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남북을 넘어 대륙 물류망의 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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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반도국가라고 하지만 실상 육로를 통해 다른 나라를 갈 수 없다. 지리적으로는 섬이 아니지만, 실제로는 섬과 같은 국가이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지 30년. 이미 비행기로 국경을 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나라 간의 경계선을 넘어가는 느낌이 나는 건 아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에게 진짜 국경은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이다.

경의선 문산~봉동(개성에 있는 역) 구간을 운행하는 화물열차 / 변상욱 제공

경의선 문산~봉동(개성에 있는 역) 구간을 운행하는 화물열차 / 변상욱 제공

남북철도도로연결사업은 분계선에서 끊어졌던 철도와 도로를 연결한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국제 물류망과는 연결되지 못했다. 개성공단을 오가는 용도로만 이용되다가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남북 간 교통은 완전히 단절됐다. 2018년 평창올림픽,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남북철도연결을 위한 사전조사가 이루어졌으나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과 2020년 코로나19로 사업 추진은 다시 중단됐다.

남북 간 교통 단절구간 도로는 총 13노선이다. 이중 국도 6곳, 철도 4개 노선(경의선·동해선·경원선·금강산선)이 있다. 남북 교통망 연결은 오래전부터 추진돼왔다. 통일로와 자유로 건설도 남북 교통망 연결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통일로는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국도 1호선(목포~신의주) 중 서울 은평구 구파발동에서 경기 문산까지 구간을 말한다. 통일로는 기존 도로(국도 1호선)를 고속화도로로 변경하는 공사를 1971년 착공해 1972년 준공했다. 길이는 49.2㎞이다. 당초에는 임진각으로 연결됐으나 1992년 통일대교가 건설돼 판문점까지 연장됐다. 통일대교 이후는 민간인통제구역이므로 허가를 받아야 통행할 수 있다. 북한에서 1987년 건설을 시작해 1994년 개통한 평양~개성(판문점) 간 고속도로와 연결하면 평양까지 갈 수 있다. 자유로는 1990년 행주대교에서 자유의 다리(임진각)까지 도로신설계획을 확정하고, 1990년 착공해 1994년 9월 준공했다.

남북철도와 도로 연결사업

통일로와 자유로 건설은 남북관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통일로는 경기 북부 교통의 해결, 군사적 목적 외에도 1971년부터 남북회담이 시작되면서 북한 방문단에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북한 방문단의 남한 방문 시 1990년대까지는 자유의 다리를 건너, 통일로, 구파발을 거쳐 서울로 들어왔다. 자유로는 일산 신도시의 교통문제, 홍수방지 등의 목적도 있었지만 1990년 남북회담에서 논의된 남북도로연결을 위해 건설됐다. 하지만 남북관계 악화로 2000년까지 남북도로연결은 추진되지 못했다.

2005년 5월, 경의선 남북연결도로의 북측구간 / 변상욱 제공

2005년 5월, 경의선 남북연결도로의 북측구간 / 변상욱 제공

남북은 2000년 8월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에 합의했으나 북한은 철도·도로공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2000년 미국 부시 대통령 집권에 따른 북미관계의 악화, 2001년 남북 갈등의 영향도 있었으나 주요한 이유는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력으로 도로·철도공사 추진이 불가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이 2001년 경의선 외에 동해선도 동시에 연결돼야 한다고 주장해 2002년 8월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의 동시 착공에 합의했다. 2002년 9월 남북철도·도로 연결 실무협의회에서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공사 착공식과 철도 및 도로 연결공사 자재·장비 제공 관련 내용을 합의했다. 착공식은 9월 18일 남북이 동시에 진행했다.

남한이 북한에 철도·도로 연결공사용 자재와 장비를 차관으로 제공한 것은 북한의 경제 사정과 건설 능력으로는 자체적으로 공사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남북철도와 도로 연결이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에 기여하는 바가 크고, 장기적으로 대륙 교통망과 연결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북한 개성 판문역 / 이상행 건축사 제공

북한 개성 판문역 / 이상행 건축사 제공

자재·장비 제공 합의에 따라 조달청을 통해 현대아산을 자재·장비 구매대행 업체로 선정했다. 2002년 10월 경의선은 인천항에서 해주항으로, 동해선은 속초항에서 장전항으로 자재·장비를 운송했다. 남한은 당시 제공된 장비·자재의 투명하고 정상적인 사용을 위해 현장방문을 통한 점검을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남북도로·철도는 군사분계선을 통과해야 하므로 남북 간 군사 합의가 필요하다. 6·25 정전협정은 북한과 유엔이 체결하고 남한은 참가하지 않았으므로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려면 유엔사령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남북철도·도로 연결 사업을 위해 먼저 정전협정 절차에 따라 유엔군과 북한군 대표 간 경의선·동해선 연결공사 지역을 남북 관리구역으로 설정하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2001년 2월 8일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경의선 공사구역에 대한 군사적 보장에 합의했으나 발효가 미뤄져 오다 2002년 9월 18일 경의선·동해선 동시 착공을 앞두고 ‘동해지구와 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설정과 철도·도로 작업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를 서명·교환했다. 이 합의에서 동해선은 철도 노반을 중심으로 100m의 폭을, 경의선은 250m의 폭을 남북관리구역으로 하기로 했다.

