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40·AC 밀란)는 오만하다. 바르셀로나(스페인)에서 뛰던 시절, 왜 이렇게 부진하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들은 페라리를 사놓고 피아트처럼 몰았다”고 맞섰다. 그는 불혹의 나이가 된 지금도 자신이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믿는다.

이탈리아 세리에A AC 밀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신화연합뉴스
유럽을 지배한 남자
이브라히모비치는 4차원이다. 3인칭 화법을 즐겨 쓰는 그는 종종 사람들이 황당함을 느끼게 한다. 지난해 9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를 하다 완치 판정을 받은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바이러스는 나에게 도전했고 나는 승리했다. 하지만 당신들은 즐라탄이 아니다. 바이러스에 도전하지 마라. 머리를 써라. 항상 거리를 유지하고, 규칙을 지켜라. (마스크를 쓰면서)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고 썼다. 사회적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은 특별한 사람 취급했다.
이브라히모비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은 제각각이다. 혹자는 좋게, 혹자는 또 나쁘게 평가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브라히모비치에 대해 유일하게 인정하고 폄하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축구 실력이다. 한국 나이로 불혹을 넘어선 지금까지 이브라히모비치는 세계 최정상급 리그에서 여전히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세계 축구계를 양분하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와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조차 노쇠화의 조짐이 보이는데, 이브라히모비치는 조금도 그럴 기미가 없다.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는 남자, 바로 이브라히모비치다.
세계 축구의 중심인 유럽에서도 특별한 취급을 받는 리그가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프랑스 리그앙이 그것으로 사람들은 흔히 유럽 5대 빅리그라 부른다. 이브라히모비치는 이중 분데스리가를 제외한 4개 리그에서 모두 뛴 경험이 있다.
변변치 않은 팀에서 뛴 것도 아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르셀로나, 인터 밀란, 유벤투스, AC 밀란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명문팀을 모두 거쳤다. 그는 늘 최전방에 섰고, 또 무수한 골을 만들어내며 팀에 승리를 안겼다. 이브라히모비치는 현재 세리에A에서 15골로 득점 4위를 달리고 있다. 득점 선두 호날두(23골)와는 8골차로 적지 않은 격차지만, 이브라히모비치는 이번 시즌 15경기만 뛰고도 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호날두는 24경기다. AC 밀란이 이번 시즌 현재 세리에A 2위를 달리며 순항하고 있는 데는 이브라히모비치의 공이 적지 않다.
그는 우승 청부사이기도 하다. 자신이 뛴 거의 모든 팀에서 우승을 맛봤다. 유일하게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팀이 자신의 고향팀이자 데뷔팀이기도 한 말뫼(스웨덴)다. 참고로 말뫼는 스웨덴 1부리그 최다 우승팀이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AP연합뉴스
키만 큰 것이 아니다
최근에 이브라히모비치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가 195㎝의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하는 전형적인 타깃형 스트라이커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이브라히모비치의 플레이는 타깃형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이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이 어느 정도 변화한 것으로, 전성기 시절 이브라히모비치의 플레이는 단순한 타깃형 스트라이커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골 결정력도 좋았고, 장신답지 않게 볼 키핑과 볼 컨트롤도 준수한 수준이었다. 지금은 느리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스피드도 꽤 빠른 편에 속했다. 스트라이커임에도 피지컬을 이용한 볼 간수로 팀에게 공간을 벌어주며 플레이메이킹 역할까지 수행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한 운동능력 감소를 자신의 피지컬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상쇄시키고 있다. 전성기 시절과 비교해 역동성은 확실히 떨어졌지만, 플레이의 질 자체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
이런 이브라히모비치도 아쉬운 점이 하나 있으니, 바로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이다. 호날두가 유로대회 우승, 메시가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이브라히모비치의 메이저대회 최고 경력은 유로 2004 8강이 고작이다.
특히 월드컵과는 더더욱 인연이 없었다. 이브라히모비치의 첫 월드컵 경험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다. 당시 대표팀 내 새내기였던 이브라히모비치는 두차례 교체 출전에 그쳤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는 전 경기 무득점의 수모를 겪었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과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는 아예 나가지도 못했다. 유로 2016을 끝으로 은퇴한 이브라히모비치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내가 빠진 월드컵은 월드컵이 아니다”는 등의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복귀를 노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스웨덴이 당시 이브라히모비치 없이도 8강까지 오르면서 이브라히모비치는 자연스레 잊힌 존재가 됐다.
하지만 이브라히모비치에게 국가대표가 주는 자부심이 남다른 것만큼은 틀림없다. 이브라히모비치는 3월 A매치 주간에 열리는 2022 카타르월드컵 유럽예선에 출전하는 스웨덴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5년 만의 복귀 자리에서 이브라히모비치는 “나는 여기 있을 자격이 있다. 여전히 대표팀에 기여하고 싶다. 나는 여전히 세계 최고다. 피치에서 증명하겠다”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상대에 대한 거침없는 언변, 때로는 날선 비판을 서슴없이 하고 다혈질적인 성격과 과격한 행동 때문에 말이 많은 이브라히모비치다. 이쯤 되면 사생활 면에서 구설에 오를 법도 한데, 정작 이브라히모비치는 놀라울 정도로 그런 적이 거의 없다.
사실은 따뜻한 남자
사실 이브라히모비치는 축구장을 떠나면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축구 스타들에게 숙명적으로 따라다니는 단어인 ‘방탕’은 이브라히모비치와 거리가 멀다. 성격 또한 떠들썩하지 않고 조용하며, 아주 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스웨덴 지적장애인 축구대표팀이 국제지적장애인스포츠연맹(INAS)이 4년마다 주최하는 지적장애인 축구월드컵 참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경매를 열어 축구 스타들의 친필 사인이 담긴 티셔츠나 축구화를 팔기로 하고, 자국의 최고 축구 스타였던 이브라히모비치에게 유니폼을 달라고 전화를 했다. 그러자 “그냥 계좌번호를 알려주면 내가 모든 비용을 대겠다” 하고는 53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전부 후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이브라히모비치를 좋아하고, 또 오해할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은 그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명이며,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행동과 말에 즐거워할 것이라는 점이다.
<윤은용 스포츠부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