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주방용품 매매상 동행기, 구매 수개월 만에 다시 매각 문의하기도
코로나19 사태가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이 내놓은 중고용품들이 급증하고 있다. 공급이 넘치는 시기, 중고용품 매매의 ‘생태계’는 어떻게 굴러가고 있을까. 중고 주방용품 매매업을 하는 김경한씨(51)가 ‘중고물품을 받아오는’ 현장을 찾아갔다.

지난 4월 23일 경기 일산에 위치한 김경한씨(51)의 중고 주방용품 창고에 폐업한 식당에서 나온 싱크대들이 쌓여있다. 그는 “대부분 되팔지 못할 물건들”이라고 했다.
“이거 팔면 돈 안 되나요?”
“그거 고철이에요. 팔아봤자 몇천원 나올걸요.”
지난 4월 23일 아침, 수원 팔달구의 한 족발·보쌈 식당에서 2명의 남성이 주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 식자재 등이 모두 빠져나간 이 식당엔 주방 기기들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테이블형 냉장고 3개, 업소용 대형 냉장고 2개, 싱크대 2개와 대형 가스레인지, 환풍기, 에어컨…. 대략 열가지였다.
김경한씨는 생각에 잠겨 있고, ‘폐업 중’인 임모씨(37)는 그런 김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방에 한 1500만원 정도 들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얼마 못 받을 것 같네요.” 임씨가 기자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1500만원 들였는데 되팔고 나니 60만원”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김씨는 금세 가격을 매겼다. 2020년형 중·대형 냉장고는 각각 25만원, 35만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고철’이라고 했다. 되팔아봤자 돈이 안 된다는 얘기다.
김씨는 이내 동행한 동료와 함께 주방집기를 들어내기 시작했다. 쇠지렛대, 수레, 드릴 등 각종 공구가 동원됐다. 40여분 만에 고철상으로 향할 1t 트럭이 금세 찼다. 또 다른 트럭엔 60만원어치의 냉장고 2대가 실렸다.
김씨는 작업 중에 의외의 제품을 여러 번 바라봤다. “이거는 안 팔아요? 이런 게 돈이 되는데….” ‘채소 절단기’였다. “당근마켓에 내놨는데 사가겠다던 분한테 연락이 안 오고 있어요.” 임씨가 답했다. 그는 “반찬을 따로 사서 쓰는 식당도 많지만, 우리 집은 제가 직접 다 만들고 싶어서 산 것이었다”고 했다.
쉽게 끝날 것 같던 작업은 의외의 변수 때문에 멈췄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가게를 왔다갔다 하던 임씨가 어렵게 입을 뗐다. “새로 들어오실 분이 환풍기 꼭 떼어 달라고 하시네요.” 김씨가 “철거 작업자들이 오면 다 떼어줄 것”이라고 답하자 임씨는 “(새로 들어올 가게 주인이) 철거 전에 다 빼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7일 서울 중구 황학동의 중고시장에 의자가 가득 쌓여 있다. 최근엔 배달을 노린 창업이 대세여서, 테이블과 의자를 취급하는 중고품점엔 손님이 뜸하다고 한다.
임씨의 식당 자리에는 카페가 들어오기로 돼 있고, 새 카페의 사장이 인테리어를 고려해 철거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날 ‘환풍기가 무거워 철거비용이 더 들 수 있으니 철거팀이 오기 전에 들어내달라’는 새로운 요청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씨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환풍기는 높게 달려 있어 어설프게 작업하다가는 사람 다치는데요.”
고민 끝에 결국 김씨와 그의 동료는 대형 환풍기까지 떼어주기로 했다. 가로 길이 2m는 족히 돼 보이는 환풍기를 천장에서 내리고, 그라인더로 반을 갈랐다. 육중한 기계 소리에 놀란 인근 상인들이 식당을 들여다보곤 했다. 임씨와 정들었던 자영업자가 음료수를 들고 찾아왔다. 둘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임씨는 동료 상인에게 코로나19에 매출이 내려앉고,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과정을 털어놓았다. “건물주 바뀌고 너무 올려 버틸 수가 없네요. 예전에 권리금 1억 주겠다던 사람도 있던 가게인데…. 권리금이요? 못 받았죠.” 둘은 같은 건물에 함께 세 들어 장사하던 처지였다.
