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생계급여 결정은 올해도 주목받지 못했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제 월급은 4만원이 조금 넘습니다. 최저임금으로 따지면 5시간 만에 벌 수 있는 돈이겠죠. 출근은 8시, 퇴근은 4시에 합니다. 주말과 공휴일에도 근무하는데 오후는 쉽니다. 국제사회 합의를 통해 금지하는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건 결코 아닙니다. 딱딱한 바닥에 온종일 가만히 앉아 시간의 압력을 버텨낼 자신이 없어 자청한 일입니다. 먹고 자는 데 드는 돈이 거의 없어 군것질도 넉넉히 합니다. 제가 맡은 일은 나를 감독하는 직원들의 사무실과 침실 청소입니다. 전부터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이 없으면 하지 못할 일이라는 걸 짐작했지만, 청소노동자를 진정으로 존경하게 됐습니다. 제 업무 강도는 비할 데 없이 낮고 휴게시간은 넉넉한데도 나약한 저는 오로지 일종의 노동계약이 끝나는 날만이 기다려집니다. 이 세계를 떠나는 날이지요.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회원들이 2019년 7월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준 중위소득의 대폭 인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회원들이 2019년 7월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준 중위소득의 대폭 인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2년 최저임금이 9000원 이상으로 오른다는 소식에 조금 기뻤지만 다소 불안했습니다. 노동계가 요구했던 1만원에 미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불안함의 이유는 아닙니다.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갈등에 밀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일이 드물었던 기준 중위소득 결정이 올해마저 참담한 수준에 그칠까 두려웠습니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기초생활급여 액수와 대상자 수를 좌우하는 기준 중위소득을 정하기 위한 회의를 엽니다. 국가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의 생명권과 사회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회의체인데, 노동계와 경영계가 밤샘 논쟁을 불사하며 대립하는 긴장감은 단 하루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위원회의 절대다수가 정부·공공기관 인사로 구성된 데다가 민간위원 중에도 수급권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이는 단 한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행정부가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논의 구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1인 가구의 2021년 기준 중위소득은 약 183만원입니다. 한달 기준이니 주당 40시간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의 월급과 엇비슷합니다. 소득 불평등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가 극심한 상황을 반증하는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준중위소득을 국가공식통계(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관찰되는 중위소득과 차이가 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공표하는 기준 중위소득은 통계청이 발표하는 중위소득보다 낮습니다. 정부는 기준 중위소득의 법적 타당성을 주장하기 어려운 정도로 그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인지했지만, 예산 부담을 이유로 가난한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1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는 약 55만원입니다. 소득, 그리고 소득인정액으로 환산되는 자산이 한푼도 없는 기초생활수급가구여야 온전히 받을 수 있는 금액입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제정 당시부터 천명된 인간답고 문화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삼시 세끼 라면 아닌 끼니를 챙겨먹기도 버거운 돈입니다. 예년보다 높은 규모의 인플레이션은 가난한 사람에게 살인적인 위협입니다. 여태껏 문재인 정부의 생계급여 인상률은 박근혜 정부보다 낮았습니다. 경제대국을 자처하는 국가가 OECD 최고 수준의 상대적 빈곤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에 둔감한 모습은 참으로 서글픕니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감옥’에서 온 편지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