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투자계약서 검토를 포함한 스타트업 투자유치 자문 의뢰를 많이 받습니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반기 벤처투자가 3조730억원에 달해 역대 상반기 최대 실적을 달성했습니다. 실제 업계에 있으면서 투자유치 건수가 많아졌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의 지위가 높아져 괜찮은 스타트업은 투자자들이 줄을 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타트업이 좋은 투자자를 골라서 투자를 받고 그 과정에서 몸값도 높아집니다.
원래 40억 밸류로 시작했던 A스타트업은 같은 라운드인데도 클로징 후 계속 투자제안을 받자 밸류를 올려가면서 60억 이상의 밸류로 투자를 받았습니다. B스타트업도 목표금액이 10억인데 계속 투자자가 생기면서 어쩔 수 없이 15억을 받기도 했습니다(B스타트업은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해 현재 수익률만으로도 10배 이상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투자사 간에도 경쟁이 되면서 투자사 역량이 강화되고 무엇보다 스타트업 친화적인 투자문화가 형성되리라 기대됩니다.
예전에는 열심히 투자계약서 검토를 해 보내도 투자사의 피드백은 차갑기 그지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50개 항목을 검토해 보냈는데 50개 모두 거부하면서 우리 투자사는 스타트업이랑 협상하지 않는다, 정해진 양식이라 수정하기 어렵다, 다른 스타트업은 그래도 다 체결했다는 등의 이유로 스타트업의 합리적인 요구를 전혀 수용하지 않는 투자자도 꽤 많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투자유치를 포기한 스타트업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불리한 투자계약서를 체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투자사는 아니어도, 스타트업의 입장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투자계약서 내용을 협상해 수정하는 투자사는 많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낍니다. 투자 전문 변호사로서 어느 때보다 신이 납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열심히 검토해 수정 제안을 한 사항에 대해 진정성 있게 고민하고 가급적 수용하려 하고, 합리적으로 조율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투자사마다, 스타트업마다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투자계약서는 검토하고 협상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대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에는 투자는 무조건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많았다면, 요즘은 굳이 필요 없는 투자는 받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A스타트업은 1000억원 이상의 밸류를 투자 없이 창업자 자본만으로 만들어 엑시트를 논의 중입니다. B스타트업은 사업제휴를 하던 중 대기업으로부터 투자제안을 받았지만 현재 자금이 필요 없고 투자를 받아 지분이 희석되고 각종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싫어 투자를 거부했습니다. C스타트업은 사업제휴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투자를 받을까 고민하다가 투자조건이 스타트업에 유리하지 않다는 이유로 투자를 거부했습니다. 물론 99%의 스타트업은 성장과 생존을 위해 투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투자를 많이 받는 게 좋은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때, 꼭 필요한 범위 내에서, 좋은 투자자에게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강혜미 스타트업·M&A전문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