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소수 가진 자들이 불을 댕긴 후 투기장에는 ‘떡고물이라도 챙기겠다’는 중간층이 부랴부랴 달려들고 있습니다. 기업체 사원, 공무원, 교사 등 샐러리맨들은 ‘우리가 언제 월급만으로 살아왔습니까’라며 본업을 제쳐둔 채 사무실에서도 증권과 아파트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의 이야기 같지만, 월간 ‘말’지 1989년 7월호의 한 기사이다.
5공화국 이래 주택정책은 도시 영세민, 무주택자들에 대한 주거제공보다는 이른바 ‘중산층 포섭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이러한 ‘중산층 포섭전략’은 6공화국에서도 이어졌고, 전 국민의 60% 이상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믿고 있다는 통계들이 발표됐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의 근원은 주식과 아파트 가격 상승과 같은 자산소득이었다.
그러나 빈민의 삶은 더욱 열악해져 갔다. 대표적인 예는 1982년 말 도입된 이른바 ‘합동재개발’이었다. 1983년부터 시작된 서울시 양천구 신정동, 목동 개발사업은 국가엔 막대한 이익을 줘 올림픽 재원을 마련해줬고, 토지주에겐 아파트를 줬다. 하지만 쓰레기차에 실려 와 신정동, 목동 갈대밭에 버려졌던 사람들은 땅을 고르고 집을 짓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철거민 신세가 돼야 했다. 재개발 제도는 아직도 이 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1985년부터 도시빈민운동을 시작하게 했다. 하지만 중산층이 외면하는 빈민운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언론도 빈민이 아니라 중산층의 관점만을 반영했다. 그후 서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하는 민주당이 세 번 집권했다. 현실은 나아졌을까? 아니면 민주당 정부 또한 중산층만을 바라보았을까? 정치인마다 다르겠지만 ‘중산층 포섭전략’의 틀을 벗어났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주간경향 1439호에서 소개한 ‘2020년 서울시 아동가구 주거실태조사’와 ‘2021년 경기도 아동가구 주거실태조사’의 결과는 빈곤정책의 빈곤을 보여주는 성적표다. 이 조사들은 아동의 주거실태에 관한 최초의 국가승인 통계다.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를 매일 섭취한다’ 등 14개 항목으로 구성된 아동결핍지수를 조사하는데 이는 의식주, 교육, 여가 등 다차원적 빈곤을 측정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헝가리를 제외하면 아동빈곤지수가 가장 높다고 한다. 충격적이다. 높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뒷면에는 최저 주거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주거빈곤 환경에서 신체질병과 정신질병을 겪는 아이들이 있었다.
주간경향의 취재에서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은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간혹 ‘청소년 부모’가 될 경우 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에서 그 부모의 소득을 알려달라고 요구하는데, 부모와 관계가 끊긴 ‘청소년 부모’들은 차라리 주거급여 지원을 포기하고 모텔 등을 전전하며 아이를 키운다는 대목이었다. 복지대상을 ‘선별’하는 지원요건이라니. 이쯤 되면 우리나라의 선별적 복지는 복지가 아니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쪽방촌에 사는 어려운 이웃들을 방문해 사진만 찍을 뿐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 그런 정치인들도 문제지만, 알량한 중산층 환상에 빠져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만 하는 우리도 문제일지 모른다. 주택정책의 핵심을 투자기회 제공에서 주거빈곤의 해결로 전환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김윤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