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운송기사들의 하루 동행… 닭 살리려 ‘쪽잠’만 자기도
4.5t 화물차에 달린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에서 빨간불이 깜빡였다. “농장에 도착했으니 방문 시에는 소독하시기 바랍니다.” GPS에선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경기도의 한 농장에 가까워지자 GPS가 운전자에게 알린 ‘경고’였다. 축산운송기사들은 모두 차에 전용 GPS를 달아야 한다.
지난 6월 17일 오전 6시 30분. 이성민씨(46·가명)는 핸들을 좌우로 쉴 새 없이 돌렸다. “돼지농장은 내비(게이션)에도 없는 곳이 많아요. 포털사이트에서 로드뷰까지 보고, 애매하면 농장에 미리 전화해 길도 묻고 와요.” 미로 같은 길이지만 내비게이션은 켜지 않았다. 두달에 한 번은 오는 돼지농장이라 길이 눈에 익었다. 입구에 하나, 언덕에 좌우로 2개의 농장이 보였다. ‘꺼억꺼억’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씨는 이날 돼지 70마리를 실어 도축장으로 운반하는 일을 맡았다. 그는 일명 ‘돼지차’ 운송기사다.
다음날 밤 12시 7분. 박준형씨(48·가명)가 모는 4.5t 화물차가 경기도의 한 돼지국밥집 앞 공터에 도착했다. 계사 앞은 공간이 좁아 화물차를 댈 수 없다. 골프장과 관광용 양떼목장을 지나 공터의 컨테이너 앞 계측기에서 차 무게를 재고 왔다. “닭을 태우기 전에 차 무게를 달아보는 거예요. 닭을 다 싣고 나오면서 한 번 더 재요. 무게 차이가 닭 무게예요.” 닭을 가득 실은 4.5t 화물차 1대가 비좁은 언덕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박씨가 시동을 걸었다. 화물차에 닭 3000마리를 실을 차례였다.
가축 운송은 도축 과정의 일부분이다. 축산운송기사는 농장이나 사육장에서 도축장으로 소, 돼지, 닭을 실어나른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고시인 ‘동물운송 세부규정’을 보면 ‘차량을 이용해 국내에서 동물을 이동시키는 것’, ‘동물의 상차, 운전, 휴식 및 하차 등 출발에서 도착까지 작업 과정’이 모두 가축 운송에 포함된다. 정부 인증을 받는 동물복지도축장에서는 무진동 차량으로 가축을 운송하도록 규정할 만큼 운송은 도축 과정의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닭과 돼지를 매일같이 소비하지만, 식탁까지 운송되는 과정은 잘 모른다. 축산운송기사들은 주로 새벽이나 한밤중에 돼지·닭을 싣고 이동해 눈에 띄지 않는다. 도축장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축산운송 차량에서 나오는 분뇨가 마을을 더럽게 한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축산운송기사들은 어떤 고충이 있을까. 돼지차를 모는 이성민씨, 닭차를 모는 박준형씨의 하루를 동행했다.
돼지가 편해야 일도 편하다
“‘돼지차’한테는 ‘돼지차’ 길이 따로 있어요.” 이씨가 핸들을 꺾으며 말했다. “급정거하면 돼지가 압사할 수도 있고, 그래서 신호등이 많은 길은 되도록 피해요.” 일의 핵심은 가축의 ‘안전한 운송’이다. 온도 변화, 익숙지 않은 소음과 냄새, 고밀도 등은 가축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육고기의 상품가치도 떨어진다.
이씨는 ‘돼지차’를 운전한 지 꼬박 10년이 됐다. 주 5일, 보통 하루에 ‘농장→도축장’ 코스를 2번 반복한다. 오전 5시쯤 일을 나간다. 차에 ‘내렸다, 탔다’ 하는 동작을 가장 많이 반복한다. 지난 6월 17일 오전 6시 35분. 이씨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쓰인 돼지농장 문을 차에서 내려 열었다. 다시 차에 올라타 농장으로 진입했다.
“여기 쎄(세) 개, 쎄(세) 개.”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2명이 입구 쪽 농장을 가리켰다. ‘농장’이라 불리지만 벽돌 건물에 가까운 곳에서 돼지 3마리가 나왔다. “야~ 야~”, “가자 가자” 돼지를 농장에서 빼내 차에 태우는 출하·상차작업이 시작됐다. 이씨도 방진복을 입고 차에서 내려 파란색 판자를 집어들었다. 돼지 이동보조기구인 ‘몰이판’이었다. “워워이~ 워워이~” 돼지 엉덩이를 살살 쳐가며 상차를 유도했다.
