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영화가 소환하는 ‘80년 광주’의 기억

귀신이 학교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귀신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영화의 주제였다.

씨네2000

씨네2000

제목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

제작연도 2020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08분

장르 미스터리, 공포

각본/감독 이미영

출연 김서형, 김현수, 최리, 김형서

개봉 2021년 6월 17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제작 씨네2000

영화를 본 다음 마음이 복잡해졌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영화다. 그리고 충무로의 대들보 같은 존재였던 고(故) 이춘연 씨네2000 대표가 제작한 마지막 작품이다. 여러모로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다. 한국의 공포장르에서 ‘80년 광주’를 소비한 적이 있을까.

영화가 ‘80년 광주’와 이어지는 텍스트라는 건 이 영화의 사실상 주인공인 은희(김서형 분)가 차를 몰고 갈 때 ‘광주광역시’라는 표지판이 등장하는 시작 장면에서 눈치를 챘어야 했다. 오빠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교에 교감으로 부임해 돌아온 은희는 상담교사를 자처한다. 그의 기억은 끊임없이 ‘80년 광주의 경험’으로 돌아간다. 80년 광주, 그때 학교에서 희생된 단짝 친구의 원령에 사로잡혀 있다. 말하자면 그해 5월 이후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물귀신처럼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영화의 서사구조는 의외로 복잡하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1953년에 개교한 이 새빛여고라는 학교 건물엔 지금은 창고로만 사용되는 장소가 있다. 3층 화장실이다. 화장실의 입구는 사물함으로 막아놓았다. 막아놓은 이유는 추정컨대 1980년 이후 사고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여고생 하영(김현수 분)의 단짝 친구는 이곳에서 목을 맸다. 하영은 이 단짝 친구가 목을 맨 이유를 알고 있다. 그에게 동영상 유서를 보냈기 때문이다.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한 학교라는 시스템에 대항해 그는 일탈해 문제아가 되는 방식으로 ‘저항’한다. 그리고 이 미시권력의 구조적 억압은 애초의 원형(archetype)을 만들어놓은 은희가 교감으로 부임해오면서 마침내 폭발하고 까발려진다. 그것도 일종의 해원(解怨)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망각’의 사용법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보여주는 ‘망각’의 사용법이다. 자신의 모교로 돌아오면서 은희는 자기 경력에서 그 여고를 나왔다는 것을 빼는 방식으로 자신의 과거를 은폐한다. 이 지점에서 이 시리즈의 시작이었던 첫 번째 <여고괴담> 이야기 구조와 대칭을 이룬다. 교장은 아무리 그가 전학 갔다고 하더라도 그의 존재를 완전히 잊기란 핍진성을 고려하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교장은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에게 자신이 했던 일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80년 광주’에 대한 기억을 피해자 서사가 압도하기 때문에?

앞서 핍진성을 거론했지만, 여러 아쉬움이 남는다. 귀신이 학교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귀신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영화의 주제였다. 사회의 가치 기준에 비춰 타락한 사람들부터 괴물의 희생이 된다는 장르적 규칙을 형성한 서구 공포영화가 필연적으로 보수적 가치관으로 기운다면, 1980년대 이후 단절된 한국 공포장르의 리부트였던 이 시리즈는 한국적 맥락에서 사회비판적 메시지와 공포장르가 연결되는 효시이기도 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김태용·민규동 감독의 시리즈 2편은 자매애와 결합된 여성주의 공포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이야기상 의문

시리즈의 6편에 이르러서는 한국영화의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빚진 시대적 사건의 원류에 해당하는 ‘80년 광주’의 기억을 직접 소환한다. 그런데 이 기억은 진짜 그때의 기억일까. 아니면 저항에 동참하지 못했던 이들이 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부채의식 내지는 죄의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평면적이며 개연성 없는 ‘허수아비’를 만들어내 소비하는 건 아닐까.

영화가 끝까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 인물과 사건들을 보면 시나리오 단계에서 개연성을 보강하기 위해 많은 수정작업을 거친 듯한데 뭐 그렇다고 봐야지, 하고 퉁치고 넘어가기엔 많은 의문이 남는다. 1980년 모습 그대로 다리를 저는 경비원 권해효는 결국 은희의 눈에만 보이는 유령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은희가 찾아가는 무연고 묘의 주인공은 또 누구란 말인가. 19세 고3 여학생이 무덤의 주인공이라면 신원이 특정 안 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인트로에서 떨어지는 유리창에 목이 잘리는 인부 장면은 필요한 장면이었을까. 천장에서 유튜버 여고생 앞으로 떨어지는 목 없는 시체는 또 무엇인가. 영화 보도자료를 보니 감독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나온 충격적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는데, 어떤 에피소드였는지 궁금하다.

‘K호러’ 장르의 기원은 1998년 나온 <여고괴담>

씨네2000

씨네2000


한국 공포 영화사와 관련한 정리를 하다 보면 기묘한 시기를 만나게 된다. 알다시피 한국적 공포장르의 원형을 만들어낸 것은 곽철휘 감독의 <월하의 공동묘지>(1967)다. 영화에는 그때까지의 공포장르의 문화적 밈이 총출동한다. 예를 들어 유성필름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은 변사는 늑대인간의 몰골로 변한다던가, 주인공이자 한 많게 생을 마감한 기생 월향은 소복에 머리만 풀어헤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드라큘라’ 이빨을 하고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히스테리컬하게 웃는다. 같은해 판타지의 또 하나 양대계열인 SF 쪽에서도 두 작품이 개봉한다. <대괴수 용가리>와 <우주괴인 왕마귀>다.

그 뒤로 1980년대 중반까지 장르영화들은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데, 앞서 기묘한 시기라고 한 것은 공포영화의 전통이 1980년대 후반 어느 시점에 이르면 뚝 끊긴다는 점이다. 남기남 감독의 어린이용 장르영화를 포함해도 <여고괴담>이 등장하기 전까지 10여년간 매해 한국산 장르영화의 제작 편수는 거의 0편에 수렴한다.

<여고괴담>의 등장은 그 한국공포영화의 갈수기에, 해외에서 제작된 수많은 B급 공포영화를 동시상영극장과 비디오로 섭렵한 세대들이 메가폰을 잡기 시작하는 때와 일치한다.

<여고괴담> 이후 ‘K호러’는 변두리의 마이너 장르에서 주 소비층이 비디오에서 스트리밍으로 넘어간 현재에 이르러서는 주류장르가 됐다. 여러모로 기념비적 영화다. <여고괴담>하면 유명한 것이 재은의 귀신이 나타나는 ‘점프컷’ 장면인데, 이 시리즈의 여섯 번째 이야기 <모교>에도 해당 장면에 대한 오마주가 들어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시네프리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