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
“태양처럼 빛을 내는 그대여/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빛나는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한국 국가대표선수들 영상이 나올 때마다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이 노래는 러브홀릭스의 ‘버터플라이(Butterfly)’다. 영화 <국가대표>의 OST였던 이 곡의 작곡자가 이재학 음악감독이다. 이 감독은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통해 영화음악감독으로 데뷔했다. 한국의 ‘엔리오 모네코네’를 꿈꾸는 이 감독을 만났다.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작곡하다가 음악감독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록밴드 ‘러브홀릭스’ 활동할 때 내 곡이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감독인) 김용화 감독이 친구인데,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음악이 내가 하는 음악의 성격과 잘 맞는다며 같이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유미의 ‘별’이나 김아중의 ‘마리아’ 같은 곡을 프로듀싱하고 작곡하면서 영화음악을 시작하게 됐다.”
-러브홀릭이 만들어진 배경은?
“일기예보 출신 강현민씨와 내가 그 당시 모던록 계열의 음악을 작곡해 히트곡을 많이 만들기 시작했다. 박기영·박혜경씨 같은 분들의 곡을 써주다가, 플럭서스라는 회사에서 ‘당신들 곡이 밴드적인 느낌이 있는데, 공개 오디션에서 가수를 뽑아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해 지선이라는 친구를 뽑아 러브홀릭을 결성하게 됐다.”
-지선씨 말고 또 다른 가수도 함께하지 않았나?
“우리가 4장의 앨범을 발매한 다음에 지선이 솔로 활동을 위해 탈퇴하고 ‘러브홀릭스’로 이름을 바꾸면서 여러 가수와 협업하는 객원가수 체제로 바꿨다. 그때 탄생한 곡이 ‘버터플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 곡을 부를 수 있게 됐다.
-‘버터플라이’의 작곡 스토리가 궁금하다.
“지금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국가대표> 영화를 만들기 전에 우리나라 야구가 세계 대회 1등을 했다. 그때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곡을 만들었다. 때마침 영화 <국가대표>의 주제곡을 만들어야 했던 시기였다. 또 어렸을 때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라는 노래를 여러 가수가 나눠 부르는 게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그 당시에 ‘We are the world’처럼 여러 명의 가수가 화합하며 부르는 곡이 이 영화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포츠에서 승리의 기쁨을 담은 느낌과 화합할 수 있는 (노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버터플라이’라는 노래에 잘 접목한 것 같다.
“지금은 유명하지도 않고 보잘것없지만, 그 사람들이 언젠가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 내가 살아왔던 과정도 처음부터 성공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과정들을 거치면서 점점 내 인생을 펼쳐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담고 싶었다. 의도치는 않았는데, 스포츠 경기에서도 유명한 곡이 됐지만, 입시 때 그렇게 많이 나온다더라. 수능 보기 전 아이들의 응원가가 된 것 같다.”
-영화 <국가대표>도 우수한 선수들이 아니라 다들 시작하는 단계부터 모여 희망과 꿈을 가지고 가는 내용이다.
“그렇다. 그런 가사의 느낌 때문에 오랫동안 사랑받지 않나 싶다.”
-다양한 드라마·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굳이 내게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면 첫 작품인 <미녀는 괴로워>인 것 같다. 영화음악을 지금까지 하게 만들어준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미녀는 괴로워>는 영화 자체가 음악이지 않은가.
“사실은 내가 그 영화를 하고 다시 영화음악감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냥 한 번의 이벤트로 생각했는데, 그 작품이 너무 크게 히트하다 보니 계속 영화를 하게 되더라.”
-김용화 감독과는 친구이기도 하지만 <미녀는 괴로워>, <미스터 고>, <국가대표> 등 다양한 영화를 함께하며 시너지를 낸 것 같다. 특히 스포츠영화와 굉장히 연이 깊은 것 같다.
“‘뽀로로 극장판’의 음악감독을 했는데 그 영화는 슈퍼썰매라고 썰매 대회가 주제였다.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이 그 영화의 음악에서 ‘국가대표’의 느낌이 받았는데 알고 보니 네가 했네, 라고 했다(웃음). 노래 제목이 ‘우리는 챔피언’인데 그 노래를 아이들은 많이 알더라(웃음).”
