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때처럼 자산시장 거품 꺼지면 급격한 세수 위축 가능성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예산안이 지난 8월 30일 공개됐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내년 5월 끝나는 만큼 차기 정부의 첫 예산이기도 한 2022년도 예산안을 두고 평가는 엇갈렸다. 언론이 주로 주목한 부분은 총지출 증가율이었다. 내년 재정지출 증가율이 8.3%인 것을 두고 ‘문재인 정부 마지막 예산도 선심성 돈풀기’, ‘내년에도 퍼준다…나랏빚 1000조 첫 돌파’와 같은 비판이 쏟아졌다. 한편에서는 코로나19 위기가 지속되는데도 불구하고 전년(8.5%)보다 재정지출 증가율이 낮아진 것을 두고 ‘확장 재정 뒷걸음질’, ‘코로나 격차 해소엔 인색’과 같은 평가도 있었다. 과연 어떤 평가가 맞는 것일까?
돈을 많이 썼는지, 혹은 덜 썼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버는 돈이 얼마인지에 달려 있다. 돈을 100만원 쓰더라도 110만원을 벌면 덜 쓴 것이고, 90만원을 벌면 더 쓴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살림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내년 예산안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재정수입 전망치였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재정수입이 올해보다 13.7% 증가한 548조8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금 등을 제외한 국세수입만 놓고 보면 올해 본 예산대비 19.8% 늘어난 338조6000억원을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증가폭은 2001년 이후 최대규모다.
정부 ‘장밋빛’ 세수 전망, 근거는?
당장 내년에도 재정 확장 기조를 이어가기 위한 ‘명분 쌓기용’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올해보다 소폭 줄었지만, 내년 재정지출 증가율은 경상성장률을 웃도는 8.3%인 만큼 재정건전성 훼손 논란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불과 두달 전 2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당시 예상치보다 내년 국세 수입이 24조3000억원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점도 이 같은 의혹을 부추겼다. 이미 추경 편성을 할 때도 빠른 경기회복세에 자산시장 과열까지 예상된다는 이유로 국세 수입 전망치를 31조5000억원이나 올려 잡은 상태였다.
반면 정부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선을 그었다. 정부가 내건 근거는 위기 이후에는 경상성장률보다 세수 증가율이 더 가파르게 회복한다는 점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도 세수가 전년 대비 10% 넘게 늘었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위기는 세수가 가파르게 늘어난 외환위기보다 오히려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더 가까울 수 있는 만큼 장담하기 어렵다.
약 10년의 시차를 두고 발생했던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는 원인이 달랐던 만큼 충격의 강도와 회복하는 기간도 달랐다. 지난해 한국재정학회에 발표된 논문 ‘경제위기별 세입흐름의 특징, 어떻게 다르고 왜 그런가?’를 보면 외환위기 당시 경기가 하락한 기간은 29개월로 글로벌 금융위기(13개월)보다 훨씬 길었다. 생산량 감소 폭도 외환위기(-15.3%포인트)는 금융위기(-7.7%포인트)보다 약 2배 컸다. 경제 충격은 컸던 데 비해 세수는 금융위기(-37.4%포인트)가 외환위기(-18.0%포인트)보다 더 빠르게 줄었다.
회복하는 과정도 달랐다. 밑바닥에서 경기가 다시 완전 회복하기까지 외환위기는 24개월이 걸렸지만, 금융위기는 30개월이나 소요됐다. 국세 수입도 외환위기 때에는 세수가 줄어든 폭(-18%포인트)보다 더 가파른 상승폭(42.6%포인트)을 기록했다. 이에 비해 금융위기는 국세 수입이 30%포인트 회복하는 데 그쳐 위기 당시 국세 감소분(37.4%포인트)을 메우지 못했다. 외환위기가 경기 충격은 더 컸지만, 세수는 덜 줄었고 회복도 빨랐던 것이다.
외환위기 vs 금융위기, 어느 길 갈까?
외환위기 때 세수 충격이 크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논문은 높은 물가와 금리로 이자배당소득세, 유류 관련 세수가 늘어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대량실업과 소비 위축으로 부가가치세와 근로·종합소득세가 줄었지만, 이들 세수가 증가하면서 충격을 완화한 것이다. 이후 회복 과정에서 구조개혁에 성공하면서 실업률이 하락하고 명목임금과 민간소비 등이 큰 폭으로 반등해 세수 증가를 견인했다. 특히 부실기업 정리와 재무구조 개선에 힘입어 법인세가 큰 폭으로 증가한 점이 주효했다.
반면 금융위기는 자산시장 거품이 발목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침체된 실물시장과 달리 시중 유동성이 부동산에 몰리면서 ‘나 홀로 호황’이었던 현상이 세수 충격을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실제 당시에는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양도소득세 등 관련 세수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여기에 대외여건 악화로 수출도 단기간에 급락했다. 이후 수출은 반등에 성공했지만, 민간소비와 투자는 오랫동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자산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돈줄을 조이면서 민간소비 회복을 더디게 만들기도 했다. 소비와 투자가 빠르게 회복된 외환위기 회복 양상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 같은 전례에 비춰보면 내년 세수 증대는 장담할 수 없다. 코로나19 위기에도 불구하고 최근 세수가 늘고 있는 것은 금융위기 직전처럼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자산 관련 세수 영향이 컸다. 만약 자산시장 거품이 꺼지게 되면 세수가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자산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주요 은행에 가계 대출을 줄이도록 압박하는 상황이어서 소비마저 위축될 수 있다. 경기 회복으로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종합소득세 등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는 정부 예상과는 정반대로 가게 되는 셈이다.
만약 내년 세수입이 예상보다 덜 걷힌다면 이는 고스란히 차기 정부의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13년에 세수가 372조6000억원(국회 통과 기준) 걷힐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작 351조9000억원에 그치면서 예산이 20조7000억원이나 부족한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임기 첫해부터 경기침체에 따른 세입결손 12조원을 포함한 17조3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했다. 이 같은 규모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와 2009년 금융위기 직후를 제외하고는 역대 최대 수준이었다.
반대로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임기인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임기 첫해인 2017년에는 예측보다 약 23조원의 세수가 더 걷힌 덕분에 국채를 추가로 발행하지 않고 추경 편성을 했다. ‘빚잔치’ 논란을 피하고 대규모 일자리 사업을 편성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2022년에 출범하는 정부는 세수 결손을 떠안을 것일까. 아니면 초과 세수의 행운을 누릴 것일까. 구조개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차기 정부의 재정운용 운명도 결국 ‘집값’에 달렸다.
<박상영 경제부 기자 s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