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 기자인 내가 고고학의 즐거움을 깨달은 계기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신년기획 기사를 준비하면서 미국인 교수와 인터뷰할 일이 있었는데 말하기는 둘째치고 영어 텍스트가 좀체 읽히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토익시험을 준비한 것도 벌써 옛일이었다. 퇴근길 중고책방에서 ‘이 정도는 읽을 수 있겠지’ 하며 집어든 책이 <죽은 시인의 사회> 원서였다.

조문희 기자
책은 “카르페 디엠”이나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 같은 명대사가 나오기도 전에 덮었다. 엉뚱한 밑줄과 손글씨가 많아 책을 넘기기 어려웠다. ‘recitation’이란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암송, 낭독’이라고 적어둔 건 참을 수 있었다. ‘Overstreet’ 위에 쓰인 ‘사람 이름’ 글자도 애교로 넘겼다. ‘shivering’ 아래 ‘시X’부터 웃음이 터졌다. ‘alumni’ 옆엔 ‘아이 러브 니’와 ‘나도’가 서로 다른 글씨체로 적혔다. 연인이 같은 책을 보며 키득댄 기록일까.
얼마 전 합정역 알라딘 중고서점에선 일본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악인>을 들춰봤다. 생명보험회사에 다니던 여성 요시노가 살해당한 원인을 찾는 추리소설이다. 범인은 그와 인터넷에서 만난 남성 유이치로 소설 중반부쯤 빠르게 밝혀진다. 책의 남은 부분은 무엇이 그를 범죄로 이끌었는지 규명하는 데 쓰인다. 제목(‘범인’이 아니고 ‘악인’이다)처럼 ‘누가’보다는 ‘왜’에 집중하는 좋은 책이지만 사진 않았다. 책 첫 페이지에 적힌 글자가 눈에 밟혔다. “전주 시댁에서.” 그는 악인을 찾아냈을까.
박주영 판사의 책 <어떤 양형 이유>도 기억난다. 박 판사는 사려 깊은 판결문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이다. 헌책방에서 구입한 그의 책엔 ‘2464’라는 번호와 ‘김OO’의 이름이 적혔다. 첫 페이지엔 종이가 붙었던 흔적이 남았는데, 이름과 ‘월’, ‘12일’, ‘확인’이라는 글자만 식별이 가능했다. 죄수번호와 개인확인증일까. 수감 중 그는 이 책을 보며 신중한 판결을 기원했을지도 모른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도 중고서점에서 만났다. 첫 페이지를 보니 누군가 선물한 책인 듯했다. 책 제목과 같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 첫 줄에, ‘사랑과 우정을 담아-OOO’가 다음 줄에 쓰였다. 이들의 사랑과 우정은 어디서 엇갈려 중고서점에 왔나.
‘아이 러브 니’를 구사하게 만든 사랑은 지금도 유효할까. 싼값에 산 책 속 낙서에 토라진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흔적이 괜히 반갑다. 누군가의 비밀을 우연히 엿보는 기쁨이랄까. 누구 책인지, 어떤 맥락에서 쓰였는지는 어차피 알 수 없다. 그저 상상해볼 따름이다. 이 낙서는 휴먼드라마나 청춘멜로, 첩보물 같은 극적인 순간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시바타 쇼의 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에서 주인공 세쓰코처럼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 속 장서인의 주인을 찾다가 인생이 뒤바뀐 이도 있을 것이다.
온전히 내 소유라 믿으며 삶의 조각을 기록하지만 지금 내 책꽂이의 책도 어디론가 흘러갈 것임을 안다. 내 초라한 인생도 누군가의 무릎에선 멋지게 완성되기를. 어쩐지 뿌듯한 마음으로 책 속에 또 한편 상념을 적는다.
<조문희 사회부 기자 moon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