-최근에는 아티스트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내 브랜드를 위해 일을 하던 시절이 의미 있고 좋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보니 이제는 새로운 아티스트들이 자기 음악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티스트들이 ‘저 회사에서 열심히 음악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선택지 중 하나가 되고 싶고, 궁극적으로는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긴 했는데, 사실 지금 단계에서는 상당히 어렵다.”
-‘정원’이라는 곡은 KBS 연말 시상식에서 ‘바른 언어상’을 받았다.
“그 가사를 너무 어릴 때 썼다. 데뷔하기 한참 전인 스물한 살에 썼다. 지금 들어보면 좀 어린 티가 난다. 내가 원예과를 나왔다. 식물을 키운다는 게 생각보다 상당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나는 ‘정원’이 가족·가정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이 자라 어떤 가족·가정을 만드는 과정을 약간 동화처럼 쓴 거다. 정원에서 꽃을 피우듯 아이를 낳는 것을 상상해 처음부터 끝까지 쓴 건데 상을 받은 건 조금 의외였다. 사실 대중적으로 쓴 게 아니라 동화같이 곡을 쓰고 가사를 붙였던 거다.”
-최근 ‘싱어게인’이 화제가 됐는데, 거기 출연했던 유미와 인연이 있지 않나. <미녀는 괴로워>에서 유미가 불렀던 ‘별’을 작곡한 것으로 안다.
“‘별’은 내가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쓴 곡이다. 노래에 ‘내 키만 한 작은 나의 방’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내 작은 방에서 별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조적인 노래였는데 영화에서 나오는 감정들을 곡에 넣어본 것이다. 의외로 여성분들이 ‘별’을 부르고 들으면서 위로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대학에서 실용음악과 인기가 높다. 뮤지션을 꿈꾸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려운 일이다. 각자 (음악적으로) 생긴 모습이 다르고, 개발해야 하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하기는 어렵다. 굳이 짧게 조언을 한다면,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사람을 봐야 한다. 사람을 본다는 건 감정을 본다는 거다. 세상을 보고 세상에서 느낀 감정. 그 감정이 일률적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조금 세상을 어둡고 파괴적으로 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밝고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거다. 그 부분이 다 다르게 생겼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다.
-그래서 메이저와 마이너가 있고 장르가 있는 건가.
“그게 애매한 부분이 있다. 조금 어둡게 다르게 보더라도 굉장히 메이저할 수 있다. 꼭 어느 게 맞다, 틀리다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것 하나는 있다. 아무리 세상을 어둡게 보더라도 사람에 대한 관심, 따뜻한 마음은 있어야 한다. 어떤 식의 표현이어도 따뜻함이 결합됐을 때 주는 느낌은 필요하다. 아무리 호러물이라도, 따뜻한 시선이 아예 존재하지 않으면 조금 어렵다고 본다.”
-70·80년대 국내 음반과 팝을 들었을 때는 퀄리티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레코딩 기술의 문제였나.
“당시에는 소리를 다루는 기술이 외국에 비해 부족했다. 창작력은 좋았다. 지금은 K-POP이 세계적인 수준까지 올라왔다.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이 여러 콘텐츠를 참 잘하는 것 같다.”
-영화음악감독은 일반 아티스트에게 곡을 주는 작업과는 다를 것 같은데.
“가수에게 곡을 준다고 하면 가수의 보이스 컬러와 캐릭터뿐만 아니라 ‘이 사람이 이런 말투로 노래하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을 한다. 그 사람을 위한 그림을 잡는다고 보면 된다. 영화나 드라마는 작품 안의 감정이 제일 중요하다. 이 작품에서 어떤 감정이 필요한지를 본다. 그런데 한가지 감정만 있는 영화는 없다. 여러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영화의 톤과 매너에 맞는지 고민한다. 촬영·미술과도 연관이 있다. 특히 배우 얼굴과도 밀접한 부분이 있다. 배우 얼굴 생김새에 따라 잘 붙는 음악이 다르다. 훨씬 더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연출자와 끊임없이 조율해야 한다.”
<글·진행 김재현 한국문화스포츠마케팅진흥원 이사장 사진·동영상 청년서포터스 ‘젊은나래’>