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래에 감정이입돼 저절로 눈물 흘려”
히트곡 많은 무명가수. 가수 유미를 따라다닌 수식어다.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여자라서 하지 못한 말’ 그리고 ‘별’까지. 노래는 널리 사랑받았지만, 노래를 부른 이는 알려지지 않았다. 유미도 스스로를 ‘노래 뒤에 있는 가수’라고 칭했다. JTBC <싱어게인: 무명가수전>에서는 ‘33호’의 이름으로 무대에 섰다. 33호의 모든 무대는 레전드로 회자됐고, 경연이 끝난 뒤 가수 유미는 이름을 되찾았다. 데뷔 20년 만에 노래 앞에 선 가수 유미를 만났다.
-어떤 계기로 가수가 됐나.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걸 무척 좋아했다. 가족이나 친척들 앞에서도 노래를 많이 불렀다. 가수가 된다는 건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충북 충주에서 자랐는데, 초등학교 때 KBS합창단에서 활동했고, 고등학교 때는 충주MBC 남한강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때 충주MBC 이회창 국장님이 나를 서울로 보내줬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서울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고향에서 노래 잘 부르는 것으로 꽤 유명했다.”
-그러면 기획사에 소속이 돼 활동한 건가.
“국장님이 소개해준 곳이 변진섭 선배의 회사였다. 거기서 6개월 동안 많이 배웠다. ‘노래를 이렇게 해서는 가수가 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발매 당시에도 사랑을 많이 받은 곡인데, 이 곡은 어떻게 대중에게 알려졌나.
“데뷔 프로젝트 규모가 정말 컸다. 나를 제외하고 데뷔 앨범에 참여한 모든 분이 대한민국 최고였다. 내 생각에 앞으로 나만큼 큰 프로젝트로 데뷔하는 사람이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 프로모션 자체도 굉장히 컸는데, 비용뿐만 아니라 참여한 분들이 대단했다. 정우성, 전지현 선배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했고, 노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작곡가인 김형석 선생님이 만들어주셨다. 제작자였던 정훈탁 대표님은 두말할 것도 없다(웃음). 나 말고는 모두가 정말 최고였다. 뮤직비디오 제작비용도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2001년에 작업을 했고, 2002년 3월에 발매됐는데 호주에서 촬영했다. 그야말로 영화 한편 수준이었다. 당시 돈으로 20억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드라마와 영화 OST 작업에 많이 참여했다. OST 작업이 일반 앨범 작업과 다른 점이 있나.
“앨범 작업은 가수 유미가 노래에 깊게 들어갈 수 있도록 다양하게 표현하고 연구하는 과정이다. 반면 OST는 작품 주인공에 몰입해 불러야 한다. 내가 해당 작품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 OST에 참여했다. 당시 김아중씨의 보컬 트레이너였다고 들었는데.
“영화 캐스팅이 마무리된 상황에서 김아중씨가 노래를 불러야 했다고 한다. 그때 김아중씨가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를 불렀다고 하더라. 당시 음악감독인 이재학 감독께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유미를 아니까, 같이 연습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일단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넓은 음역대를 가졌다는 뜻이다.
-영화 마지막에 흘러나온 곡 ‘별’도 많은 사랑을 받는 노래다. 남자들도 노래방에 가서 이 노래를 많이들 부른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대하면 거기서 나온 결과물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미녀는 괴로워> ‘별’ 작업을 하는 날 그 노래를 듣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재학 감독님이 워낙 곡을 잘 써 멜로디가 아름다웠다. 가이드 녹음을 하면서 감독님이 놀라셨다. ‘너 왜 우니?’라고 물었을 때 나는 ‘한나’라는 캐릭터 자체가 그냥 나인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고 생각하는데 늘 노래 뒤에 내가 있는 상황이었다. 활동을 못 하니 내 노래를 할 수 없었고. 그런 상황 때문에 주인공 ‘한나’의 코러스 시절에 감정 이입이 많이 됐던 것 같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하는 따로 준비하는 게 있나. 징크스가 있는지.
“나는 징크스를 만들지 않는다. 징크스에 의지하는 것 자체가 ‘나는 부족하다’라는 의미로 느껴진다. 자존심상 용납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30대 초·중반까지도 연습을 이런 식으로 했다. 예를 들어 많이 아픈 날이면 ‘너, 내일 스케줄이 네가 그렇게 원했던 <스케치북>, <러브레터>, <뮤직뱅크>야. 그럼 너는 어떻게 할 건데? 그날은 오늘보다 더 아플 수도 있잖아’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떤 컨디션이든 완곡을 할 수 있도록 나름의 ‘평균’을 만들었다.”
