 그린카드를 제시한 사람들만 입장을 허용했다. 하지만 베트남의 위드 코로나는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다.

체온 검사와 백신 2차 접종을 확인하는 푸미흥 크레센트몰 / 유영국 제공

체온 검사와 백신 2차 접종을 확인하는 푸미흥 크레센트몰 / 유영국 제공

베트남 보건부의 발표에 따르면 인구의 58.7%에 해당하는 4900여만명이 1차 접종을, 24%에 해당하는 1900만명이 2차 접종을 완료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대유행의 중심이었던 호찌민은 외국인을 포함한 거주민의 99%가 1차 백신을 맞았고, 2차는 60%까지 완료한 상태다. 하지만 지금도 베트남 전체 하루평균 확진자는 6000여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백신 접종률이 높은 호찌민조차 하루평균 1000명을 웃돌고 있다. 11월 15일이면 전체 누적 확진자 수는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 1월부터 2021년 4월까지 1년 4개월간 베트남 전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단 2928명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방역을 잘한 국가로 칭찬받던 베트남이었지만 델타 변이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인력난으로 고통받는 베트남

호찌민의 도시봉쇄가 풀리고 이동이 가능해지자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시 경계 지역은 북새통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호찌민으로 이주한 저임금 노동자들이 5개월 동안 직장이 폐쇄되고 생계가 막막해져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들의 평균 급여는 한국 돈 25만원가량이다. 빠듯하게 모은 얼마 안 되는 돈은 봉쇄기간 생필품 구매와 사글세로 소진하고 몇달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다 탈출하는 것이다. 베트남 언론보도에 따르면 단돈 몇천원도 없이 40시간 넘게 오토바이를 타고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문을 닫은 베트남 CGV / 유영국 제공

문을 닫은 베트남 CGV / 유영국 제공

지난 7월부터 이렇게 호찌민을 빠져나간 노동자 수는 200여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5개월 만에 식당 영업이 재개되고 공장이 재가동돼도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사업을 재개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호찌민 식당 종업원 70% 이상이 고향으로 돌아가 식당 업종의 인력난은 매우 심각하다고 한다. 게다가 제한적인 물류 이동으로 육류, 채소, 과일 등 식자재 물가가 치솟아 식당 영업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5개월간 영업을 하지 못한 손실에다 건물 임대료까지 갚지 못해 파산하는 식당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전국적으로 13개 브랜드에 200여개 식당을 운영하던 베트남 최대 외식업체가 파산한 것으로 알려져 수많은 식자재 공급 업체가 대금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베트남 수출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신발, 섬유, 의류 업종과 같은 노동집약산업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호찌민시 비즈니스 협회(HUBA)에 따르면 도시봉쇄 완화 이후 호찌민과 인근 동나이, 빈즈엉 지역의 섬유, 의류 기업들은 필요한 노동인력의 30%가 부족하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베트남 기업들은 내년 2월 설이 지나야 본격적으로 노동자들이 일터로 복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 노동력 부족은 베트남 경제를 위협하는 수준 정도가 아니라 베트남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각종 소비재 품목의 해외 공급망이 와해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베트남의 코로나19 대처 방안

근무지와 거주지가 같은 지역에 있으면서도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노이와 호찌민 같은 대도시 유치원과 학교 역시 6개월이 넘게 문을 닫고 있어 아이들이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집에 컴퓨터가 없어 온라인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저소득층 자녀들도 수두룩하다. 게다가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인 베트남 가정에서는 아이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직장인 엄마들이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백신 2차 접종 증명서 그린카드 / 유영국 제공

백신 2차 접종 증명서 그린카드 / 유영국 제공

베트남 정부는 학교 교육의 오랜 공백을 막고자 11월부터 하노이, 호찌민 지역 16~17세 청소년들에게 우선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미국의 화이자사는 900만명의 청소년 접종을 위해 백신 2000만도즈를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베트남 정부에 약속한 상태다. 백신 접종을 완료한 학년부터 점차적으로 등교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베트남 정부의 더 많은 백신 확보가 요원하다.

현재 베트남 자체적으로 나노코박스, 코비박, ARCT-154 등 3종류의 백신을 개발 중인데 이중 나노코박스는 3b상까지 완료했다. 결과 보고에 따르면 두차례 백신 투여 후 90%가 넘는 항체 생성을 보이며 델타 변이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에도 백신 샘플을 제출해 승인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이 자체 기술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역사적인 쾌거는 보건당국의 최종 승인 지연으로 관계자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이례적으로 베트남 언론이 늑장 승인하는 베트남 보건부를 질타하는 기사들도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트남은 태국 푸껫 사례를 적극 검토해 호찌민과 베트남 남부 푸꾸억을 시작으로 패키지 관광을 계획하고 있다.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베트남에 입국하려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도착 72시간 내에 음성확인서와 코로나19 발병 시 최소 5만달러까지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보험에 가입해야만 한다. 이동 경로는 정해진 곳만 패키지 투어를 통해서 가능하며 베트남에 도착하자마자 코로나19 테스트를 통해 음성이 확인돼야만 여행할 수 있다. 향후 하롱베이, 다낭, 호이안, 달랏까지 지역을 확대할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보건 방역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의 계획은 확정된 것이 없다.

델타 변이 확산으로 베트남은 총체적인 난국이다. 하지만 한국 국민처럼 베트남 사람들 역시 수천년 동안 이어온 국가적 위기를 잘 이겨왔다. 이번에도 분명 베트남 사람들 특유의 인내심과 저항력으로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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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