이씨는 “돼지차는 대부분 운전기사가 상차와 하차를 직접 해요”라고 말했다. 농장이나 도축장의 작업매뉴얼을 보면 운송기사는 상·하차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가축 전염병 예방 차원에서다. 외부와 접촉점이 많을수록 전염병 전파 확률은 커진다. 운송기사들이 1년에 한 번 듣는 정기교육에서도 ‘출하기사는 하차하지 않는다. 농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현실은 다르다. “농장이나 도축장 입장에선 기사가 해주는 게 일도 수월하고 빠르니까요.” 이씨가 차에 다시 올라타며 말했다.
돼지들이 하나둘 농장에서 나왔다. ‘돼지차’까지 10m 남짓한 거리를 왔다갔다 했다. 살짝 가랑비가 내려 돼지들이 간혹 발을 헛디디기도 했다. 전부 70마리를 태우는 데 40분이 걸렸다. 돼지가 차에 타자 차가 좌우·앞뒤로 덜컹거렸다. 합이 1만8700㎏이었다. “오늘은 좀 걸렸네요. 그래도 여유 있게 태웠어요” 이씨의 ‘돼지차’에는 ‘80’이 쓰인 종이가 놓여 있다. 동물운송규정 제9조에 규정된 차량 면적당 적정 마릿수다. 한여름에는 더위 때문에 80%만 태워야 한다고도 쓰여 있다. 운임은 거리와 두수를 기준으로 정해져 있지만, 무조건 많이 싣는다고 이득인 것은 아니다. “돼지를 많이 태우면 기사도 피곤해요.” 이씨가 서류를 챙기며 말했다. “혹시나 돼지가 다치진 않을까, 운전도 더 신경 쓰이고요. 돼지가 편한 게 사실 운송기사한테도 편해요. 돼지가 죽으면 운송기사에게 책임을 묻기도 하거든요.”
도축장에 가기 전 써야 할 서류도 많았다. 출하 승인서, 절식 확인서, 소독필증을 챙겨 도축장에 내야 한다. 축산물 위생관리법 시행규칙상 가축은 12시간 전부터 물을 제외하고는 절식을 해야 한다. 가축의 멀미, 구토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이뤄진다. 이씨는 “저렇게 똥을 싸는데 절식은 무슨… 농장에서는 사실 잘 안 지켜요. 먹이면 무게가 더 나가니까요”라고 말했다. 도축장까지 운송하고 나면 ‘돼지차’에는 분뇨가 잔뜩 깔린다.
이날 오전 8시 7분. GPS가 “도축장에 도착했으니 방문 시에는 소독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알렸다. 거리가 멀면 돼지도,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차로 1시간이면 그래도 적당한 거리”라고 했다. 도축장 한켠에는 돼지 사체 8구가 포개져 있었다. “아마 병든 돼지들일 텐데, 저걸 저렇게….” 이씨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돼지 하차 작업도 도왔다. 도축장에서 온 직원들은 전기충격기를 돼지 엉덩이에 대고 하차를 유도하기도 했다. ‘동물운송 세부규정’에는 전기충격기는 사람에게 위해가 될 때만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차는 10분 만에 끝났다. 상차보다 30분 빨랐다. 동물에게 고통을 주면 안 된다는 ‘윤리’와 일을 빨리 끝내야 하는 ‘현실’의 충돌이었다.
닭차는 깊은 밤에만 움직여
박씨는 교통안전공단이 내준 화물운송종사자 자격증 소지자다. 18년된 4.5t 화물차인 ‘닭차’를 몬다. 살아 있는 닭을 옮겨 ‘생계차’라고도 불린다. 외관은 부식됐고, 실내에는 닭 냄새가 희미하게 배 있다. “생각보다 고장도 잘 안 나고, 바꾸려면 돈도 한두푼이 아니고….” 박씨가 공장에 설치된 소독시설을 지나며 말했다. 지난 6월 18일 밤 10시 45분. 박씨는 경기도의 한 닭 농장을 향해 출발했다. ‘닭차’는 깊은 밤에 움직인다. “우리가 밤에 떠와야지 공장에서 (오전) 7시 30분부터 일을 해요.” 밤 운전을 많이 한 탓에, 양쪽 눈 모두 ‘1.5’였던 시력이 떨어져 이제는 안경을 써야 한다.
이날 계사는 공장에서 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었다. 공장-계사 사이는 가깝게 30~40분, 멀게는 3시간까지도 떨어져 있다. 멀 때는 ‘한탕’, 가까운 거리는 하루에 ‘두탕’을 뛴다. 운행 중에는 종종 동료들과 통화한다. 졸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언젠가는 새벽에 공터에 차를 대고 10분쯤 깜빡 졸았는데, 그 사이 동이 텄어요. 옆에 보니 무덤이 잔뜩 있더라고요.” 운행을 멈추고도 ‘쪽잠’만 가능하다. 겨울에는 양옆으로 ‘갑바(천막)’를 치지만 닭이 얼어죽고, 여름에는 운행을 멈추면 바람도 함께 멎어 닭이 쪄죽는다.
