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냄새 맡은 소들은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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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축장 앞 비질 르포… 돼지 비명 듣는 게 가장 힘들어

고기가 되기 전의 동물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4월 23일과 6월 25일, 경기도 한 도축장 앞을 찾았다. 도축장 앞은 고기가 되기 전의 동물이 딱 한 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다. 우리는 농장이 어디에 있는지, 동물들이 어떻게 도축장으로 가는지, 도축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한 돼지가 비질 참가자가 주는 물을 받아 마시고 있다. / 박상환 프리랜서 사진가 제공

한 돼지가 비질 참가자가 주는 물을 받아 마시고 있다. / 박상환 프리랜서 사진가 제공

도축장 앞에서는 ‘비질(vigil)’이 열리고 있었다. 비질은 폭력의 증인이 돼 기억·기록·공유하는 활동을 이르는 말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시작돼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열린다. 한국에서는 2019년 4월부터 비질이 열리고 있다.

오전 9시 40분, 대형트럭 2대가 도축장 쪽으로 들어왔다. 차 앞 유리에 ‘축산물시설출입차량’이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트럭 안에는 돼지들이 가득했다. 보통 한 트럭당 50마리에서 80마리 정도가 실린다고 했다. 트럭 가까이 가자 열기가 느껴졌다.

돼지 냄새 지독하고 눈은 빨갛게 충혈

한눈에 봐도 돼지들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몸과 얼굴에 오물이 묻어 있어 냄새가 지독했고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고기가 될 돼지의 눈병을 치료해주는 농장주는 없다. 멀미 때문에 입가에 하얀 거품이 묻어 있는 돼지도 있었다.

“이 정도면 상태 괜찮은 애들이야.” 운송 기사가 말했다. 농장과 운송 밀집도에 따라 돼지들의 상태에 차이가 난다고 했다. 실제 어떤 트럭의 돼지들은 비교적 깨끗하고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반면 어떤 트럭의 돼지들은 심하게 사람을 경계했다. 줄로 그은 것 같은 빨간 상처를 가진 돼지들이었다.

비질 참가자들은 물이 담긴 페트병을 돼지들에게 내밀었다. 축산물 위생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돼지는 도축 전 12시간 이상 굶겨야 한다. 운송 중에는 물조차 마시지 못한다. 보통 운송은 1시간에서 3시간가량 걸린다. 좁고 더운 트럭은 돼지들을 더 갈증나게 만든다.

“안녕? 물 마실래?” 물을 뿌리자 한 돼지가 고개를 들더니 혀를 내밀어 물을 받아 마셨다. 무언가 있다는 걸 알아챈 몇몇 돼지들이 다가왔다. 어떤 돼지는 아예 페트병 입구를 입으로 물고 물을 마셨다. 1분도 되지 않아 2ℓ가 동났다. 하지만 이런 돼지들보다 힘없이 바닥에 누워 있는 돼지들이 더 많았다.

도축장에 실려 온 얼룩소가 침을 흘리고 있다. / 서울애니멀세이브 제공

도축장에 실려 온 얼룩소가 침을 흘리고 있다. / 서울애니멀세이브 제공

비질을 주최한 ‘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는 “꼭 물을 주지 않아도 돼요. 물이 없으면 손을 내밀고 냄새를 맡게 해주세요. 돼지들은 호기심이 많아요. 사람으로 따지면 이제 초등학교 2~3학년 정도 된 애들이에요”라고 말했다. 도축장 앞의 돼지들의 나이는 6개월, 돼지의 자연수명은 20년이다.

돼지 얼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돼지가 코를 움직이며 손의 냄새를 맡았다. 또 다른 돼지는 입을 벌리더니 기자의 손을 살짝 ‘맛봤다.’ 아플까 걱정했지만 부드러워서 놀랐다. 송곳니가 뽑히고 그 외의 이빨도 썩어 없어져서라고 했다. 농장에서는 돼지가 스트레스로 서로를 물어뜯는 걸 방지하기 위해 송곳니를 뽑는다.

그제야 “처음에는 돼지들이 한덩어리로 보이지만 눈을 마주치고 물을 주고 냄새를 맡게 해주면 개별적인 존재로 보인다”는 활동가의 말이 와닿았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운송 기사가 “거기 조심! 나와요”라고 소리쳤다.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이 끝났다. 기자의 손을 물었던 돼지의 얼굴이 점점 멀어졌다.

도축장으로 들어간 트럭은 방역한 다음, 계류장으로 간다. 소독약이 안개처럼 돼지들에게 뿌려졌다. 세차장과 비슷해 보였다. 계류장은 본격적인 도축 전에 돼지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다. 피 냄새를 맡은 돼지들은 트럭에서 내리기 싫어한다. 계류장 노동자가 긴 막대기를 들고 트럭 바닥을 ‘탕탕’ 쳤다. 그래도 내리지 않는 돼지들은 맞는다.

