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금융·기술·규제 3박자 갖춘 창업 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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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포럼 선정 세계 경쟁력 순위 1위, 글로벌 스타트업 분석기관 ‘스타트업 게놈’ 선정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 동남아 1위. 금융, 기술, 규제 3박자를 고루 갖춘 글로벌 핀테크 생태계로 주목받는 나라. 아시아 최초로 샌드박스 규제를 도입한 나라. 무역과 물류의 중심지로 런던, 뉴욕, 홍콩과 함께 세계 4대 금융시장으로 성장한, 아시아 태평양 진입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 싱가포르 이야기다.

싱가포르 전경 / 픽사베이

싱가포르 전경 / 픽사베이

인구 580만명의 작은 내수시장과 빈약한 자원에도 동남아 1위, 세계 14위 스타트업 국가로 성장한 비결은 뭘까. 싱가포르는 2014년 정부가 국민에게 더 나은 삶과 생산성 향상,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력을 가진 ‘스마트 스테이션’을 국가 비전으로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스타트업 추진정책을 시작했다.

샌드박스 규제제도 시행

싱가포르는 원래 금융과 MICE(기업회의·컨벤션·전시회) 산업이 떠받드는 경제 구조다. 이 두 산업에 스타트업이 가세하게 된 것이다. 금융 선진국답게 초기에는 스타트업 자금 지원을 위한 벤처캐피털(VC) 육성에 역점을 뒀다. 이스라엘과 실리콘밸리 벤처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VC의 투자금과 동일한 금액을 정부가 지원하는 1:1 매칭펀드를 도입했다. 또한 스타트업 시설에 창업가와 벤처투자자를 한 건물에 모아 네트워킹으로 아이디어를 얻거나 투자유치가 가능하도록 조성하고, 해외 유수기업과 인력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전 세계 자본과 기술이 싱가포르에 유입될 수 있도록 한 것도 한몫했다.

정부의 일관된 규제정책도 스타트업 생태계 선순환에 도움이 됐다. 한 번 정한 정책은 꾸준히 유지했다. 드론 관련 정책이 대표적이다. 현행 규제를 적용할 수 없는 모델을 일정 조건 하에 허용하는 샌드박스 제도를 시행할 때도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난 뒤 추진한다. 무인 자율주행차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도, 핀테크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규제 완화 덕분이다.

1970년대에 세워진 낙후된 공단인 에이어 라자 지역을 2011년 스타트업 허브로 변신시킨 것도 스타트업 활성화에 기여했다. 빌딩 이름을 따서 ‘블록71’로 불리는 이곳은 스타트업 250여개, 액셀러레이터 30여곳이 활동하는 스타트업 집결지로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인근에 싱가포르 국립대와 경영대 인시아드 등이 있어 이곳의 인재들이 창업의 길로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핀테크 허브로 주목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아시아 최초로 ‘샌드박스’ 규제를 도입한 사례처럼 유연한 규제가 있었다. 풍부한 자본과 시장, 유능한 인재와 더불어 세계적인 대형 금융기관을 유치하는 등 핀테크 시장을 넓혀온 것도 큰 역할을 했다.

동남아 최대 차량 공유기업인 ‘그랩’ , 동남아 최대 공유오피스 스타트업 ‘저스트코’, 동남아 전자상거래 업체 ‘라자다’ (사진 위부터)./ 각사 홈페이지

동남아 최대 차량 공유기업인 ‘그랩’ , 동남아 최대 공유오피스 스타트업 ‘저스트코’, 동남아 전자상거래 업체 ‘라자다’ (사진 위부터)./ 각사 홈페이지

글로벌 핀테크 생태계 구축

핀테크 분야에서 미국은 금융은 뉴욕, 기술은 실리콘밸리, 규제는 워싱턴에 위치해 생태계 시너지 효과가 부족하다. 중국은 핀테크 투자액은 아시아 최고지만 기업·소비자간 거래(B2C)와 내수 위주 비즈니스가 발달해 글로벌 확장성이 낮다. 반면 싱가포르는 금융, 기술, 규제가 한곳에 모여 있어 글로벌 확장성이 뛰어나다. 이런 연유로 뉴욕, 런던, 홍콩과 함께 4대 금융시장으로 성장했고, 200개의 은행과 1200개의 금융기관을 보유한 기업간(B2B) 비즈니스 모델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게 된 것이다.

정부 차원의 다양한 정책도 도움이 됐다. 창업 자금 지원을 돕기 위한 ‘초기단계 벤처펀드(Early Stage Venture Fund)’ 설립과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민간업체들이 정부의 투자 규모 이상으로 시장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스타트업 지원 활동에 190억싱가포르달러(약 15조8000억원)를 투자했다.

또한 기반이 없는 창업 기업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SG를 설립해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고, 세금 면제제도를 통해 신규 기업의 설립을 장려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보조금도 지급한다. 특히 로봇 스타트업은 최대 400만싱가포르달러(약 32억원)를 지원한다. 투자 유치도 활발한데 스타트업 투자금은 약 60억달러로 기술 분야는 동남아의 25% 수준이다. 투자 건수는 2012~2017년 사이 667건으로 아세안 투자 유치비율의 49.7%, 즉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으로 동남아 최대 차량 공유기업인 그랩을 비롯해 동남아 전자상거래 업체 라자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SEA, 여행 액티비티 플랫폼 클록 등이 있다. 현재 활동하는 스타트업이 4만여개에 이른다. 동남아시아 최대 공유오피스 스타트업 ‘저스트코’는 2011년 설립 이후 6년 만에 기업가치 2억달러를 돌파했다. 현재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7개국에서 40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창업목적이 이익 창출인지 아니면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것인지에 따라 지원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물론 스타트업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나선다. 예를 들어 전기 스쿠터 사고가 늘어나자 정부가 전기 스쿠터에 대해 보도 주행을 금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2016년 금융 분야에서 최초로 시작한 샌드박스가 교통, 에너지, 의료, 환경 분야까지 영역을 넓혔고 2018년에는 더욱 신속히 처리하는 샌드박스 익스프레스 제도도 도입했다. 금융 분야에서 기술이 혁신적이고 사업 모델이 건전한 기업의 경우 신청 21일 만에 사업을 허가해준다. 싱가포르의 스타트업 성장에는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친기업적인 유연한 규제, 무인 자율주행차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규제 완화, 일관된 규제정책에 생태계 선순환, 샌드박스 도입 영향이 컸다. 싱가포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전규열 서경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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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