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알게 된 건 영국 유력 언론이 선정한 ‘100대 소설’을 정복하기로 결심했을 때입니다. 감옥 세계에 들어오면서 장바구니를 가득 채운 온라인서점 계정을 주변에 공유했더니, 수많은 책 중에서 그 소설이 친구 눈에 띄었답니다. 막상 친구의 선물이 제게 닿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교정시설에 방문해 수용자의 지인으로 등록한 사람만 책을 보낼 수 있도록 한 규정, 한 번에 5권 이하만 반입할 수 있도록 한 규정 때문입니다.
책을 펴보니 서사보다 작가의 의식을 우주처럼 펼치는 데 초점을 둔 소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다른 작품을 번갈아가면서 읽긴 했지만 4월부터 시작한 이 시리즈의 10번째 책에 간신히 접어들었습니다. 아직도 번역자가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라 한글판 완결이 멀었다는 소식에 깊이 좌절했습니다.
“현실을 견뎌 내려면 마음속에서 뭔가 하찮은 미친 짓들을 계속 생각해내야 한다.” 지금까지 제가 만난 프루스트의 문장 중 가장 인상적인 구절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현실과 허구가 방대한 분량으로 뒤섞인 소설에 자아를 가둔 그의 성찰은 제 처지에 꼭 들어맞습니다. 마치 출판사의 교정 업무를 위탁받은 듯이 온종일 책을 들여다보며 작가가 남긴 오류를 꼼꼼히 기록합니다. 마음에 드는 글귀를 인용할 곳도 없지만 욕심을 버리지 못해 닥치는 대로 발췌합니다.
찰나 같지만 접견과 운동 같은 이벤트가 있는 평일이 그나마 버틸 만합니다. 좁고 과밀한 방에서 보내는 주말과 공휴일은 시선 둘 곳이 없는 탓에 시계와 달력을 한참이나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바깥세상과 소통 창구인 편지를 닷새 치나 앗아간 추석 연휴는 폭염만큼이나 험난한 고비였습니다. 분명 시간의 봉우리를 넘는 것은 징역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드문 성취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요행 따위는 통하지 않아 오로지 맨몸과 맨정신으로 맞서야 할 연휴가 10월에 또 있다는 사실, 심지어 본디 없다 늦게서야 생겼다는 사실은 공포스럽습니다. 쉬어야 하는 날 일하는 걸 가장 끔찍이 여겼던 노동자는 쉬는 날도 없이 일하기를 원하는 죄수가 됐습니다. 악덕 사용자에 동화된 태도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스스로를 다독여도 시간의 무게를 헤아릴 때마다 한없이 나약해집니다. 마저 이겨내야 할 시간을 온전히 마주할 자신이 없어 날짜를 하나씩 세는 걸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상처받지 않고 시간을 셈하는 단위를 여럿 만들었습니다. 서적 한권, 편지봉투 한묶음, 컵라면 한박스, 영양제 한통, 따져보니 하루하루를 성실히 지내며 해치워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길이입니다. 오전 5시 30분에 시작해 오후 9시 30분에 끝나는 일과는 매일 똑같이 반복돼 하루와 하루 사이를 경계 짓는 것이 무의할 뿐입니다. 기억할 이유라고는 찾을 수 없는 지금의 시간을 프루스트처럼 되새길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겁니다. 그저 난해한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 감옥 세계에서의 마지막 하루에 도달하기만을 기다립니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