약 한시간이 더 흐르고, 골칫거리였던 ‘쇳덩이’ 환풍기도 트럭에 실렸다. ‘철거’에 준하는 작업을 무료로 해준 김씨에게 임씨는 연신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채소 절단기’를 김씨에게 10만원에 넘겼다.
테이블·의자가 넘친다
수원의 족발·보쌈가게 앞에서 김씨와 동료는 각자 흩어졌다. 김씨는 경기 일산의 영업점으로, 동료는 고철상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날 고철을 팔아 생긴 수익은 11만원. 일당 25만원을 약속했으니, 김씨가 동료에게 14만원을 부쳐주기로 했다.
한때 중고용품 하면 무조건 ‘서울 중구 황학동’이었지만 요즈음에는 김씨처럼 수도권 외곽에 터를 잡은 매매상이 늘고 있다고 한다. 수원에서 일산으로 달리는 동안 수차례 전화벨이 울렸다. 주로 ‘매입해줄 수 있겠느냐’는 문의였다. 때때로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연락이 오곤 한다. 그는 “1주일이 5일은 이렇게 물건을 받아온다”면서 “요즘엔 중고용품 매매상들도 많아져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 4월 23일 김경한씨가 중고 주방용품을 사오기 위해 방문한 폐업 식당에서 무료로 환풍기를 철거해주고 있다./ 송윤경 기자
김씨의 영업점에 도착하니, 직원들은 ‘육수 냉장고’를 수리해 닦고 있었다. “내일 백화점 프랜차이즈 식당에 들어갈 물건”이라고 했다. “요즘은 프랜차이즈 식당도 중고용품을 많이 들인다”고 했다.
코로나19에도 창업할 사람들은 한다. 다만 ‘트렌드’는 확실히 변하고 있다. 신규 프랜차이즈 식당 외엔 대부분 배달에 집중하려는 창업자들이 많다. 그래서 “웬만한 테이블과 의자는 갖다놔도 안 가져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 역시 신형 아니면 취급하지 않는다.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중고용품 매매업자들이 많아지니, ‘가격 경쟁’이 붙기도 한다. 다른 매매상들보다 비싸게 사 주고, 싸게 되파는 ‘박리다매’형 업자들이 늘었다. 그렇지만 김씨는 예상외로 까다롭게 가격을 책정하지 않았다. 출고 3년 이내의 제품이면 약 70%를 쳐주는 식으로 어림잡는다. 대신 수리와 세척에 공을 들인다. 300평대의 창고를 가지고 있어 한 번에 여러 제품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그의 ‘강점’이었다.
폐업 행렬이 이어지다 보니 그는 마음 아픈 사연도 많이 지켜봤다. 불과 수개월 전에 중고용품을 판 가게였는데, 얼마 전 폐업한다면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가장 많이 목격한 ‘억울한 사례’로는 인터넷·정수기·POS(바코드 리더 등을 이용한 판매관리시스템)의 위약금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남 걱정’만 할 처지는 아니다. 중고용품을 사가는 손님이 줄면서 매출이 반토막났다. 코로나19에 중고매매 생태계도 얼어붙은 것이다. 김씨는 자신도 “직원들 월급 줄 생각에 걱정이 많다”고 했다.
이날 오후 김씨는 ‘가격견적 요청’을 받고 경기 김포의 한 국밥집에 들렀다. 택시기사 자격시험 문제집을 들여다보던 남자 사장이 일어났다. 그는 “이거 300만원 주고 산 건데” 하면서 육류 직화기를 들어보였다. 조금이라도 아껴서 폐업하고픈 ‘절박함’이 느껴졌다. 김씨는 “돌아가서 정리해보고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교외 지역이라, 식당 바깥엔 꽃잎이 날리고 있었다. 폐업을 결심한 사장은 2021년의 봄날을 느낄 틈도 없었다. 김씨가 자리를 뜨자 그는 다시 택시기사 자격시험 문제집을 펼쳤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