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폴스포츠를 시작했다. 더 이상 헬스장 기부천사가 되지 않겠다며, 선택한 대안 운동인데 주변에선 다들 의아해했다. “유교걸이 무슨 폴댄스냐”고 놀리거나 “페미니스트들이 싫어한다”며 핀잔을 주는 이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폴스포츠를 고난도 근력 운동으로 보기보다는 뉴욕의 축축한 밤거리 스트립 바에서 볼 만한 선정적 댄스로 떠올리는 듯했다.
하기야, 미 로맨스 영화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여남 간 전쟁은 끝났다. 여자들이 운동으로 폴댄스를 시작한 바로 그 순간 남자가 여남 대결에서 이겼다.” 여자들의 폴스포츠는 남성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자발적으로 성적 대상화를 선택한 것과 다름없다고 보는 셈이다.
눈앞에서 처음 폴스포츠 장면을 봤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속옷과 별반 다를 게 없을 만큼 노출이 많은 폴스포츠 의상도 생소했지만, 폴에 거꾸로 매달려 다리를 쭉 찢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민망한 기분도 잠시였다. 폴스포츠는 보면 볼수록 ‘섹시’하다거나 ‘요정’ 같은 느낌보다는 중국 무술에서 나올 만한 강렬한 에너지가 압도했다. 실제로 이 운동은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팔뚝의 전완근과 우리 몸에서 가장 큰 근육으로 알려진 광배근에 힘이 들어가면서 동작마다 박력이 넘친다. 넋을 잃고 한참을 구경하고는 바로 3개월치 수강권을 결제했다.
폴스포츠는 어떤 체형도 차별하지 않았다. 외관상으로 근육이란 걸 찾기 어려운 내 몸도 수업 1회 만에 폴에 매달리는 데 성공했다. 폴스포츠의 기본 원리가 원심력으로 중력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요령을 깨우치면 어떤 체형이든 단단하게 폴에 고정된다고 한다. 맨살의 마찰을 이용하는 운동인 만큼 수강생 전원이 짧은 상·하의를 입는데 그 누구도 폴을 타면서 늘어진 뱃살이나 출렁이는 팔뚝을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솔직히 폴에 허벅지가 쓸리면서 살갗이 벗겨지고 피멍이 드는 고통을 참아내는 것만도 벅찼다.
첫 수업에 땀을 힘껏 빼고 흡족한 기분으로 학원을 나서는데 문 앞에 적힌 ‘남성 출입금지’ 팻말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잠깐이라도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끔 문 앞에 긴 커튼도 드리워져 있었다. 사방을 막아둔 공간은 불특정 다수에게 ‘우리끼리 여기서 운동하는 거예요. 당신 눈에 예뻐 보이려는 게 아니라고요’라고 힘줘 말하고 있었다. 노출이 많은 의상을 편견 없이 보는 사람도 많지 않고, 레깅스 차림만으로도 불법 촬영물의 표적이 되는 흉흉한 세상이라 남자를 막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렇지만 꼭꼭 숨어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게 썩 유쾌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폴스포츠 기원은 인도 전통 운동 말라캄(mallakhamb)이라고 알려졌다. 말라캄은 인도 장미나무 ‘시샴’에 아주까리기름을 발라 만든 2.6m 길이 폴을 이용하는 운동이다. 유튜브에서 ‘말라캄’을 치니 여성보다는 주로 남성들이 팬티 차림으로 폴을 타고 각종 동작을 선보이는 영상이 쏟아졌다. 매년 개최되는 세계폴스포츠대회는 여성·남성뿐 아니라 주니어, 2인 1조 부문 경기도 있어 남녀노소가 어울린다.
<윤지원 경제부 기자 yjw@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