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중은 스포츠의 ‘의미’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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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 기간 우리는 지고서도, 메달을 따지 못했는데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선수들을 접했습니다. 이때 “행복하다”는 속된 말로 ‘정신승리’가 아닌 최선을 다한 이만이 내보일 수 있는 충족감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중은 이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습니다. 국가별 메달 종합 순위를 덜 찾아보게 된 것도 이번 올림픽에서 포착된 사회적 변화입니다. 한국 대표팀은 ‘종합 16위’라는 등수가 아닌 그들이 매순간 보여준 끈질긴 투혼, 집념, 감동적인 서사로 기억됩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이 같은 변화는 스포츠계 성폭력과 학교폭력, 가혹행위 등 온갖 부조리가 수면 위로 끌어올려진 지난 수년간 한국사회가 거친 뼈아픈 ‘반성’의 결과입니다. 엘리트 위주로, 오로지 메달을 위해 선수를 육성해온 그간의 스포츠 시스템이 이러한 부조리를 오래도록 용인해온 주범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시스템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메달의 의미’를 따져묻고,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즐길 줄 아는 대중의 탄생이라고 감히 정의 내려봅니다.

스포츠를 직접 하는 것에 대한 관심까지도 고양된 지금, 이를 어떻게 더 건강한 동력으로 이어갈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입니다. 배구를 배우고 싶어도 같이할 동료, 가르쳐줄 선생님, 네트가 설치된 체육관이 없다면 다시 배구를 ‘보는’ 관중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스포츠 클럽은 학원이나 과외와 비슷한 사교육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스포츠 입문에 장벽이 큰 상황입니다.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의 전환에는 이해관계가 맞물립니다. 현직 엘리트 선수나 지도자로서는 소위 ‘밥줄’을 비롯해 국가를 대표한다는 명예를 일정 부분 내려놔야 합니다. 메달이라는 상징적 목표가 사라졌을 때 훌륭한 스포츠인이 더 많이 탄생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전환을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새로운 스포츠 관행을 시도해보는 자체가 훨씬 중요합니다. 최근 스포츠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모든 국민의 ‘스포츠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시행은 내년 2월부터입니다. 이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지역사회에서 ‘풀뿌리 스포츠’로서의 생활체육이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남은 기간 새 법이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게끔 물을 듬뿍 주는 일만 남았습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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