‘남북철도, 도로 연결 자재·장비 제공’ 사업은 남한이 북한에 인프라 건설을 지원한 최초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자재 장비는 시멘트, 형틀. 아스팔트 피치, 각종 공구, 건설 중장비 등이 망라됐다. 장비 중 일부는 임대조건이었다. 남한이 제공한 자재·장비를 갖고 북한은 군부대와 청년돌격대를 동원해 공사를 진행했다. 도로는 왕복 4차선에 포장은 아스팔트로 했다. 철로는 단선으로 기존의 철도를 개·보수했다.

개성 판문역에서 열린 화물열차 운행 기념식 / 변상욱 제공

개성 판문역에서 열린 화물열차 운행 기념식 / 변상욱 제공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 동시 착공

북한 구간의 교량은 남한과 구조설계 기준과 시공방법이 달라 중량 차량이 운행하는 경우 구조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도로 주변의 배수가 잘되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또한 철도의 교량과 노반의 안정성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도로·철도의 노선도 직선화할 수 있었으나 굴곡진 노선을 유지했다. 향후 북한의 철도·도로 등 교통망 건설 지원 시 자재·장비만이 아니라 조사, 계획 및 설계 단계에서 협력해 효율적인 건설 방법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경의선 도로는 차량 통행이 가능해진 2003년 초부터 개성공단 개발 준비를 위한 차량 임시 통행을 실시했다. 동해선 도로는 2003년 2월 11일 임시도로 개통식을 갖고 금강산 육로 시범관광을 실시했다. 경의선 철도는 2003년 6월 14일에 비무장지대의 남북철도 구간이 연결돼 당일 연결 행사를 가졌다. 경의선 도로는 2003년 10월 연결됐으며,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식 행사를 위해 차량 100여대가 통행했다.

북한 개성역 / 이상행 건축사 제공

북한 개성역 / 이상행 건축사 제공

남북은 2005년, 2006년 두 차례 철도·도로 개통식 일정에 합의했지만, 북한이 군사적 보장 합의를 미룸에 따라 성사되지 못했다. 개통식은 하지 못했지만 2007년 남북정상회담 후 경의선 철도운행에 합의해 2007년 12월 11일부터 문산~봉동 구간에 매일 1회 화물열차 정기운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남북관계 악화로 화물열차 운행은 2008년 11월 28일 중단됐다. 중단될 때까지 화물열차는 총 222회(편도 기준) 운행됐다.

북한은 2009년 8월 운행 재개를 통보해왔으나,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물동량 확보 난항을 이유로 남한에서 운행 재개를 거부했다. 남북 교통망은 경의선 도로, 철도, 동해선 도로, 철도 등 4개 노선이 연결됐지만 동해선 철도는 남측 철도 일부 구간이 단절돼 운행하지 못했다. 도로는 2003년부터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 전까지 이용됐지만, 이후에는 이산가족면회를 제외하고 전혀 이용되지 못하고 있다. 경의선 철도는 2008년 열차 운행이 중단됐고, 2016년 2월 개성공단 중단 후 남북회담, 연락사무소 통행 등을 위해 간헐적으로 이용되고 있어 사용하지 않는 시설물들은 계속 노후화되고 있다.

개성공단 남측 주재원들이 화물열차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다. / 변상욱 제공

개성공단 남측 주재원들이 화물열차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다. / 변상욱 제공

2008년 이후 남북관계가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교통망을 연결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왔다. 특히 2018년 남북관계 개선 후 북한철도에 대한 남북공동조사를 시행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에도 남북 교통망 연결에 대비해 남측구간 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남북 철도망 연결 사업은 2018년 유엔의 대북제재 면제대상으로 지정됐으므로 코로나19가 진정되면 남북 간 협의를 통해 추진이 가능할 것이다.

남북 교통망 연결로 바뀔 세상

남한은 무역 물류 대부분을 해상을 통해 운송해왔다. 남북 교통망이 연결되는 경우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중앙아시아 교역을 위한 상당량의 물류는 육상으로 운송될 것이며, 교통망과 인접한 접경지역은 교역 물류의 중심지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러시아로 방문하는 여객 상당수도 육로교통을 이용, 접경지역의 외국인 방문도 증가할 것이다.

또한 중국의 동북지방(랴오닝성·지린성·헤이룽장성)은 인구가 1억8000만명(전체인구의 8.2%), 면적은 중국 전체의 8.3%를 차지하는 지역으로 지하자원과 농업이 발달한 지역이지만 상대적으로 산업 발전이 덜 된 지역 중 하나다. 중국 동북지방과 남북한 인구를 합치면 2억5000만명 이상으로 대규모 경제권이 형성될 수 있다. 남북한 및 중국의 인건비 차이, 기술적 격차 등은 3국의 국제분업체계를 만들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도 있다. 남북 교통망 연결은 남북을 넘어 중국 동북지방, 그리고 대륙 물류망과 연결돼 남한 경제 도약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변상욱은 건축사, 건축시공기술사다. 1999년부터 현대아산 기술관리부에서 일하며 금강산관광지역 건설사업을 관리했다. 이 시기 금강산 호텔, 금강산 옥류관 건설 등에 참여했다. 이후 2004년부터 2016년까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건설사업과 공장건축인허가업무를 담당했다. 2007년 산업포장을 받은 바 있다.

<변상욱 건축사 정리·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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