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기술적 조류를 이야기할 때 메타버스(Metaverse)를 빠뜨릴 수 없다. 투자자들도 개발자들도 메타버스를 한껏 추어올리며 미래의 규정적 기술로 손꼽는다. 메타버스의 세상이 도래하지 않으면 그것은 미래가 아니라는 단정적 언명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기실 메타버스는 기술결정론자들의 꿈의 공간이라 할 만하다.
메타버스를 기술의 측면으로만 바라보면 인류의 해방을 돕는 유토피아적 기획으로 읽히게 마련이다. 인종, 성별, 나이, 외모에 관계없이 그리고 그것의 차별로부터 자유로운 해방의 공간이자 역사적 고통과도 단절할 수 있는 이상적 도피처로 인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획의 이면을 읽어내지 못하고 기술 도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이 지닌 정치적 프레임을 간과하는 오류에 사로잡히게 된다.
1995년 리처드 바브룩 등이 쓴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는 메타버스의 탄생이 왜 실리콘밸리의 열망이자 필연일 수밖에 없는가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바브룩은 실리콘밸리 이데올로기의 욕망이 향하는 지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실리콘밸리 이데올로그들은) 정보테크놀로지가 개인에게 권능을 부여하고 개인의 자유를 고양하며, 또한 국민국가의 권력을 근본적으로 축소한다고 주장한다. 현존하는 사회적·정치적 및 사법적 권력구조는 자율적인 개인과 그들의 소프트웨어 사이의 제약 없는 상호작용에 의해 대체되면서 사라질 것이다.”
실제 오큘러스의 전 CTO였던 존 카맥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가상현실(VR)의 언약은 당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세상을 선사하는 것은 이 지구상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메타버스 예찬론이기도 한 그는 기술기업들이 창조한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공간에서만, 고통 없는 인류, 차별 없는 사회구현이 가능하다고 설파한다. 아바타처럼 자신의 모습을 언제든 변형할 수 있고 실세계에 존재하는 각종 규제와 제약, 갈등과 고통과 이별할 수 있기에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페이스북이 그리고 밸브와 로블록스가 꿈꾸는 세상이 바로 그런 모습이다.
특히 페이스북은 미 연방정부의 규제가 더욱 강하게 조여오고, 애플과의 플랫폼 경쟁에서 부득이 패한 뒤로 메타버스 기술 투자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페이스북의 눈에 현실세계는 너무나 비대한 국가권력이 자유를 옥죄고 있고, 통치의 룰을 간섭하는 눈엣가시 같은 경쟁기업들이 많기에 자신만의 메타버스에서 그들만의 통치체제에 따라 유토피아적 가상 행성을 만들려는 욕망은 더 불태우는 중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바브룩이 강조한 바처럼 빅테크는 실리콘밸리가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권력체제를 갈망한다. 메타버스는 그 결정체다. VR의 침체기를 넘어 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고 있는 메타버스는 기술세력이 권력을 쟁취하고 인류를 통치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해방구일 수밖에 없다. 그 공간에선 워싱턴으로 불려다닐 일도 없고, 누군가의 지시를 받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행성이다.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가 마셜 매클루언을 거쳐 페이스북 특유의 반국가주의적 철학으로 스며들고 있는 지금, 메타버스 마케팅의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