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적’ 성격 국내 규제안 실효성 의문… 경쟁 양상 급변해 규제 방향성 설정 쉽지 않아
“플랫폼은 빛과 그림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빛은 자본과 배경이 없어도, 기술이 모자라도 큰 흐름의 시장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선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이같이 말했다. 김 의장은 플랫폼의 빛을 강조했지만 이날 국감은 인수·합병(M&A)을 통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 골목상권 침해 등 플랫폼의 그림자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택시 호출, 인터넷뱅킹을 시작으로 미용실 예약, 자전거 대여, 스크린 골프 등 사업확장을 뻗어가는 과정에서 ‘갑질 논란’이 불거지면서 최근 여당과 경쟁당국을 중심으로 규제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규제는 주로 플랫폼·입점업체, 플랫폼·소비자 등 ‘갑을 관계’에 방점을 두고 있다. 플랫폼 기업이 입점업체에 구입을 강제하거나 부당하게 손해를 떠넘기는 불공정 거래를 막는 온라인플랫폼법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소비자가 광고 제품을 검색 결과로 잘못 인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색·노출 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을 표시하도록 하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도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중이다.
그러나 이들 규제안은 거래관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플랫폼 수수료 부과 기준이나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를 계약서에 담도록 하는 등 기존 규제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플랫폼의 독과점을 막는 움직임은 더 소극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지배적 위치에 있는 플랫폼 기업에 대한 맞춤형 규제 방안을 내놓겠다고 예고했지만 가입자 수와 보유 데이터양, 중개력 요건을 고려하는 등 플랫폼의 특성을 반영할 뿐 여전히 사후 규제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행정지침 수준에 머물러 법적 구속력도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
미·EU, ‘사전 규제’ 초점
반면 미국 경쟁당국은 ‘사전 규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 상대적으로 급진적일 수 있었던 데는 그동안 소비자 후생만 강조해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 ‘아마존 킬러’로 불릴 정도로 플랫폼 독점 문제에 비판적인 리나 칸 신임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은 2017년 미 예일대 로스쿨 재학 시절 쓴 논문 ‘아마존 반독점 패러독스’를 통해 “경쟁당국이 경쟁을 위협하는 아마존을 제어하지 못한 데는 가격 인하가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인식과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칸 위원장은 “미국 소비자의 44%가 상품검색을 위해 아마존을 방문하는데 이들의 쇼핑 이력 등 다양한 정보는 새로운 경쟁자에게 극복할 수 없는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지난해 미 하원 법사위원회 반독점소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GAFA)이 지난 10년간 자연적으로 성장하기보다 수백건의 인수·합병을 통해 인위적으로 몸집을 키웠고 특히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킬러 인수합병’을 진행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지난 6월 미국 하원 양당이 발의한 플랫폼 법안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특히 플랫폼 사업자가 이해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업체의 주식 등을 매입하는 것을 원천 차단한 점이 눈에 띈다. 김지홍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아마존은 자신의 플랫폼에서 16종의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아마존 베이직’이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는데 다른 판매자 이익을 침해한다고 평가될 경우 아예 관련 사업을 접거나 제3자에게 매각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업체의 자사 우대는 알고리즘 조정 등을 통해 교묘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만큼 경쟁당국이 제때 제재하기가 어려워 아예 자사우대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가 인수·합병으로 인해 시장지배력이 확대되지 않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점도 경쟁당국에 입증책임이 있었던 기존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최근 3년간 구글 등 플랫폼 기업에 수조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던 유럽연합(EU)도 사전 규제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사후 규제만으로는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EU 집행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디지털 시장법’은 구글과 아마존 등 플랫폼 기업에 대한 각종 사전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 자사 상품·서비스를 제3자가 제공하는 것에 비해 노출 순서상 우대하지 말고, 사용자가 데이터를 원활히 이동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또 이를 어길 경우에는 전 세계 매출액의 10% 범위에서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경쟁당국이 기업 분할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가격·빅데이터 측면 장점도
다만 이 같은 사전 규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플랫폼 기업의 신규 사업 진출 제한이 소비자가 값싼 가격으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랫폼 광고 사업과 음악 스트리밍 사업을 한 업체가 운영한다면 소비자는 무료로 음악을 듣는 대신 광고를 볼 수 있지만 분리된다면 이 같은 무료 서비스가 제공될 가능성은 낮아진다.
축적되는 데이터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강지원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보고서 ‘플랫폼 M&A와 독·과점’를 통해 “플랫폼 간의 기업결합으로 규모·내용면에서 빅데이터를 고품질의 마케팅 정보로 가공하는 것은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쟁 양상이 끊임없이 변하는 플랫폼 산업에서 점유율이 높은 독과점 사업자라도 후발주자에게 단기간 내 추격당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경쟁당국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갈 수 있다. 앞서 공정위는 DH가 국내 배달앱 1위 업체 우아한형제들의 인수 건을 승인하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요기요’를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매각을 통해 독점적 지위를 해소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공정위는 쿠팡이츠의 ‘1주문 1배달’ 모델이 배달앱 1위 배달의민족과 2위 요기요를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그러나 공정위의 예상과 달리 쿠팡이츠는 주요 광역시와 강원, 전라, 제주 등에 진출하는 등 전국적으로 사업 지역을 확장하고 있다. 강지원 조사관은 “1위 사업자인 배달의민족도 ‘1주문 1배달’ 정책을 도입하는 등 시장양상은 공정위의 당초 예측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플랫폼 생태계에서 복잡해지는 거래관계만큼 경쟁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박상영 경제부 기자 s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