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불모지에서 맞닥뜨린 찬란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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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매드랜드(Nomadland)

제작연도 2020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08분

장르 드라마

감독 클로이 자오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데이비드 스트라탄, 린다 메이, 샬린 스완키

개봉 2021년 4월 15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대기업의 공장폐쇄로 급격한 쇠락을 겪다가 이제는 버려진 도시가 돼버린 네바다주 엠파이어. 중년여성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분)은 광부였던 남편이 죽은 후에도 이곳에 홀로 남아 다양한 일용직을 전전하며 집도 없이 밴에서 살아간다. 급격히 추워진 날씨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동료의 권유로 애리조나주에서 열리는 노매드(Nomad·특정한 방식이나 삶의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모임에 참석한다.

펀은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가족의 화해와 새로운 인연의 가능성을 맞이한다. 과연 그에게 안식을 안겨줄 종착지는 어디일까? 나를 정의하는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나 자신을 다시 찾는 것이 가능할까?

영화 <노매드랜드>는 2017년 출간된 제시카 브루더의 논픽션 <노매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화는 주연을 맡은 프란시스 맥도맨드로부터 시작됐다. <파고>, <쓰리 빌보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회나 수상한 명배우인 그는 제작자의 입장에서 감독을 물색하다 망설임 없이 클로이 자오를 낙점했다. 전작 <로데오 카우보이>를 보고 받은 강렬한 인상이 이유였다. 하지만 자오 감독 역시 힘겨운 여정을 감내하며 억척같은 삶을 사는 범상치 않은 주인공 ‘펀’을 연기해줄 배우로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최선이라 생각했다.

나를 찾아 떠나는 험난한 여행

클로이 자오 감독은 이전 작품들에서도 비전문 배우들을 등장시켜 극에 현실성과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번 작품 역시 몇몇 주연급 배우들을 제외한 상당수의 등장인물이 평소 자신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보다 그들 개인의 삶과 일상을 더 존중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힘썼는데, 그것이 작품의 심장부가 됐다고 확신한다.

촬영감독 조슈아 제임스 리차즈의 그림 같은 영상도 <노매드랜드>를 빛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대학시절의 인연으로 시작해 모든 작품에서 협업하고 있는 그는 클로이 자오 감독이 추구하는 영상세계와 문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며 구현하는 파트너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소박하지만 서정적인 음악도 영화의 깊이를 더욱 풍성하게 확장시킨다.

영화는 차가운 현실과 그 안에 내던져진 여린 생명력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스크린에 영사돼 펼쳐지는 풍경은 척박함조차 신비로움으로 느껴질 정도의 황홀경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의 아름다움이나 장엄함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거처 없이 떠돌며 자칫 비루하게도 보일 수 있는 노매드들의 순수와 이들 사이에서 목도되는 조건 없는 소통과 연대는 그 어떤 풍경보다 고귀하고 따스하다.

자신을 평범한 ‘안내자’라고 정의하는 클로이 자오는 자신의 영화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영화는 나에게 큰 영향을 주고 영감을 준다. 요즘은 그 힘을 잊어버린 위험에 처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노매드랜드>의 세상을 통해 독특한 정체성을 탐구하고 관객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연결되고 싶었다.”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섬세한 시선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가장 빛나는 아름다운 경험이란 무엇일까? 또 그것을 자각하는 찬란한 순간은 언제일까? 사람에 따라 그것은 기억일수도, 풍경일 수도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 우리를 사로잡던 삶이란 이름으로 연결되는 이전이나 이후와 별개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찬란한 순간’의 고귀한 가치란 인생의 여정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쫓기듯 숨 가쁜 현실로 인해 현대인이 잊고 살아가던 평범한 진리를 포근하고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 일깨운다.

제77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시작으로 다수의 영화제에서 200여개의 수상을 기록하고, 4월 말로 예정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 감독, 각색, 여우주연상, 촬영, 편집의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저력 있고 비범한 작품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감독 ‘클로이 자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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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봄, 중국 베이징 출생의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클로이 자오(Chloe Zhao)의 괄목한 존재감은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읽힌다. 다양한 분야에서 커지고 있는 양성평등과 다양성에 대한 목소리나 이를 의식한 영화계 전반의 분위기는 차치하더라도 길지 않은 시간 그가 내놓은 작품들의 뛰어난 완성도와 가치는 놀라운 성취로 보인다.

하지만 그를 평가하는 혼란스러운 시선도 존재한다. 대륙 태생이지만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15세에 영국 유학을 시작했고, 뉴욕 대학 산하 티시 예술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그는 중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소위 중국 5세대, 6세대 감독들과는 분명히 선을 긋고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독자적 행보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원주민 청소년들의 무기력한 삶을 그린 데뷔작 <내 형제가 가르쳐준 노래>(2015)나 낙마 사고를 겪은 뒤 방황하는 청년의 성찰을 차분하게 들여다본 두 번째 장편 <로데오 카우보이(2017)> 모두 사우스다코타를 배경으로 철저하게 미국문화권 안에서 발화한 이야기다. 일관되게 미국 중서부를 배경으로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등장시켜온 그의 작품들은 냉철한 다큐멘터리와 낭만적 극영화의 중간지대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렇게 독립영화 스타일의 섬세한 드라마로 찬사를 받는 그가 차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이 할리우드 자본의 집대성이자 쇼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인 <이터널스(The Eternals)>라는 사실은 더 큰 화제를 부르고 있다. 이 작품은 한국배우 마동석이 캐스팅되면서 일찌감치 화제가 됐던 만큼 다방면에서 더 큰 기대가 모아진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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