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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이젠 정치판 ‘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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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총선 ‘뜨거운 감자’로 부상… 미국, 2036년까지 HFC 85% 감축 발표

지난 9월 20일 내가 사는 캐나다에서 총선이 있었고, 트뤼도 총리가 이끄는 자유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경제, 기후변화, 헬스케어 등은 선거에서 항상 주목받는 이슈였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기후변화가 단연 뜨거운 감자였다. 연방 탄소세, 기후변화 플랜 등을 놓고 각 정당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왜 이번 캐나다 선거에서 기후변화 이슈가 이리 뜨거웠을까?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왼쪽)가 9월 21일(현지시간) 몬트리올에서 열린 총선 저녁 행사에 가족과 함께 입장하며 지지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다. / 몬트리올 | 로이터연합뉴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왼쪽)가 9월 21일(현지시간) 몬트리올에서 열린 총선 저녁 행사에 가족과 함께 입장하며 지지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다. / 몬트리올 |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캐나다의 여름은 뜨거웠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 주변의 평년기온은 22도인데, 인근 도시 리턴은 무려 49.6도를 기록했다. 캐나다 역사상 최고기온이다. 에어컨도 없이 항상 시원한 여름을 보내던 캐나다인들에게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고온이었다. 이에 따른 산불과 인명피해도 많았다. 이 살인적 폭염의 원인은 ‘열돔’이었다. 열돔은 지열로 뜨거워진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대지를 또다시 데워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으로 캐나다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다. 기억을 되뇌면 지난겨울도 무척이나 따뜻했다. 매서운 추위로 유명한 캐나다에서 비교적 온난한 겨울은 축복일 수도 있지만, 주변 많은 이들과 함께 의아해하며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조금씩 지구온난화의 현실과 이에 따른 기후변화 문제를 캐나다인들은 실감하고 있고, 이것이 선거의 핵심이슈로 나타났다.

환경보호 물질에서 환경오염 물질로

최근 미국에서도 기후변화와 관련된 환경정책에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있었다. 2021년 9월 23일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환경보호처(EPA)는 에어컨, 냉장고의 현 냉매제인 수소불화탄소(HFC) 사용과 제조를 15년 이내에 85%까지 줄인다는 시행령을 ‘드디어’ 발표했다. 미국 환경보호처는 2023년까지 HFC에 대한 상한선을 90%로 설정했는데 이는 향후 2년 동안 기업이 HFC를 만들거나 수입할 수 있는 최대 허용량을 의미하고, 이후 추가 규제를 통해 2036년까지 85%까지 축소할 예정이다.

오래전 에어컨과 냉장고를 작동시키는 냉매제는 프레온 가스로 알려진 염화불화탄소(CFC)였으나 이것이 오존층을 파괴하는 주요 원인으로 주목되면서 HFC로 대체됐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대두되면서 다시 HFC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HFC는 지구 열의 외부 방출을 막아 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효과가 큰 물질로 밝혀진 것이다. 한때 오존층 파괴를 막기 위한 환경보호 물질로 개발된 HFC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환경오염 물질로 바뀐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최로 40개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화상 기후변화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9월 2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인근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각국 정상들의 모습을 본뜬 팻말을 들고 있다. 왼쪽 팻말부터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워싱턴 |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최로 40개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화상 기후변화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9월 2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인근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각국 정상들의 모습을 본뜬 팻말을 들고 있다. 왼쪽 팻말부터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워싱턴 |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미 행정부 HFC 규제 동참

HFC는 1987년 몬트리올의정서 및 1997년 교토의정서를 통해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이후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가스 효과를 불러오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몬트리올의정서를 수정한 2016년 키갈리 수정협약을 통해 HFC의 사용을 미국·유럽은 2036년까지 85% 감축, 중국과 100여 개발도상국은 2045년까지 80% 감축을 합의했다.

[기고]기후변화, 이젠 정치판 ‘메인’이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 때 서명했던 키갈리 수정협약을 트럼프 정부는 의회에 비준요청을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를 거짓말이라고 묵살하면서 기후·환경 관련 법규들을 후퇴시켜 왔다. 이후 다시 민주당 정권으로 돌아온 바이든 정부는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법규에 속도를 내면서 HFC 규제에 동참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민감한 캐나다는 키갈리 기후협약이 제시한 2019년부터 10% 규제를 이미 시작했고, 점차적으로 규제의 폭을 확대하며 2036년까지 85% 감축을 예정하고 있다.

여기서 두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 왜 100%까지 규제하지 못하는 걸까? 이유는 아직까지 HFC를 대체할 새 냉매제를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 CFC 규제를 통해 HFC를 개발한 것처럼 규제기간 동안 새로운 냉매제 개발을 기대하는 것이다. 둘째, 15년 동안 85%까지 규제에 따른 산업계의 영향은 어떨까? 바이든 정부는 새 냉매제 개발에 큰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예산지원이라는 당근과 사용 규제라는 채찍을 통해 환경오염 위험이 없는 대체 냉매제 개발을 통한 새로운 일자리들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일단 환영하는 모습이다. 미국 냉동공조협회(AHRI)에서는 HFC 규제가 기후와 미국경제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평가하면서 새로운 경제효과를 예상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 있고, 특히 식당·슈퍼마켓 등 상업용 냉장시설을 써야 하는 곳에선 냉장고 수리와 구매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봉석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환경기업인 하이드라텍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토론토 대학에서 토목환경공학 박사 박위를 받았다.

<정봉석 하이드라텍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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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