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병원에 며칠 입원할 일이 있었다. 1년 전 손목 골절로 뼈를 붙잡고 있던 금속판을 제거하는, 예정된 수술이었다. 이른 아침,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마치고 깨어나니 통증과 졸음이 뒤섞여 몽환적인 기분이었다. 마침 클럽하우스에서는 SF 토론방이 열려 작가 테드 창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며 ‘시간’ 개념에 대한 과학 논쟁이 뜨거웠다. 그래서 나는 머릿속 시간여행에 시동을 걸었다.
느닷없이 88년 전으로 가보자. 때는 1933년 일제강점기. 하지만 피 끓는 조선의 지식인 청년들은 신문물에 관심을 가지고, 과학기술을 연구하면서 일본을 극복해 해방이 온다면 다시는 국치를 겪지 않는 부강한 나라를 만들리라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미 1924년 만들어진 발명학회를 중심으로 1933년 6월 ‘과학조선’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잡지를 내기 시작했다. 아래는 창간사 일부라고 한다.
“임진란의 큰 수난은 조선사람의 독창성과 발명력을 증명하였다. 패잔의 군사를 거느리고 싸워내려 한 이순신은 ‘거북선’을 창조하여 상대 진중을 자유로이 다니었고, 진주성에서는 정평구가 ‘비차’를 제작하였고, 그의 장손은 ‘비격진천뢰’를 창제하여 세계 박격포의 효시를 짓고, 변이중은 ‘화차’를 창제하여 탱크의 조를 만들었다.”
일부 표현이 검열을 감안한 듯 중화돼 있지만 일제강점기 시절임을 감안하면 과감하고 호기롭게 우리 역사 속 과학강국의 맥을 짚고, 이를 잇겠다는 뜻을 천명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리고 이듬해인 1934년,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시작된다. 4월 19일에 제1회 과학데이가 열린 것이다. 진화론의 주창자 찰스 다윈의 50번째 기일이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데이에 명분을 제공했다. 그동안 가산을 털어 10년간 발명학회를 유지해온 김용관은 사흘간 과학데이 특집방송을 진행했고, 활발한 좌담회까지 열린 결과 과학지식보급회가 출범했다.
바로 이 ‘과학데이’가 현재 ‘과학의 날’의 효시이자 전신이라 할 수 있겠다. 현재 과학의 날이 4월 21일이 된 이유는 박정희 정권에서의 결정이었다. 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가 독립부처가 됐다. 이듬해부터 이날을 ‘과학의 날’로 지정하고, 1973년부터 정부 기념일로 제정됐다. 1960년 4월 혁명 이후 4·19는 혁명기념일이 돼 과학데이를 굳이 찰스 다윈의 기일에 맞출 이유는 없겠으나 김용관 선생, 발명학회, 과학조선, 과학데이, 과학지식보급회의 역사와 정신은 다시 되새기고,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2022년 3월 대선 이후 한국사회는 조금은 더 과학적이 되었을까? 2021년 4월 재보궐선거 이후 기회를 잡은 야권과 참패한 여권 모두 쇄신과 혁신, 합리주의와 상식을 외쳤는데 이듬해 권력 쟁취 격돌에서 조금은 더 과학적 합리주의의 흐름이 만들어졌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타임머신의 시간 세팅을 2022년 과학데이로 잡았다. 역사적 시간은 초기 사회학자 오귀스트 콩트의 말처럼 신화의 시대에서 형이상학의 시대로, 그리고 과학의 시대로 흘렀다.
<최영일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