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역까지 가는 급행은 언제 오는지 여기다 전화해서 한번 알아봐 줘요.” 지난 주말 친구네 집에 가는 열차를 타러 서울 영등포구 신도림역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한 어르신이 내게 다가와 쪽지를 내밀었다. 그 쪽지엔 ‘신도림역 사무소 02-xxx-xxxx’라고만 써 있었다. 어르신은 “어떤 열차가 신창행인지 몰라 40분을 기다렸어”라며 도움을 청했다. 나 말고 다른 이들에게도 사무소에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한 모양이었다. 그는 이번 열차, 다음 열차, 그다음 열차까지를 안내하는 전광판을 머리 바로 위에 두고도 역 안내사무실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며 역사를 헤매고 다녔다고 했다.
스마트폰에 깔린 지도앱으로 운행정보를 찾아 앞으로 세 번째에 오는 열차를 타면 된다고 알려드렸다. 신창행 급행은 운행 간격이 길어 한참을 기다려야 하니 그냥 일반 열차를 타면 더 빨리 도착할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처음엔 “59분에 오는 걸 타시라”고 했지만, 열차가 밀렸는지 시간표와는 도무지 맞지 않았다. 신도림역은 젊은이인 나도 갈 때마다 헷갈리는데, 설상가상 스마트폰으로 찾아본 운행정보도 오락가락이니 노인에겐 얼마나 어려웠을지 알 만했다.
함께 기다리는 동안 1호선 가장 남쪽까지 가는 신창행은 왜 타시느냐 물었다. 그는 온양온천에 간다고 했다. “신도림역에는 6개월 만에 왔다”고도 했다. 친구분들도 만나시냐고 했더니 “다 갔어. 그 나이 땐 친구랑 노는데, 이 나이가 되면 친구가 안 남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잠시 뒤 “저는 이번 걸 타니까 그다음에 오는 거를 타시면 돼요” 하며 헤어졌다. 그날 내내 그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서울엔 잘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노인과 청년은 같은 세상을 전혀 다르게 산다. 노인이 누리는 세상은 과연 청년의 그것에 비해 얼마나 될까.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전자상거래도 활용할 줄 모르는 노인에 ‘빙의’해 주변을 바라보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세상 살기 좋아졌다’고 하는데, 정보가 빛처럼 빠르게 이동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데, 정작 인구의 16.4%가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는 혁명인가 퇴보인가. 누구보다 대중교통이 필요한 노인들이 지하철역에 도착해 발이 묶이는 이 모순을 해소할 혁명은 무엇일까.
그동안 취재하면서 접한, ‘배움의 즐거움’을 이야기했던 어르신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나이 90에 한글을 떼고선 시를 썼고, 70대에 알파벳을 배워 “영어 간판을 읽게 돼서 좋다”고 했다. 학력인정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자식 등에 업혀 수업에 출석한 분도 있었다. 하나같이 “죽는 날까지 배우고 싶다”고 했다.
‘배움’의 반대편엔 ‘가르침’이 있다. 배우고자 하는 노인들의 의지는 충분한데, 그들을 가르치려는 우리 사회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당장 나는 할머니에게 스마트TV 켜는 법을 친절히 설명했던가. 지하철 운행시간표, 간편결제, 문화시설 정보 등을 가족이, 더 나아가 지역사회가 가르쳐야 한다.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싶은 것부터 들고 다가가는 것이다. 안내표지판을 더 큰 글씨로, 한국어로, 여러군데에 붙여두는 일이 첫 시작일지 모른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