-<불후의 명곡> 엄정화편에 출연한 뒤 기사들이 쏟아졌다.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도 했는데.
“나는 사실 그 무대가 마지막일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 모든 아이돌, 기성가수들이 <불후의 명곡>으로 컴백을 하던 시절이었다. 활동도 없는 유미가 갈 자리가 어디 있겠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무대에 설 기회를 한 번 얻었을 때, 또 내가 방송국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알다 보니, ‘당연히 다음’은 그 누구에게도 쉬운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유튜브 <창현거리노래방> 채널에서 노래를 부른 영상이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이때 우연히 지나가다가 노래를 부르게 된 건지, 아니면 섭외인지 궁금하다.
“섭외는 아니다. 내가 2019년 11월 17일에 <창현거리노래방>에 나갔는데, 그해 7월 말에 회사를 나왔다.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에 ‘<창현거리노래방>에 나가면 대박일 것 같은데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창현씨에게 출연하고 싶다고 e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창현씨가 언제 출연해주면 될 것 같다고 e메일로 답변을 줬다. 매니저가 없던 시절인지라 혼자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달려 홍대에 갔다. 한시간 전에 도착해 현장 맞은편 노래방에 가서 그날 부를 노래를 리허설까지 했다.”
-<싱어게인>에서 다양한 노래를 선보였는데, 선곡의 기준이 무엇인가.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색깔이 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곡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싱어게인>에 가게 된 이유도 평소에 보여주지 못했던 유쾌, 발랄,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선곡 문제는 작가가 주는 곡과 내가 원하는 곡을 조합해 최종적으로 내가 결정했다. 유미는 가사 전달력이 좋은 가수라고 알아주고 나 역시도 가사에 깊게 들어가 노래를 하는 편이라 주로 가사 전달력이 좋은 노래로 선택한 것 같다.”
-평소 목소리는 차분한데 무대에서는 폭발적인 고음을 낸다. 목 관리를 따로 하나.
“따로 관리하지는 않는다. 목에 나쁜 행동을 아예 안 한다. 친구들도 안 만나고, 술 담배도 하지 않고. 그냥 밖에 오래 있는 생활을 안 한다.”
-앞으로 앨범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내년 3월,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정규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좋은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다.”
-유튜브에서 <유미스타>로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지난해 1월에 유튜브를 시작했다. 공연을 해야 하는데 유미를 알릴 구조가 없었다. 그런데 <창현거리노래방>에서 노래했던 모습을 많이 사랑해주셨던 기억이 났다. 좋은 노래를 들려드리면서 소통 창구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채널을 만들었다. 매주 목요일 9시에 라이브로 진행한다.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유미스타>에 함께하고 싶은 게스트가 있다면.
“너무 많다. 홍경민 오빠, 박완규 오빠도 게스트로 모시고 싶고, 현진영 오빠와도 친하다. 전에 현진영 오빠가 진행하는 쇼에 초대를 받았는데 내 취미가 판소리인 걸 알고는 판소리를 시켰다. 그때 이후로 많은 분이 유미를 좋은 시선으로 봐주더라. 현진영 오빠와는 지금까지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유미스타라는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는데.
“부자가 되려고 시작한 건 아니다. 1인 기획사이다 보니 앨범 제작부터 프로모션까지 혼자 해야 한다. 사업가를 보면 투자를 받지 않나. 그런데 나는 살면서 만원 한장도 빌려본 적 없는 사람이다. 신용이 있다 해도 돈 빌리고 투자를 받는 그런 성격이 못 된다. 혼자 힘으로 ‘유미’를 만들고 싶었다.”
-제자가 있다고 들었다. 소개하고픈 제자가 있나.
“‘기탁’이랑 ‘밤(balm)’이라는 신인 친구들이 있다. 제자라고 말하기 좀 뭐한 게 요즘은 내가 그 친구들에게 배우고 있다. 본인들만의 컬러를 잘 찾고 있고 자신만의 노래를 곧잘 한다. 두 친구가 슈퍼스타가 돼서 내년 20주년 유미 콘서트 무대에 함께 서는 것이 내 꿈이다.
-가수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나.
“꿈, 그 꿈이 무엇이든 간에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하나라도 했는가. 이걸 되새겨봤으면 좋겠다. 자신이든 아니면 누구든 간에 감동을 주지 못하는 삶은 마음에 와닿는 노래를 부를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노래, 좋은 테크닉이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1일 1감동을 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글·진행 김재현 한국문화스포츠마케팅진흥원 이사장 사진·동영상 청년서포터스 ‘젊은나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