놀란 소들은 눈 크게 뜨고 두리번

50m 넘게 떨어진 곳에서도 돼지들이 지르는 비명은 선명하게 들렸다. 단순히 ‘꾸에엑’으로 표현할 수 없는 소리였다. 기계 소리 같기도 하고 사람이 지르는 비명 같기도 했다. 혜린 활동가는 “저런 소리를 낸다는 건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뜻이에요. 얼마나 고통스러워야 저런 소리를 지를 수 있는지…”라고 말했다. 이날 몇몇 참가자는 그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오전 시간 내내 트럭은 일정 시간을 두고 꾸준히 도착했다. 돼지를 싣고 들어간 트럭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0~40분 정도였다. 돼지들의 비명도 30~40분 주기로 들렸다. 도축량이 많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도축장 관계자는 “안 많아. 오늘은 2000두 정도야. 많을 때는 3000두도 하지”라고 말했다. 전국에서 매일 5만여마리의 돼지가 도축된다.

간간이 소를 실은 1.5t 트럭이 도착했다. 돼지와 달리 소 트럭에는 한마리 혹은 두마리가 실려 있다. 대부분 ‘젖소’라 불리는 얼룩소다. 이들은 2~3년 동안 임신과 출산, 착유의 과정을 반복하다가 고기가 된다. 오랜 시간 착유를 당해 칼슘과 철분이 부족한 얼룩소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날 만난 한 얼룩소도 그랬다. 힘이 빠진 듯한 소는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목은 90도로 꺾여 있었고 퉁퉁 불은 젖에서는 우유가 나오고 있었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주저앉은 소들은 빨리 도축장으로 옮겨져야만 한다. 죽어버리면 고기로서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꼬까새 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가 도축장 맞은편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 박상환 프리랜서 사진가 제공

꼬까새 서울애니멀세이브 활동가가 도축장 맞은편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 박상환 프리랜서 사진가 제공

한우로 불리는 누렁소들은 그나마 상태가 좋았다. 누렁소의 몸에 빨간색 래커 스프레이로 ‘횡성’이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 놀란 소들은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렸다. 낮은 소리로 울기도 했다. 도축장 관계자는 “돼지나 소나 죽으러 오는 거 다 알지. 피 냄새가 나거든. 소들은 막 눈물을 흘려”라고 말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더 이상 트럭은 들어오지 않았다. 꼬까새 활동가가 평화를 기원하는 백배 기도를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 장면을 휴대전화로 찍었다. 홍은전 작가는 “도살장은 이상한 곳이었다. 목마른 돼지에게 물을 주는 일도, 아무 죄 없이 곧 교수형에 처해질 생명을 위해 울어주는 일도, 그것이 도살장 앞이라면 어딘가 조금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라고 한 칼럼에 쓴 바 있다.

일부 참가자는 도축장 바로 옆에 있는 축산물유통센터를 방문했다. 구글어스로 보면 해당 도축장과 유통센터는 연결돼 있다. 도축한 고기를 유통센터로 이동시켜 판매하는 구조인 듯했다. 유통센터 건물에는 색색깔의 글씨로 ‘OPEN~ 양고기, 수입육 판매’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유통센터 들어서자 피 냄새 진동

유통센터 입구에 들어서자 피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동물의 몸에서 나온 기름 때문에 바닥은 미끌거렸다. 유통센터에는 소와 돼지의 머리, 발, 내장 등이 전시돼 있었다. 한쪽에는 소의 머리들이 물에 담겨 있었다. 가죽이 벗겨진 소의 머리는 새하얗다. 눈이 채 감기지 않은 얼굴도 보였다.

“언니, 뭐 찾아? 보고 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판매자들이 말했다. 평생 가려져 있던 동물은 고기가 돼서야 적극적으로 드러났다. 유통센터에서 고기를 사면 2층에서 구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쇠고기 부산물 전국 택배’라는 간판도 보였다. 도축된 동물의 몸은 쪼개져 전국으로 보내졌다.

이날 비질은 ‘마음나누기’로 마무리됐다.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밝힌 앨버트 제이크는 “홀로코스트 당시 제 조상과 친척들이 오늘 본 돼지와 같은 모습으로 트럭에 실려가 살해당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비질에서 마주하는 동물에 대한 연대가 곧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연대입니다”라고 말했다.

꼬까새 활동가는 “비질은 특정 도축장을 문 닫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니며, 도축업에 일하는 사람들을 ‘악마화’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육식의 시스템은 동물뿐 아니라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동도 가려요”라고 말했다. 한 운송 트럭 백미러에 달려 흔들리던 십자가가 떠올랐다.

모든 일정이 끝난 뒤, 도축장을 떠났다. 은빛 컨테이너로 둘러싸인 도축장은 한발 떨어져 보니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외관이었다. ‘OO한우마을, 안녕히 가세요’라는 큰 안내판이 도축장 인근에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안내판에 그려진 누렁소는 웃고 있었다.

<이하늬·이두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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