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사회는 분리 불가능하다. 기술과 사회는 서로 호흡하며 상호작용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이 명제를 부인하는 순간 기술은 그 자체로 갈라파고스가 된다. 기술과 사회의 분리 불가론에 기초하면 기술자,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역할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개발자는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제도적 책임을 회피해온 역사적 관행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더 이상 개발자가 정책과 정치의 공백상태에 놓여서도 안 된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코딩창이 도피처가 될 수도 없다. 이 역할 모델을 이젠 기본상태로 받아들여야 한다.
책임있는 혁신(Responsible Innovation)은 그래서 중요하다. ‘해결하려는 것보다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지 않도록, 새로운 기술을 사회를 위해 작동케 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이 개념어는 과학계를 거쳐 기술계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위한 혁신’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러다이트와도 대별된다. 기술 혁신을 부정하지 않되, 그것을 사회적 생태계 안으로 묶어두겠다는 거버넌스 모델이자 프레임워크다.
책임 있는 혁신은 예견, 포용, 성찰, 반응성 4가지 요소에 기반을 둔 기술의 윤리적 설계를 제안한다. 혁신도 이러한 틀 안에서 시도할 것을 촉구한다. 하지만 정착시키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정책의 해방구’에서 성장형 혁신에 주력해온 기술개발자들의 관성이 책임 있는 혁신의 현실 적용을 어렵게 해서다.
페이스북 파일 사건, 카카오 독과점 논란을 다룰 때도 이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인스타그램이 10대 소녀에게 유해하다는 내부 연구진의 의견을 페이스북 임원들이 묵살한 그 이면을 살필 때도 책임 있는 혁신의 관점을 빌려올 필요가 있다. 소프트웨어 설계 단계에서 유해성 평가를 하지 않았고, 혁신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관여를 도외시했으며, 수많은 사회적 문제 제기에 반응성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빚어진 결과여서다. 카카오는 포용의 가치를 혁신 단계에서 고려하지 않아 사회적 반발을 초래한 경우에 해당한다.
책임 있는 혁신은 이해관계자나 공공적 가치,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제품의 형태나 설계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사회와 격리된 그들만의 공동체에서 그들만의 혁신에 몰입하다 보면 이 능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사회에 대한 책임성 결여가 개발자로서의 실력 평가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담당 부서가 검토하고 방어해야 할 골치 아픈 작업이라며 내팽개치기까지 한다.
사회적 가치에 반응하는 역동적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은 그래서 절박하다. 도덕적 IT(Moral IT) 혁신론이 소개되고는 있지만, 현장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사회적 애자일 방법론’과 같은 급진적 접근법도 얼마든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발자 공동체 스스로가 책임 있는 혁신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내놓지 못한다면 지금보다 더 큰 사회제도의 압력에 휩싸일 것이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