조심스레 태우고 도계장까지 이동해도 닭은 ‘죽기 전에’ 죽는다. 운송 중에 평균 0.5%가량 죽는다. 틈새에 끼어서, 원래 아파서, 추워서, 더워서 죽는다. “닭 상태가 안 좋으면 폐사율이 2~3%대까지 올라가요. 경기도에서 전라도, 경상도까지 가면 사람도 힘든데, 닭은 오죽하겠어요” 날을 넘긴 6월 19일 밤 1시 9분. 박씨가 농장에 진입하며 말했다. 이날 계사는 ‘닭똥’ 냄새가 심하지 않았다. “여기는 관리를 잘해 그래요. 설사하고 그러면 냄새가 저 밖에서도 나요. 설사가 많으면 바퀴가 헛돌면서 계사 안을 못 빠져나오기도 해요.”
화물차는 계사 안으로 후진해 들어갔다. 화물차에 설치된 어리장(조류 이동장)에 닭을 싣는 상차가 바로 시작됐다. 작업하는 이들은 모두 이주노동자였다. 쪼그려 앉아 닭의 다리를 움켜잡았다. 양손에 여섯마리가 들렸다. 여섯마리는 동시에 어리장에 던져졌다. “아! 힘들어”, “오라이~ 오라이~”, “더워!” 소리가 겹쳐 들렸다. 몇몇은 중간중간 콜라를 마셨다. 계사 안은 플래시 하나만 켜놨다. 빛이 있으면 닭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3000마리 싣는 데 30분 걸렸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 공장에 차만 주차하면 일은 마무리된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박씨는 상차작업을 직접 했다. “샤워실이 없어서 제대로 씻지 못하고 온 적도 있었고, 상차작업을 하면 피곤해 졸음운전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박씨의 동료 정민준씨(48·가명)가 말했다. “예전에는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계사도 많았어요. 입구가 좁아 차가 들어갈 수 없었죠. 비닐하우스 밖에 차를 대놓고, 일일이 손으로 닭을 나르곤 했어요.” 지금도 일부 ‘닭차’ 운송기사들은 상차작업을 직접 한다.
계열화와 외주화도 부담
‘돼지차’와 ‘닭차’ 운송기사의 공통적인 고충은 무엇일까. 이들에게 소독은 일상이자 시간과 돈(기름값)이 들어가는 절차다. 축산운송기사는 가축을 실은 차량은 농장을 오갈 때 거점소독소에 들러 소독을 해야 한다. 도축장에도 자체적으로 소독시설이 마련돼 있다. 전염병 예방을 위한 조치다. 지난 5월 31일 기준으로 전국에 거점소독소는 180개다.
이씨는 “거점소독소의 위치가 문제”라고 했다. 하루에 농장 두곳을 방문한다고 가정하면, 축산운송기사는 거점소독소→농장①→도축장①→거점소독소→농장②→도축장② 순서로 이동한다. “거점소독소가 도축장이나 농장과 동떨어지는 곳에 있으면, 5분 거리를 30~40분씩 돌아가야 해요” 이씨가 말했다. “기름값만 얼마예요. 잦은 소독으로 사실 차량 부식도 빨리 오거든요. 정작 나라에선 방역수칙을 안 지켰을 때 패널티만 잔뜩 부여하고, 빙 돌아갈 때 드는 기름값과 시간은 신경도 안 쓰죠”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에 협조하는 자영업자 손실보상에 인색한 현실과도 유사하다.
축산업계에서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계열화’와 ‘외주화’도 부담이다. 축산 계열화는 가축의 사육, 축산물의 생산이나 도축과 가공·유통을 통합해 경영하는 형태다. 계열화된 축산업체와 계약한 농장과 일을 하면 축산운송기사들은 일감을 보장받는다. 반면 수입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1 대 1로 농장과 거래하는 형태가 아니라 기업이 중간에서 추가로 이익을 남겨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가끔 계열화된 농장에서 ‘알바’를 해보면 직접 농장과 거래하는 것보다 20% 정도 적은 일당을 받았어요”라고 했다. 축산운송기사는 대부분 개인사업자로, 한 달에 300만원 정도 손에 쥔다. 기름값이라도 오르면 소득이 준다.
‘닭차’ 운송기사들은 대부분 닭 가공업체와 계약을 맺는다. 닭 업계는 이미 90% 이상 계열화가 됐다. 몇몇 업체는 계열화에 이어 ‘외주화’까지 시도한다. 물류회사라는 이름으로 용역업체를 껴 ‘닭차’ 운송기사들과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물류회사는 운송기사들에게 매달 수수료와 어리장 임대 비용을 떼간다. 20만원이 넘는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운임을 줄일지 모른다. “날강도죠, 뭐” ‘닭차’ 운송기사 박씨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기사들끼리 뭉치든, 무엇을 해서든 먹고살 궁리는 할 겁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