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쉿 잡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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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모없는’ 일은 많다

<불쉿 잡>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김병화 옮김 민음사·2만2000원

[신간]불쉿 잡 外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어디서든 지상가치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과연 세상의 일들이 모두 쓸모가 있을까. 제목에 나온 ‘불쉿(Bullshit)’은 ‘쓸모없는’, ‘엉터리’ 같은 의미를 지닌 비속어다. 책은 이렇게 욕설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무의미한 일자리들이 점차 늘어나고, 의미 있는 일자리조차 영향을 받아 무가치한 작업량이 늘어나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줄 기술이 발전했지만 ‘일만을 위한 일’이 엄청나게 증가한 탓에 저자가 예로 드는 “사모펀드 CEO나 광고 조사원, 보험 설계사, 집행관, 법률 컨설턴트”처럼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세상이 그다지 나빠질 것 같지 않은 직업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이러한 무의미한 일의 상당수는 고액의 연봉을 보장받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사회가 멈춰도 노동을 멈출 수 없는 ‘필수노동자’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과 대비된다.

네덜란드에서는 종사자조차 존재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 형태가 40%에 달한다는 조사도 있다. 이런 직업은 상관을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제복 입은 하인’, 문제를 임시방편으로 때우는 ‘임시 땜질꾼’, 그저 서류만 양산하는 ‘형식적 서류 작성 직원’ 등 여러 유형으로 분류된다. 일을 하는 자신조차 자괴감을 느끼는 이런 일은 연원을 따지면 금융자본주의의 성장에 따라 실질적인 상품을 만들고 유통하기보다는 할당과 분배 자체에만 목적을 둔 사회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소수에게만 더욱 많은 부가 집중된다. 자신이 만족하고 사회에도 기여하는 일자리 대신 경제적 가치에만 매달리는 일자리들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세계의 단면이다.

▲사망유희
김수정 지음·둘리나라·1만원

[신간]불쉿 잡 外

‘둘리 아빠’로 유명한 만화가인 저자가 ‘삐끕(B급) 만화’를 표방한 신작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태블릿으로 하는 창작이 일반화된 시대, 세월과 함께 투박해진 손으로 그리는 만화는 ‘삐끕’이 제격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숨 쉬는 소설
최진영 외 지음·창비교육·1만6000원

[신간]불쉿 잡 外

친환경 가치에 익숙한 세대를 위해 지구와 생명을 테마로 한 단편소설 8편을 엮었다. 작가 최진영, 김기창, 김중혁, 김애란, 임솔아, 이상욱, 조시현, 배명훈이 지구 생태계의 현재와 미래를 그리며 소설을 통해 환경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과학관의 탄생
홍대길 지음·지식의날개·2만2000원

[신간]불쉿 잡 外

인류가 후대를 위해 과학을 축적해온 지식창고인 과학관은 책과 인터넷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과학적 영감과 경험을 제공한다. 책은 스미스소니언, 런던 과학박물관과 같은 과학관이 어떻게 탄생해 발전해왔는지 과학과 인류의 역사를 살펴본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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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