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주마 전 대통령 구속으로 촉발… 근본적 원인은 생활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폭동의 시작점은 7월 12일(현지시간)로, 시민들은 제이콥 주마 전 대통령의 체포에 반대하기 위해 시위를 열었다. 시위는 폭동으로 이어졌고, 동부 콰줄루나탈주에서 시작돼 요하네스버그, 케이프타운까지 번졌다. 이번 사태로 최소 2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 원인은 대부분 폭동 가담 인파에 의한 압사다. 2500명 이상은 절도 및 공공기물 파손으로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 영국 경제 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은 이번 사건으로 100억랜드(7897억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폭동이 일어난 지 3일째인 7월 14일(현지시간) 남아공 동남부 항구도시 더반에 있는 공장이 불에 타며 연기를 내뿜고 있다. 공장 앞에는 사람들이 약탈한 물건을 빼간 후 남은 종이상자들이 버려져 있다./더반|AP연합뉴스
폭동이 휩쓸고 간 거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여느 재난영화의 장면과 비슷했다. 상점들의 유리창은 깨졌고, 일부 건물들은 불에 타며 시꺼먼 연기를 내뿜었다. 은행, 미용실, 마트 등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은 쇼핑몰과 공장에 쌓여 있던 물건들을 약탈했다.
이번 사태로 현지 한인 교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남아공에서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손춘권 남아공 한인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폭동이 일부 지역에서 산발적으로는 일어났어도 이렇게 전역에서 일어난 것은 처음”이라며 “폭동이 시작된 직후 주 남아공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외부 출입을 삼가라는 공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폭동이 초기에 일어난 요하네스버그에 살고 있다.
한인 기업들도 피해를 봤다. 동남부 콰줄루나탈주의 항구도시 더반에 있는 LG TV, 모니터링 생산공장의 설비들과 물류창고는 모두 불에 탔다. 같은 지역에 있는 삼성전자 물류창고도 약탈 피해를 입었다.
쿰부조 은차베니 대통령실 장관 대행은 7월 15일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됐다고 밝혔다. 남아공 당국은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약 2만5000명의 군 병력을 투입했으며, 군인들을 이송하기 위해 버스와 트럭은 물론 비행기와 헬리콥터까지 동원했다. 시민들에게는 야간통행 금지령을 내렸다.
주마 전 대통령이 누구길래
주마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으로 2018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고위 공직자 수사처인 반부패 조사위원회의 수사 대상이 된 인물이다. 그는 반부패 조사위원회로부터 부통령과 대통령 재임 당시 프랑스 거대 방산업체 탈레스로부터 수억원대의 뇌물을 받고 무기를 사들인 혐의, 인도계 유력 재벌가 굽타와 결탁해 내각 장관과 국영기업 이사장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 등 16개 혐의를 받고 있다.
소싯적 흑인 인권 운동가였던 주마 전 대통령은 권력을 잡은 뒤 부정부패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999년 부통령으로 당선됐고, 10년 뒤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반부패 조사위원회에서 받고 있는 혐의 외에도 2014년 사저 개보수에 세금 2억1590만랜드(당시 물가로 약 166억원)를 사용한 혐의가 인정돼 781만랜드를 국가에 반환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외에도 성폭행, 돈세탁, 사기 등 780건이 넘는 혐의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주마 전 대통령의 흑인 인권운동 업적을 앞세우며 그를 비호하고 있다. 주마 전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를 없애기 위해 노력해온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백인의 흑인 차별정책에 반대하며 세워진 단체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공식 정당으로 인정되기 전부터 이곳에 소속돼 활동했다. 주마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9번의 탄핵 시도가 일어났음에도 현재 의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 ANC의 지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7월 14일(현지시간) 보슬루어루스 지역의 한 쇼핑몰에서 남아공 사람들이 물건을 약탈해가고 있다./보슬루어루스|AFP연합뉴스
남아공 사법당국은 그가 하야한 이후 수사 압박 강도를 높여왔다. 주마 전 대통령도 반부패 조사위원회의 수사를 받지 않겠다며 버티자 결국 남아공 헌법재판소는 6월 반부패 조사위원회의 출석 요구를 거부한 혐의로 그에게 15개월 징역형을 선고했다. 주마 전 대통령은 실형 선고 후에도 구금을 거부하다가 강제 체포 시한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자발적으로 에스트코트 교정시설로 향했다. 이후 남아공 부족인 줄루족을 중심으로 한 그의 지지자들은 주마 전 대통령에 대한 실형 선고가 “정치적 음해”라며 구금 반대 시위를 열었다. 실형 선고 이후 주마 전 대통령이 콰줄루나탈주 은칸들라 자택에 머물러 있을 당시에도 그의 지지자들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람들이 화난 ‘진짜’ 이유
하지만 주마 전 대통령 단 한사람 때문에 사람들이 밖에 나와 방화와 약탈을 일삼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회과학 전문가들은 폭동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남아공 서민들의 생활고가 있다고 말한다. 설상가상 지난해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일자리가 대거 사라졌다. 남아공 정부는 올해 1분기 실업률을 32.6%로 집계했다. 이중 35세 미만 실업률은 64%였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남아공 인구의 55.5%가 한달에 992랜드(약 7만7700원) 이하 생활비로 살아간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난한 남아공 사람들은 폭동을 통해 자신의 분노를 표현했다.
남아공의 경제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최근 코로나19 델타 변이바이러스가 확산하며 3차 대유행이 불어닥쳤기 때문이다. 7월 들어 일일 코로나19 확진자는 2만명대를 기록했고, 누적 사망자는 6만7000명을 넘었다.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7월 11일 4단계 봉쇄령을 2주간 추가 연장했다. 이번 시위와 폭동으로 의료기관이 문을 닫으며 백신 접종이 멈추고, 시위와 폭동에 가담한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탓에 코로나19 확산 위험성은 더욱 높아졌다.
폭동 사태는 남아공만의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정권에 대한 저항 시위에서 시작돼 생활고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폭동이 일어나는 사례가 자주 발견된다. 시골 인구 중 하루 1.9달러(약 2000원) 미만으로 생활하는 빈곤층이 58.9%에 달하는 에스와티니에서는 지난 6월 국왕 음스와티 3세의 독단적 총리 지명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이는 폭동과 약탈로 번졌다. 지난해 11월 우간다에서는 래퍼이자 유력한 야당 대선후보인 보비 와인을 코로나19 방역 규칙 위반으로 체포한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을 규탄하며 시위와 함께 폭동이 일어났다.
불평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이상 폭동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음체비시 은들티아나 요하네스버그대 정치학 교수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에 남겨진 커뮤니티가 제도에 분노를 느꼈고, 감정을 분출했다”며 “이러한 분노는 수십년 동안 표면 아래에서 들끓어 왔고, 우리는 현재 가난한 사람들이 일으키는 혁명을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윤기은 국제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