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접하는 아랍 종주국의 현실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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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는 모순적인 국가다. 중동에서의 비중, 산유국으로서의 위상, 외환보유고와 군사비 지출에선 주요하게 꼽히지만 시대착오적 전제군주정과 종교경찰, 성차별, 낙후된 인권,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으로 비판을 받는다. ‘부유한 개발도상국’이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인 <사막의 여섯 창문>은 이러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문제를 소개하고 미약하게나마 개혁의 희망을 담은 단편영화 옴니버스 시리즈다.

<사막의 여섯 창문> 포스터 / 넷플릭스

<사막의 여섯 창문> 포스터 / 넷플릭스

해당 시리즈는 총 6편, 10~36분 분량의 단편 조합이다. 작품 대부분은 블랙 코미디 형식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내 영화 산업이나 창작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영화라기보단 텔레비전 드라마나 시트콤을 연상케 한다. 여기서 이 나라의 문화정책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2018년에야 영화관 영업이 가능해졌고, 여전히 보수종파에서는 음악조차 금지하자고 한다. 전제왕정을 비판하면 어찌될지 불을 보듯 뻔하다. 영화로 직설적 체제비판을 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창작자로선 검열과의 줄타기를 위해 풍자극 형태를 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할 테다.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수미야티가 지옥에 갈까요?>다. 노동력의 8할을 차지하면서도 노예 수준으로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뤘다. 주인집 여자아이의 시선으로 가사노동자의 처지를 조명하는 ‘동심파괴’ 동화다. 아이의 눈에 가정부 수미야티는 자신이 상자에 가둬놓고 키우던 파란색 칠한 병아리와 똑같은 처지다. 아이의 가족은 끊임없이 그를 부려먹고 학대하면서도 트집 잡기에 바쁘다. 그런 수미야티가 무슬림이 아니기 때문에 불신자라 지옥에 떨어지고 자신들은 천국에 간다고 강변하는 가족은 그게 이치에 맞는지 의문을 품은 소녀의 물음에 누구도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아이의 시선을 빌려 외국인 노동자 차별을 고발하는, 전달력 강한 에피소드다.

<커튼 사이로>는 시리즈 중 드물게 직설적인 작품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인권과 성차별 폐단을 정면으로 고발한다. 간호사로 일하는 주인공은 질식할 것 같은 일상을 견디는 중이다. 겉으론 근엄한 척 신을 들먹이고 정절을 강조하는 남자들은 틈만 나면 성희롱을 일삼고 진상을 부리지만 책임은 여성에게만 전가된다. 숨 돌리기 위해 피신한 옥상조차 피난처가 되지 못하는 가운데 그는 버텨야 한다.

영화만 놓고 보면 시리즈를 구성하는 단편들은 작품 간 편차도 크고 몇 작품은 한정된 분량에 많은 걸 집어넣으려는 한계도 뚜렷하다. 하지만 악조건 속에도 변화를 모색하는 이들의 영화적 발언은 경청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 나라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도 ‘잰 척하지만 실제로 지역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나라로 뒤에선 조롱의 대상이라 한다. 한국이 유엔무역개발회의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했다는 소식이 한동안 언론을 장식했다. 단순 소득이나 경제 규모를 넘어 국가역량과 영향력을 감안한 지위인 만큼 반면교사로 삼아 내실을 다지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역할을 고민할 때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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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역경루
오늘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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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찬은 중국 후한 말 북방민족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화북의 군벌이다. 오늘날 베이징 근처 유주를 근거지로 세력을 키웠던 공손찬은 백마의종이라는 막강한 기병대를 중심으로 황건적과 만리장성 넘어 이민족들을 토벌하며 군세를 넓혀갔다.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갖췄으나 성품이 포악했던 공손찬은 폭정을 일삼으며 민심을 크게 잃는다. 왕찬이 기록한 <한말영웅기(漢末英雄記)>에 의하면 공손찬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가 하면 유능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점쟁이를 측근에 등용하는 등 막장 행각을 벌였다. 하루는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 높았던 관리 유우를 저자에 세워놓고 ‘네가 천자가 될 인물이라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뒤 비가 내리지 않자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분개한 수만의 유주 백성들은 유우의 아들과 합세해 공손찬을 공격했고, 라이벌 원소와 이민족들까지 연합해 공격하니 공손찬은 고립무원에 처한다. 사방이 포위된 공손찬은 기주 역현에 거대한 요새를 짓고 농성에 들어가니 이 요새가 역경성이다. 자신의 남은 전력을 요새 건설에 쏟아부은 공손찬은 “300만석의 양곡을 다 먹고 나면 천하정세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향락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