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법원의 선고보다 무서운 형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법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뜻은 법무부의 자식이라고 합니다. 내가 당분간 지내야 하는 세계에서는 위생용품, 의류, 간식 등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모든 수용자에게 배급되는 필수용품이 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습니다. 구매품에 비해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깥세상에서 누렸던 호화스러운 소비 습관을 재현함으로써 지난 삶과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히고픈 욕심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라면 사먹을 영치금도 없는 법자의 몫으로 남겨두자는 말은 선의보다는 조롱에 가깝습니다. 돈을 부쳐줄 가족이 없으면 누구도 자립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관계가 단절돼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이를 겨냥한 ‘자식’이라는 은유는 몹시 차별적입니다. 그나마 속옷까지 사제 명품으로 들여오던 시절에 비해 나아진 건 있답니다. 적어도 겉모습만으로는 한사람이 짊어진 가난을 식별할 수 없도록 대부분의 물품을 반입하지 못하도록 한 점입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나처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불구속 재판을 받았던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법원이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을 구속하는 사유는 대개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을 경우입니다. 그런데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사람은 두가지 우려가 없어도 재판부가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습니다. 보증금이 낮거나 월세만 납부하거나 계약기간이 짧아 비교적 이주하기 쉬운 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은 주거형태만으로 구속될 위험이 있는 겁니다. 법원에 일정한 주거를 갖추도록 요구하는 배경에는 수사·재판 과정에 성실히 임한 것과 관련 내용을 고지한 서류를 적시에 수신할 것이 포함됩니다. 통신기술이 충분히 발달한 시대인 요즘, 집에 사람이 없으면 반송되는 사법당국발 등기우편을 제때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치르는 사람은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형량을 선고하는 판사는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의 판단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형을 선택하는 변호인이 적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사건을 맡은 국선 변호인은 교통편이 불편한 교정시설을 찾아 재판을 준비하기보다 재판부에 제출할 반성문 첨삭에 공을 들입니다.

더 큰 문제는 가난한 사람이 형기를 마친 이후에 겪는 어려움입니다. 구속은 개인이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기존 주거를 정리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사회로 복귀할 시점에 자리 잡을 집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며칠간 수감을 대비할 수 있었고, 가족과 지인의 도움을 받았던 나조차 주어진 기간 안에 보증금을 돌려받고 안전하게 짐을 빼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3개월치 월세가 연체되면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현행법 하에서 주거안정성이 취약한 사람은 구속되는 순간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을 맞습니다. 이것은 분명 법원이 선고하지 않았고, 선고할 수 없는 형벌입니다. 돌아갈 집도, 가족도 없는 사람은 가석방 심사에서조차 다른 수용자보다 불리한 처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이 빈곤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다시 범죄에 연루됩니다. 범죄와 빈곤의 회전문에 갇힌 사람을 반복해 단죄하는 것으로는 무엇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감옥’에서 온 편지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