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아시아 슈가킹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진화한 쿠옥그룹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2009년부터 ‘포춘’지에서 선정한 글로벌 500 기업리스트에 꾸준히 이름을 올린 싱가포르 기업이 있다. 바로 윌마 인터내셔널이다. 한국에서는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아니면 생소한 이름이지만 싱가포르 시가총액 상위 10위 안에 드는 가장 큰 제조업체다. 그렇다면 샹그릴라 호텔은 어떤가. 한 번쯤 지나쳤거나 이용해봤을 수도 있는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브랜드이다. 세계 최대 팜오일 생산업체 가운데 하나인 윌마 인터내셔널과 호텔 체인 샹그릴라, 홍콩 부동산 케리그룹(Kerry Group) 등은 모두 쿠옥그룹(Kuok Group)의 지붕 아래에 있다. 글로벌 아시아 갑부 순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로버트 쿠옥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홍콩을 넘나들며 이룩한 제국이 바로 쿠옥그룹이다.

2020년 10월 중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이하이 케리 아라와나 홀딩스(Yihai Kerry Arawana Holdings·진룽위) / 고영경 제공

2020년 10월 중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이하이 케리 아라와나 홀딩스(Yihai Kerry Arawana Holdings·진룽위) / 고영경 제공

쿠옥그룹의 사업 다각화

동남아의 많은 민간기업의 시작이 그러하듯 쿠옥그룹 역시 중국에서 건너온 화교에 의해 시작됐다. 20세기 초반 중국 푸젠성에서 말레이시아로 건너온 쿠옥 가족의 막내아들 로버트는 일본이 동남아를 식민지배하던 시절 미쓰비시 산하 쌀 무역을 담당하는 부서 사원으로 일했다. 전쟁이 끝난 뒤 1949년 로버트는 두 동생과 함께 싱가포르 건너편 조호르바루에서 ‘쿠옥 브라더스’를 차리고 쌀과 설탕, 밀가루 무역에 직접 뛰어들었다. 그의 나이 겨우 26세였다. 이전 회사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으로 사업을 빠르게 성장시켰던 쿠옥 형제는 1953년 싱가포르에 사무실을 열었고, 이어서 태국과 인도네시아에도 진출했다.

로버트 쿠옥은 무역에 그치지 않고 설탕 생산에 눈을 돌렸다. 설탕이 중요한 상품이 되리라는 판단에 따라 1961년 일본 파트너사들과 함께 공장을 설립해 직접 생산에 나섰다.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말레이시아 설탕 시장의 80%를 장악했으며, 전 세계 설탕 생산의 10%를 차지하면서 아시아의 슈가킹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이후 FFM(Federal Flour Mills)과 PPB(Perlis Plantations Berhad)를 설립하고 제분업과 대규모 농업투자에도 적극 나섰다. 당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동남아 경제의 중심지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쿠옥 형제는 사업기회가 있는 곳마다 손을 댔다. 농장부터 사료까지 수직계열화를 하고 호텔사업과 부동산 개발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럭셔리 호텔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샹그릴라 호텔은 1971년 싱가포르에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싱가포르에서는 최초의 5성급 디럭스 호텔이었다. 최고급 호텔 체인 가운데 아시아에서 시작해 글로벌 명성을 얻은 호텔은 홍콩의 페닌슐라와 만다린 오리엔탈이 있지만, 전 세계 76개 지역에 100여개 호텔을 보유하고 있는 샹그릴라가 글로벌 네트워크에서는 앞서 있다.

쿠옥그룹이 소유한 럭셔리 호텔 브랜드 샹그릴라 호텔

쿠옥그룹이 소유한 럭셔리 호텔 브랜드 샹그릴라 호텔

쿠옥그룹은 1974년 홍콩에까지 손을 뻗어 케리 홀딩스를 설립했다. 홍콩 진출은 쿠옥그룹의 성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케리 홀딩스를 통한 중국 본토 진출로 쿠옥그룹은 최초의 외국인 투자자 가운데 하나가 됐기 때문이다. 1988년 홍콩 COFCO와 손잡고 선전에 중국 최초의 현대식 식용유 공장을 짓고 아라와나 오일을 시장에 출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로써 쿠옥그룹이 중국에서 계속 식용 정제유와 유지 제조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발판이 됐고, 그 결실은 2020년 10월 이하이 케리 아라와나 홀딩스(Yihai Kerry Arawana Holdings·진룽위)의 중국 주식시장 상장으로 돌아왔다.

다른 계열사보다는 훨씬 늦은 1991년 시작된 윌마 인터내셔널은 무역회사로 출발했다. 트레이딩에서 팜 농장과 오일 생산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해 지속적으로 생산시설을 증가시켰다. 그리고 2007년 윌마 인터내셔널과 쿠옥그룹의 오일 부분이 합병됐다. 합병을 통해 탄생한 기업은 동말레이시아에만 6만3000㏊, 인도네시아에 7만6000㏊의 팜오일 농장을 가진 거대 기업으로 태어났다. 기업의 시가총액은 203억싱가포르달러에 달했다.

오늘날 윌마 인터내셔널은 세계 최대의 팜오일 농장 소유기업 중의 하나이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과 미국을 넘나드는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했다. 윌마 인터내셔널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거대한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농작물을 키우는 것부터 관련 상품생산까지 자체적으로 수행하고, 더 나아가 물류까지 확장하면서 스스로 가치 사슬을 만들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빠른 시일 내에 성공적으로 구축했기 때문이다.

쿠옥그룹의 성공 요인

흔히 동남아 경제는 화교가 장악하고 있으며, 이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는지만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부를 축적한 원동력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로버트 쿠옥은 항상 그런 관심을 받아온 대표적인 사업가이며, 싱가포르 총리를 지낸 리콴유, 그리고 말레이시아 총리였던 압둘 라자크 후세인이나 마하티르와도 친분이 깊은 사람이다. 중국에 투자한 1세대 화교 사업가로 중국 정치지도자들과도 매우 가까운 관계이다. 그가 래플스 학교에 다닐 때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바로 리콴유이고, 아시아 슈가킹으로 동남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업가였기 때문이다.

쿠옥그룹이 소유한 세계 최대 팜오일 생산업체 윌마 인터내셔널 제품을 소비자가 고르고 있다. / 고영경 제공

쿠옥그룹이 소유한 세계 최대 팜오일 생산업체 윌마 인터내셔널 제품을 소비자가 고르고 있다. / 고영경 제공

그러나 화교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위 ‘꽌시(關係)’를 바탕으로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지양해야 한다. 과거 기업의 초기 성장단계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중요하게 작용했겠지만, 규모가 커진 이후에는 사업기회를 발굴하고 투자해 성과를 거두었기에 지금의 쿠옥그룹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2020년부터 계속된 팬데믹으로 호텔 사업은 어려워졌지만, 식품 관련 상품들 수요가 폭증하면서 PPB 그룹의 이익이 두 배 늘었다. 윌마 인터내셔널의 매출과 순이익도 크게 증가했다. 글로벌 무역의 증가와 이커머스의 폭발로 케리 로지스틱스와 해상운송 사업도 날개를 달았다.

사람이 사는 동안 먹고 마시는 일은 중단될 수 없고, 글로벌 상품의 이동도 줄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면 모두 여행을 떠나 아름다운 리조트를 또 찾게 될 것이다. 쿠옥그룹의 미래가 어두워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아세안 성장 가도에서 이 기업들이 어디로 어떻게 진격할지 주시해도 좋다.

<고영경 선웨이대 비즈니스스쿨 선임연구원>

아세안 기업열전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